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대속죄일
대속죄일
대속죄일에 대한 성경 기록은 (레 23:26-32)에서 읽을 수 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희에게 성회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이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 이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 이 날에 누구든지 아무 일이나 하는 자는 내가 백성 중에서 멸절시키리니 너희는 아무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이는 너희의 쉴 안식일이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이 달 구일 저녁 곧 그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안식을 지킬지니라.”
성경에 나팔절로 기록된 이 날부터 10일 후 대속죄일까지는 1년 중 가장 경건한 기간에 속한다. 이 열흘을 유대인들은 아싸랏 여메이 테슈바 (응답 받는 10일/ 경건한 10일)이라고 부른다. 10일 중에 가장 중요한 날은 마지막 날인 대속죄일이다 매년 7월 10일(티쉬리월 10일, 태양력 9-10월)은 속죄일로 여호와 앞에 성회로 모여 화제를 드리고 아무 노동도 하지 않는다(레23:27, 민29:7). 이 날은(9일 저녁부터 다음날까지) 전국에서 나팔을 크게 불어 알렸으며(레25:9) 스스로 괴롭게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 백성들에게서 끊어질 것으로 말씀하셨다(레23:29-30, 32).
▲ 은나팔을 불어 대속죄일임을 알림(by Temple in Jerusalem)
속죄일은 금식의 날로 지켜졌고, 대제사장이 1년에 하루 지성소에 들어가 여호와 앞에 피를 뿌림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전체의 죄를 사하시는 날이었다(히9:7).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올 필요는 없었으나 각 처소에서 영원히 지켜야 하는 절기였다(레23:31).
속죄일에는 대제사장이 먼저 자신과 가족을 위하여 수송아지를 잡아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린다(레16:6). 다시 밖으로 나와 두 염소를 데려다가 제비를 뽑아 한 염소는 여호와께 드리고 한 염소는 아사셀을 위해 광야로 보냈다(레16:10).
대제사장은 먼저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로 여호와께 드릴 염소로 제비 뽑힌 염소의 피를 취하여 휘장 안 지성소로 들어가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려(레16:15)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들이 범한 모든 죄를 사하도록 했다. 대제사장은 성전 밖으로 나와 제단에 수송아지 피와 염소 피를 가져다가 제단 귀퉁이 뿔들에 가르고 손가락으로 피를 일곱 번 뿌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에서 제단을 성결케 했다(레16:18-19).
▲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피를 뿌림으로 죄를 속하는 대속죄일(by Temple in Jerusalem)
지성소와 회막과 제단을 위하여 속죄하기를 마친 대제사장은 아사셀을 위한 염소를 광야로 보낸다. 대제사장은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냈다(레16:20-21). 염소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접근하기 어려운 땅에 이르면 염소를 광야에 풀어 놓았다(레16:22).
▲ 여호와를 위한 양과 아사셀을 위한 양을 구별하기 위한 제비뽑기(by Temple in Jerusalem)
레위기 16:8, 10, 26절에서는 아사셀을 위한 염소가 등장하는데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이스라엘 전백성의 죄를 지고 땅 끝까지 추방되고 백성들의 죄를 멀리 옮겨 그 본원(아사셀)에 돌려보내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죄의 완전한 제거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뜻 깊은 의식이었다. 그러나 이 속죄의식은 매년 행해 져야했고 구약의 속죄일 의식이 영원한 죄사함이 아닌 한시적인 것으로 단번에 영원히 죄를 사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임을 나타낸다 할 수 있다
50년째 되는 속죄일은 희년이었다. 희년은 여호와의 은혜의 해(사61:2)로 불렸는데 모든 슬픈자를 위로하는 날이었고, 종이 되었던 자에게 자유가 공포되었으며 각 사람들은 자기 기업과 가족에게 돌아 갈 수 있었다(레25:8-10). 희년의 목적은 종된 자에게 자유를 주고(레25:39-42), 기업을 돌려주며(레25:23-28), 빚을 면제해 주고(레25:47-51), 땅을 쉬게 하기 위함이었다(레25:11-22).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아 바벨론 70년 포로 생활을 하게 되었다(대하36:21).
구약성경에 속죄일 사건이 기록된 것은 없다. 다만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 제2성전(스룹바벨성전)에서 지켜진 속죄일 의식이 미쉬나에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을 살펴보먼 여호와께서 제시한 속죄일 지키는 방법이 조금씩 바뀌었음을 알 수 있고 예수님 당시에도 예루살렘 성전에서 지켜졌던 것으로 보인다.
* 성경 속 속죄일
①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한 후 모세의 명을 좇아 안식일, 월삭, 정한 절기(무교절, 칠칠절, 초막절)를 지킨 것으로 나타난다(대하8:13). 속죄일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지켜진 것으로 생각된다.
