대천덕신부님과 예수원

선한 목자교회의 유기성 목사-예수원처럼 실험에 도전한 목회

유테레사 2015. 9. 14. 13:35
유기성

나를 실험도구로 삼으소서!

1921년 2월 15일 뉴욕의 케인 서미트 병원에서는 한 의사가 맹장수술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환자는 배가 아파 병원에 왔으며 맹장염이란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 날의 수술은 이반 오닐 케인박사가 집도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37년의 의사 경력을 가진 케인박사는 4천 번의 맹장 수술을 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날의 수술은 평범한 수술이었지만 두 가지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맹장 수술 최초로 국소마취로 진행되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 환자가 좀 독특하다는 것입니다.
이 수술을 집도한 케인박사는 전신마취를 반대해왔습니다. 그 때까지는 국소마취를 하지 않을 때였기에 국소마취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이론에 불과했습니다. 케인박사는 국소마취는 안전하다는 이론을 펼쳤지만 실제로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수술을 할 지원자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말짱한 정신으로 수술을 받지?” “마취가 일찍 깨면 어떻게 하지?” 2월 15일 드디어 환자가 찾아왔습니다. 국소마취로 수술은 시작되었습니다. 환자의 회복 속도는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케인박사의 이론이 증명되었습니다. 국소마취가 더 효과적이란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케인박사의 집도로 처음 수술을 받은 환자는 케인박사 자신이었습니다.

이 기사를 처음 보았을 때, 나야 말로 나를 실험 도구로 주님께 드려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은 늘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친밀히 동행할 수 있느냐 하는 믿음의 실험입니다.
몇개월이나 몇년의 공동체 경건훈련에 참석하지 않고도, 수도원이나 광야 한 가운데 들어가서 살지 않고도, 일상 생활 속에서 실제로 동행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진리는 그것이 당연하다 고 했고, 책을 통하여는 좋은 믿음의 선배를 알게 되었지만 현실에서 그런 사람을 찾아 보기가 정말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주님과 친밀히 동행하는 사람을 만나게 해 달라고, 그를 통하여 실제 생활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법을 배우게 해 달라고 계속 기도해 왔습니다.

그런데 점점 기다리고 찾아다니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두렵고 막연했고 자신도 없었지만 주님께 저 자신을 실험도구로 삼아달라는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믿는 것은 주님께서 친히 저를 가르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것을 고백하고, 24 시간 주님을 생각하며, 매일 일기를 쓰면서 주님을 바라보는 삶을 지속해 나가며, 그 과정을 철저히 기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고 믿어지면 순종하고, 앞서 행하신다고 믿어지면 따라 갈 뿐입니다.

제가 이런 믿음의 실험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얻은 것은 예수원의 대천덕 신부 내외 분 때문입니다. 그 분들은 625 전쟁이 끝난지 얼마 안되는 1957년 신학교를 세우기 위하여 한국에 왔는데, 신학을 가르치다가 심각한 문제를 느꼈다고 합니다. 진정한 신학은 교실에서 배울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배워야 하는데 한국의 신학생들이 계속 책으로 배우려고만 하지 삶 속에서 배우려 하지 않는 것을 깨닫고, 신학교 사역을 그만두고 1965년 강원도 태백 오지에 [예수원]이라는 기독교 공동체를 만든 것입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예수님은 정말 우리와 함께 하시며, 기독교 공동체는 가능하며, 우리가 정말 성경의 원리대로 살 수 있는지를 실험하였고, 결과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원] 공동체를 한국 교회를 영적으로 새롭게 하는데 너무나 귀하게 쓰셨습니다.

저는 대천덕 신부가 강원도 황지에 예수원을 세우고 성령님과 성경의 실험실로 삼았다면 저는 제가 섬기는 교회를 성령님과 성경에 대한 믿음의 실험실이 되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대천덕 신부에게 있어서는 당시 아무도 찾아 올 것 같지 않은 강원도의 깊은 산골짜기가 믿음을 실험하기에 더 할 나위 없이 적합했겠지만, 지금은 영적으로 황량해져 버린 도시 한 복판이 오히려 믿음을 실험해 보기에 더욱 적합한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저는 교회를 다음 세가지 믿음의 실험실로 삼기로 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믿음을 실험해 보는 것입니다.
둘째는 성령 안에서 교회가 하나될 수 있다는 믿음을 실험해 보는 것입니다.
셋째는 재정에 있어서 믿음을 실험해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교회 안에서 되어지는 일 조차 믿음으로 되어지는 일이 많지 않습니다. 교회의 믿음이 너무나 작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실험을 정직하게 해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교회에서부터 실험되고 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신 것과 성경의 말씀이 참인 것을 알게 될 때, 교인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믿음으로 살 용기가 생길 것이고, 믿음으로 사는 기독교인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교회 여건이 그렇게 하기 힘들다면 개인적으로 믿음의 실험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 주위에 주님과 친밀히 동행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면 여러분 자신을 실험 도구로 주님께 드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실 분들은 온라인 상으로나마 손에 손을 잡아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