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사두가이파와 바리사이파

유테레사 2016. 11. 5. 21:47

사두가이파는 바리사이파와 함께 유다 종교의 중요한 두 축을 이루는 종파였다. 사두가이파는 예수님 탄생 전 2세기에는 바리사이파와 싸움에 여념이 없었으나 예수님에 대해서는 바리사이파보다 격한 증오를 나타냈다. 실제로 사두가이파는 예수님을 단죄하고 처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두가이파는 대부분 귀족이나 부호 출신이었고, 안정적이며 사회의 갖가지 특권을 누리던 계층이었다.

 

 

 신약성서 시대에 사두가이파는 바리사이파와 갈등을 빚고 있었다. 그 이유는 사두가이파가 천사나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고, 구전전승도 부정하여 바리사이파 가르침과 대립을 이뤘기 때문이었다.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출애굽 이후로 수세기 동안 전통들을 거부했다. 그들은 천사와 영, 악마 등과 관련된 전설에 대한 믿음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부활 사상과 영혼의 불멸이나 육체의 부활 및 천사와 영적 존재를 믿지 않았다(마르 12,18 ; 사도 23,18 참조).

 

 사두가이파는 일반적으로 대사제와 사제들을 배출해온 특권층이었다. 그들은 예수님 때문에 자신들 권력에 해가 올까봐 두려워하던 무리였다. 그들은 외부적으로는 로마 권력을 무조건 존중하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성직자 중심 국가를 수호하여 자기들 권력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던 세력이었다. 더구나 그들은 모세오경만을 성경으로 받아들이면서 율법에 의한 엄격한 제재를 주장했기에 하느님 나라를 선포했던 예수님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부활을 믿지 않았기에 예수님 부활을 구체적 현실로 믿고 선포했던 초대 그리스도인들과도 당연히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없었다.

 

 사두가이파 사람들과 바리사이파는 구전 율법에 대한 견해 차이로 크게 대립했다. 가장 주요한 의견 충돌은 부활에 관한 것이었다. 바리사이파들은 부활을 믿었으나, 사두가이파들은 부활을 부인했다(사도 23,6-10 참조).

 

 그래서 어느날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우스꽝스러운 질문을 했다. 일곱 형제와 혼인한 여인이 있었는데 죽은 뒤 부활한다면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고 물은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형이 자식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의 대를 이어주는 풍습, 즉 수혼법이 있었다. 예수님 답변은 의외로 간단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은 혼인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죽음 다음의 세계에서는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이 없다고 하셨다. 저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은 이 세상 방식과 다르다는 것을 암시하셨다(마르 12,18-27 참조). 사두가이파는 부활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저승은 상식 밖의 일이었다. 사두가이파는 무식하고 몽매한 사람들이나 저승을 믿는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들은 지극히

현실적 사람들이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가이파의 관심은 오로지 현세의 부유한 생활이었다.

 

 실제로 사제 계급을 포함하는 사두가이파들은 귀족적이면서도 부유하고 높은 계급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사도 4,1 ; 5,17). 사두가이파는 로마의 지배도 평화와 복지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하여 환영할 정도였다. 그러므로 부활과 종말론에 관한 예수님 가르침은 사두가이파보다 바리사이파와 더 가까웠다고 말할 수 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부활과 내세의 삶을 믿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사두가이파는 초자연주의 전반을 거부했기에 천사에 대한 신앙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비록 율법에 매달리기는 했지만 하느님에 대한 분명한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은 인간을 보다 더 신뢰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백성들은 사두가이파보다 바리사이파를 더 존경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백성들과 함께 로마 제국을 증오했지만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로마 제국에 굴욕적이고 타협적인 자세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율법학자는 율법에 관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책임을 가진 일종의 공직자이다. 율법의 선생인 공무원이라고 하겠다.

 에스라가 유대인 최초의 율법학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에스라는 이스라엘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70년이 지나 귀환 후 bc450년경 에스라가 율법을 해석하고 강의 했던 것에서 유래가 된 것이다.

율법학자는 율법을 연구하여 세분하고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율법 선생이다.

행동규칙을 자세히 정하고 율법해석에 관한 내용을 책에 써서 기록, 그 책이 50권이상이나 된다고 한다.

바리새인은 사회적 공직과는 상관없이 유대교 중 바리새적 종파를 따르는 사람이다.

바리새란 말은 분리된, 위기에 처한 유대교를 지키려는 열성으로 이방인과 분리, 부정한 유대인과 분리, 자기들과 반대하는 자들과 분리, 이런 의미와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근데 바리새인이 율법학자의 대부분을 차지하였기 때문에 율법학자와 바리새인 이란 말은 비슷한 종류의 사람들을 반복하여 강조한 표현이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은 6천명 정도되었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니고데모, 아리마대 요셉, 가말리엘 등 소수는 진정한 종교를 추구한 사람들이다.

바리새인의 등장은 bc175년 헬라의 종교와 전통을 유대에 전파하려는 헬라왕의 정책으로 유대교를 박해 할 때 등장했더. 시간적으로보면 율법학자가 먼저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