모세의 명을 좇아 매일에 합의한 대로 안식일과 월삭과 정한 절기 곧 일 년의 세 절기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드렸더라 (대하 8:13)
▲ 대속죄일에 예루살렘에 올라올 필요는 없고 자신이 머무는 곳에서 지켰다. 사진은 현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대속죄일에 통곡의 벽에 모여 기도하는 모습이다.
* 미쉬나에 나타난 포로 귀환 후 속죄일
포로 귀환 후 대제사장은 구약 때의 속죄일과 마찬 가지로 대제사장복을 입고 성소에 들어가 분향단에 분향을 하고 등대의 등불을 간검한 후 대제사장복을 벗는다. 이후 속죄일 의식을 다 마치고 대제사장복을 입기까지 흰 세마포 만 입고 속죄일 의식을 진행한다.
제일 먼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위해 수송아지와 숫양 한 마리로 속죄를 드렸고 다음에는 백성을 위해서는 숫염소 두 마리를 번제물로 준비했다. 백성들을 위한 두 수염소는 성문 앞으로 끌고 가서 제비를 뽑아 한 마리는 제물로 쓰고 다른 한 마리는 속죄 염소로 광야로 데려갔다.
속죄제의 제물로 선택된 염소는 동맥을 쳐서 잡은 후 대제사장이 염소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가고, 한 마리는 아사셀을 위해 광야로 보내기 위해 붉은 색 실을 뿔에 묶어 표시한 후 두 제사장을 통해 올리브산(감람산)으로 끌고 올라간 후 유대광야로 갔다.
▲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의 죄를 전가 받아 광야로 나가는 아사셀 양(by Temple in Jerusalem)
성전 제단에서 동쪽으로 난 세 개의 문이(니카놀게이트, 여인의 뜰 문, 수산게이트) 있는데 대속죄일에는 모든 문을 다 열어 둔다. 대제사장은 제단에서 타는 숯불을 채운 향로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가 향연을 가득하게 한 후, 처음에 수송아지의 피를 두 번째는 백성들을 위한 속죄 제물인 염소의 피를 뿌린다.
대제사장이 행하는 이 의식을 마치고 대제사장이 아사셀을 위한 염소에게 안수한다. 예비된 제사장은 이 아사셀을 위한 염소를 몰고 동쪽으로 동쪽으로 유대광야를 지나간다. 아사셀을 위한 염소를 몰고 가는 제사장 뒤에는 여러 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쫓아가며 아사셀 양에게 돌을 던지며 "지고가라 지고가라"고 소리쳤는데, 자신들의 죄를 지고 가라는 의미였다. 구약시대에는 제사장이 아닌 일반인이 아사셀 염소를 몰고 광야로 나갔으나 백성들이 던지는 돌에 사람이 맞는 경우가 발생하여 제사장으로 대치되었다고 한다.
올리브산을 떠나 동쪽으로 여러 시간을 걸어가면 유대광야 끝의 낭떠러지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때 제사장은 아사셀 염소를 밑으로 밀어 떨어뜨렸다. 레위기에서는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접근하기 어려운 땅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레16:22)라고 말씀하셨는데 포로기 후 중간시대를 지나며 염소를 낭떠러지에서 떨어뜨리는 것으로 바꾸었다.
▲ 광야 끝 낭떠러지에서 아사셀 양을 떨어뜨리기 위해 절벽 위에 서 있는 제사장(by Temple in Jerusalem)
염소를 몰고 갔던 제사장은 아사셀을 위한 염소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는 것을 목격한 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셨음을 알렸으며, 성전에서는 자신들의 죄가 사하여졌음을 감사하여 기뻐하며 풍악을 울리고 춤을 추었다. 성전에 모인 백성들은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다” (시 103:12) 고 기뻐 소리쳤다. 이것이 구약시대와는 다르게 변한 대속죄일의 의식이다.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뽑은 염소는 산 대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레16:8-9)”
많은 유대인들은 대속죄일에 하얀 옷을 입는다. 우리의 죄가 눈과 같이 정결케 되는 약속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리라”
(사 1:18).
세속적인 유대인일지라도 이 날만큼은 다른 날과 다르게 경건하게 보내려 한다. 모든 일터는 문을 닫고, 많은 유대인들은 금식하며 회당 예배에 참석한다. 이스라엘 나라 전체에서 엄숙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평소엔 수많은 차량들이 달리는 고속도로도 이 날만은 텅 비어 있다. 간혹 차량을 볼 수 있다면, 경찰 순찰차, 앰뷸런스, 비상 차량들 뿐이다.
