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헤롯왕의 가계도와 헤롯왕 시대의 이스라엘
헤롯왕의 가계도와 헤롯왕 시대의 이스라엘
헤롯의 아들들이 이스라엘의 분봉왕이 되어 다스림. 분봉왕들의 통치지역
헤롯의 아내와 그 아들들. 부인이 10여명이 됨
헤롯가문의 계보 설명
헤롯왕의 가계도
우리 신약 성경에는 여러명의 헤롯이 나옵니다.
여기도 해롯 저기도 해롯 도대체 누가 누구인지 확인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한번 작성을 해보았습니다.
자세한 것은 첨부된 이미지 파일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왕관 모양은 당시 분봉왕을 표시하는 것이고
분홍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부인들을 표시하는 것이고
굵은 붉은 색으로 연결이 된것은 서로 부부 관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명시된 헤롯에 대한 성경구절을 함께 적어 놓았기 때문에 도움이 되리가 생각이 됩니다.
지난 2007년 5월 8일에는 이스라엘의 한 고고학자가 헤롯대왕의 무덤을 발견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아래 웹 주소로 가시면 이에 대한 조선일보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헤롯 왕가 이야기
헤롯 대왕의 이름의 뜻은 “영웅의 아들” 이다.
이 헤롯 대왕은 팔레스틴의 헤롯 안티파터 2세(혹은 안티파스 2세)의 2번째 아들로 25세에 갈릴리 총독이 되었었고,
주전 37년부터 유대의 왕으로 군림하였고, 10명의 아내로부터 많은 자녀들을 낳았으며 주전 4년 70세 되던해에 죽었다.
그런데 마태복음 2장 1절-18절에 보면 예수님 탄생시 왕으로 되어 있다.
어떻게 해서 주전 4년에 죽은 왕이 예수님 탄생 후에도 살아 있는 것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주전(BC-Before Christ ), 주후(AD-Anno Domini-라틴어로 “우리 주님의 해” 라는 의미)라는
말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준으로 만들어 진것이다.
기원전, 기원후라는 말은 525년 스키티아 출신의 역사가이자 신학자인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가 교황의 명을 받아
"부활제의 서(書)" 라는 책을 저술하면서 처음 사용하였고 9세기 샤를마뉴 대제 시대에 일반화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기원후를 나타내는 A.D. 는 라틴어 Anno Domini 의 약자입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의 해" 라는 뜻으로 기원후를 의미합니다.
이 말 역시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가 "부활절의 서(書)"에서 처음 사용하였다.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는 A.D.와 B.C.사이의
0년을 계산에 넣지 않음으로써 1년의 오차를 낳게 하였고,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옥타비아누스라는 이름으로 황제의 자리에
있었던 4년의 기간을 계산에 넣지 않음으로써 오차를 5년으로 벌려 놓았다.
이렇게 됨으로 인해 실제 달력상 예수님의 탄생년도는 BC 5년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 예수님이 탄생한 후에도 헤롯 대왕이 살아 있을 수 밖게...
이 헤롯대왕은 성경이 예수님의 탄생을 물으러온 동방 박사의 이야기를 듣고 베들레헴 근방의 2살 이하의
남자 아이를 살해한 잔인한 왕으로 유명(^^)하다(마태 2:16).
자 이제부터 헤롯 왕가를 향한 탐험의 길을 떠나보자
1. 헤롯대왕의 4 아들들
1.1 헤롯 안디바(통치기간 B.C.3년-A.D.39년)
(1) 헤롯 대왕의 둘째 아들로 헤롯 대왕이 죽운후 갈릴리와 배뢰아 지역의 분봉왕이 되었다(눅 3:1).
(2) 이복 형제인 헤롯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아내로 취하여 세례요한으로 부터 책망을 받았고, 이로
인해 세례요한은 체포되어 살해되었다. 헤롯 빌립과 헤로디아 사이에서 나은 살로메의 춤과 그녀가
요구한 요한의 머리에 대한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막 6:14-29)
(3) 헤롯 안디바는 빌라도에 의해 호송되어온 예수님을 재판하였는데 예수님을 업신여기며 희롱한 후
다시 빌라도에게 넘겨 주었는데 서로 원수 지간이었던 빌라도와 헤롯 안디바는 이 일로 당일에
친구가 되었다.(눅 23:7-11).