현대 유대인들은 대속죄일을 스스로 괴롭게 하며(금식하는 것으로 이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속죄하는 날로 보낸다. 그들은 대속죄일을 ‘우리의 모든 행위가 기록된 하나님의 책이 봉인되는 마지막 날’로 믿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책이 닫히기 전에 그들은 기도와 금식하므로 경건하게 보내어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리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보이는 마지막 날이기 때문이다. 이 날에 속죄함을 받는 죄는, 사람들간에 지은 죄가 아니라, 하나님께 지은 죄를 용서받는 날이다. 만약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기 전에 다른 사람에게 지은 죄가 기억나면, 반드시 대속죄일 전에 그 사람과 화해하고 대속죄일을 맞아야 한다. 이 전통은 예수님의 말씀을 잘 기억나게 한다.
▲나팔절을 맞아 통곡의 벽으로 향하는 유대인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말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24).
욤 키푸르가 끝나면 그때부터 유대인들은 초막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죄 사함(?)을 받고, 평안함으로 초막절을 준비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각 가정들은 초막 (수카)을 준비하기에 바쁘다. 다음 날부터 이스라엘 전역 특히 예루살렘에서는 자동차 지붕이나 트럭에 종려나무 가지를 싣고 부지런히 오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대속죄일을 기억도 못한다. 반면 현대 유대인들은 이런 좋은 전통을 갖고 있으면서도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지를 못한다(행 4:12, 요 14:6). 그 이유는 전통에 매여 있을 뿐, 그리스도를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버리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고, 그리스도인들은 버린 것이 너무 많다.
유대인의 절기들은 성경에 기초하고 있지만, 절기를 지키는 방법은 유대교의 오랜 전통에 근거하고 있다. 전통이 지나치면 본질에 어긋나게 되어 있다. 그 본질에서 어긋난 전통으로 말미암아 현대 유대인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일에 실패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다음은 유대인들이 대속죄일에 부르는 찬양입니다.
대속죄일과 예수님의 재림과 관계가 있는가?는 질문은 그렇다이다.
유대절기 중 교회사에서 이미 성취된 절기는 유월절(어린양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 무교절(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없는 성도의 삶), 초실절(잠자는 자들의 첫열매가 되신 그리스도), 오순절(예수님의 부활 50일 후 성령강림)이다.
나팔절(레 23:23-25)은 나팔을 불며 이스라엘의 성회를 소집하고 회개하는 절기로서 마지막 때의 심판을 의미한다. 장차 올 일곱 나팔 재앙(계 8-11장)을 예표한다. 이스라엘과 교회는 환란 중에 나팔 소릴를 듣게 될 것이며 거룩한 성회로 모이고 회개하며 주님의 재림을 준비할 것이다.
세대주의 환란 전 휴거설을 믿는 자들은 나팔절 직전에 혹은 나팔절에 예수님의 공중 강림이 있을 것이고 성도들이 휴거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성도는 일곱 나팔 재앙 전에 휴거되지 않고 일곱 나팔 재앙 중에 하나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환란을 통과할 것이 성경에 명백하게 나와있다. (계 7:1-14, 계 12:13-17, 계 13:6-7) 예수님의 공중 강림은 성경 어디에도 분명하게 나와 있지 않은 허구이다.
속죄일(레 23:26-32)은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오실 예수님의 재림과 성도의 공중 들림이 있기 직전에 있을 이스라엘과 교회의 회개와 온전한 속죄를 예표한다.
7번째 안식년 다음 해부터 희년이 시작되는데 성회 마지막 날인 대속죄일(Yom Kipurr)에 희년이 선포된다. 희년은 곧 천국에서의 영원한 삶을 의미한다.
대속죄일은 예수님의 재림과 공중들림(휴거)를 예표하는 절기이다. 그날에는 전국적으로 나팔소리가 울려퍼질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재림과 죽은 성도의 부활을 알리는 마지막 나팔 소리라고 볼 수 있다.
초막절(레 23:33-44)은 구원받은 이스라엘과 교회가 하늘의 처소로 옯겨져서 영원히 거할 것을 예표한다.
*** 대속죄일과 예수님의 재림의 시기는 일치하는가?는 질문은 우리는 모른다이다.
그렇다면 7번의 안식년이 돌아오는 해의 대속죄일이 예수님의 재림의 시기인가에 대한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예수님은 유월절에 돌아가셨고 안식후 첫날 초실절에 부활하셨고 성령님은 오순절에 강림하셨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재림도 대속죄일이 되지 않을까?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그렇다고 단정할 수 없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예수님의 자신의 말씀에 주목해야 한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 마 25:13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 행 1:7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 마 24:36
가장 확실한 힌트는 예수님의 재림과 휴거에 대하여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멸망의 아들(짐승,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야만 비로소 그 끝이 이른다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7년 평화언약을 굳게 세우고 대환란기에 들어가는 시대에 산다면 우리는 대속죄일에 예수님이 오실 것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 살전 2:1-3
또한 우리는 절기와 안식일, 월삭에 대한 폄론을 금해야 한다. 그것은 장래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우리는 구원의 소망의 실체이신 예수님을 굳게 붙잡아야 한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 골 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