(4) 예수님은 헤롯 안디바를 여우(눅 13:32)라고 하셨고 헤롯의 누룩을(막 8:15) 주의하라고 하셨다.
(5) 그는 갈릴리 해안에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Tiberius)의 이름을 따라 디베랴라는 도시를 건설하였으며
갈릴리 바다도 디베랴 바다라고 불렀다.
1.2. 헤롯 아켈라오( 통치기간 B.C. 2년-A.D. 6년 약 9년)
(1)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이 있는 남쪽 지역을 다스렸던 분봉왕
(2) 헤롯 아켈라오는 포악한 정치를 한 왕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애굽에 있었던 요셉은 천사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였고 결국 갈릴리 지방의 나사렛으로 가게 되었다.
(마태 2:21,22)
(3) 헤롯 아켈라오의 폭정으로 인해 유대와 사마리아 대표들이 로마 황제에게 찾아가 고발하였는데
로마 황제는 헤롯 아켈라오를 축출하고 아켈라오가 다스리는 예수살렘과 베들레헴이 있는 팔레스틴
남쪽 지역에 로마의 총독을 파송하게 되는데 그가 예수님을 심문하고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내 준
빌라도 총독이다.
1.3. 헤롯 빌립 1세
헤롯대왕과 대제사장 시몬의 딸인 미리암네(혹은 미리암네 2세)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이복 조카딸인
헤로디아와 결혼(마태 14:3) 했으며 살로메의 친 아버지이다. 분봉왕은 아니다.
1.4. 헤롯 빌립 2세(통치시기 B.C. 4 - A.D 34)
(1) 이두래(이두래는 에돔 지역이다)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이었다(눅 3:1)
(2) 헤롯 대왕과 5번째 부인 클레오파트라 사이에서 태어났다.
(3) 헤롯 빌립 1세의 딸 살로메와 결혼하였다.
(4) 요단 동쪽 상류 지역에 파네이온(Paneion)을 다시 세우고 가이사 황제를 존경한다는 의미에서
이 도시의 이름을 가이사랴 빌립보로 불렀다.
(5) 헤롯 가문의 왕중에서 가장 온순한 왕으로 알려져 있다.
2. 헤롯대왕의 손자들
2.1. 헤롯 아그립바 1세(통치기간 A.D.37-44)
(1) 헤롯 대왕의 손자로 헤롯 대왕이 미리암네(대제사장 시몬의 딸 미리암네가 아님)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리스토불루스의 아들이다. 헤로디아는 그의 여자 형제이다.
(2) 헤롯 아그립바는 야고보를 죽인 왕이고 베드로도 죽이려고 했었다. 후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음으로 인해 벌레에게 먹혀서 죽었다(행 12:1-23).
(3) 헤롯 아그립바 1세는 로마 황실에서 교육을 받으며 자라났고 클라우디오(글라우디오)가 로마 황제로 등극하는데
공을 세워서 유대와 사마리아의 통치할 권한을 부여받았다.
2.2. 헤롯 아그립바 2세(통치기간 A.D. 50-70?)
(1) 헤롯 왕가의 마지막 분봉왕으로 헤롯 대왕의 증손자이며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아들이다.
(2) 헤롯 아그립바 2세에게는 두르실라와 버니게라는 여자 형제가 있다. 사도행전 24장 24절에는
두르실라가 벨릭스의 아내로 되어 있는데 이 두르실라를 헤롯 아그립바 2세의 여자 형제이다.
따라서 총독 벨릭스는 헤롯 아그립바 2세의 처남이라는 것이다.
(3) 벨릭스 후임으로 온 베스도 총독과 함께 바울을 심문하기도 했다.(행 25,26장)
(4) 헤롯 아그립바 2세는 자기 여자 형제인 버니게와 근친 상간을 한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성경에는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함께 베스도에게 인사를 하러 왔다고 기록한 것일까?
“며칠이 지난 뒤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인사하려고 가이사랴에 왔다.”(행 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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