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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우리는 한분 예수님으로 부터 4개의 다른 복음서가 기록되어 나온 배경의 일부로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이 어떻게 전해져 왔는가를 보았다. 이번에는 특별히 예수님의 뜻을 이어받은 초기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어떻게 복음을 이해하고 전했는지를 살펴본다. 우선 제자들의 복음 이해를 살펴보고 팔레스티나에 있던 초기 공동체 및 팔레스티나 밖의 헬레니즘 문화권 안에서의 공동체들의 복음 이해와 전수가 어떻게 이루어 졌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1. 제자들의 복음 이해와 전수
예수님 사후 일시적으로 흩어졌던 제자들이 부활사건과 성령체험을 하고 난후 다시 모여 전도를 하게 되는데 이들은 어떻게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전하고 있는지 보기로 한다.
우선 제자들은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이들이었는가 ?
"주님은 처음부터 어떤 이들을 제자로 선택하셨고 그들은 예수님의 행적과 말씀을 듣고 따랐기 때문에 그 분의 생애와 가르침을 증언하는데 있어서 누구보다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성청 성서위원회 교서 7항)
예수님은 마르코 복음 사가가 기록한 대로 “열둘을 선정하시고 (1) 그들을 당신과 함께 있게 하고 (2) 그들을 파견하여 (복음)을 선포하게 하려는”(마르꼬 3;14) 뜻으로 제자를 뽑으시고 훈련을 시키셨다.
뽑힌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생활함으로써 양성을 받고 훈련을 쌓아 주님의 영으로 준비할 수 있었다. 이 과정은 단순히 제자들이 자신들의 성화를 위한 준비에 머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이 지상에 전파하는 협조자로 훈련되어 파견되는 과정이었다. 그 뿐 아니라 예수님은 생전에 이 훈련을 받은 제자들을 파견하여 가르치고 치유하는 실습을 시키셨다. 일종의 현장실습을 시키신 것이었다. 마태오 복음은 이 과정을 아주 잘 설명하고 있다.
마태오 5장 1절에서 7장 9절까지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모아 놓은 것으로 제자들은 이 가르침에 친숙토록 훈련을 받았다. 이어서 8장1절부터 9장38절까지는 일련의 기적사화들인데 제자들은 친히 이 기적들을 목격한 현장에 있었다. 이런 준비를 거쳐 10장 1절부터 42절까지에는 파견이 기록되어 있다. 이 파견은 실습훈련으로 이 파견을 받은 제자들은 예수님을 대신하는 자로 공인을 받았고 구세주의 사명을 말씀과 행적으로 대행하는 이들이 되었다. 따라서 이런 제자들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바로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파견은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사명으로, 마태오 복음 사가는 이렇게 후에 기록하고 있다. “여러분은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여러분에게 명한 모든 것을 다 지키도록 그들을 가르치시오” (마태오 28; 19-20)
이런 뜻에서 제자들은 그리스도로 부터 파견을 받아 그 분을 증언하는 이들이 된 것이다.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내릴 성령의 능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뿐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들이 될 것이다”(사도행전 1;8)
이처럼 자격있는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으로 부터 세례를 받으신 후 부터 하늘에 오르시게 되기 까지 일어난 모든 일들을 사람들에게 선포하여 전하게 되었고 특히 주님의 부활을 중언하는 일을 하였다. 유다스를 이을 새로운 사도를 선출하는 자리에서 으뜸 제자였던 베드로는 사도들의 역할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러므로 주 예수께서 우리들 가운데 오고 가시던 그 시절, 곧 요한의 세례로부터 시작하여 예수께서 우리를 떠나 승천하신 날까지 줄곧 우리와 함께 다닌 이 사람들 중에서 하나가 우리와 더불어 예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1;21-22)
제자들의 예수님 증언에 대하여 성청 성서위원회의 교시는 이렇게 요약 정리하고 있다.
“사도들은 예수님을 증언하는데 있어서 첫째로 그 분의 죽음과 부활을 선포하였고 듣는 이들의 처지를 참작하면서 그분 생애의 말씀을 사실 그대로 이야기 해 주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그 분의 신성이 명확히 들어났을때 사도들은 예수님의 행적을 망각하지않고 그 모두를 통합하여 정리하였던 것이다. 또한 사도들은 주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믿는다고 해서 그 분을 어떤 신화적인 인물로 만든다거나 그 분의 가르침을 와전시키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예수님 자신이 부활 후 구약성서와 그 분 자신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해석해 주셨듯이 사도들도 주님의 말씀과 행적을 그 시대의 듣는 이들의 필요에 의해 해석해 주었던 것이다.... 즉 교리교육식 표현, 이야기 양식, 증언, 찬미가, 신앙고백, 기도 그리고 그 밖에도 그 시대 사람들이 사용했던 문학적 표현 방식들을 썼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직접듣고 보았으며 예수님으로부터 파견에 걸맞는 훈련을 받았기에 가장 적절한 이들이었다. 이들은 예수님과 함께 한 체험을 부활 사건이후로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에 대한 이해를 더욱 명확히 하게 되었으며 이를 당시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맞는 표현방법을 사용하여 복음을 전수하게 되었다.
2. 팔레스티나 공동체의 복음이해와 전수
사도행전 2;41-42에는 예루살렘에 탄생한 초기 공동체의 형성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베드로는 열한 사도들과 함께 일어서서 소리를 높여 그들에게 말하였다. 유대인과 예루살렘 시민 여러분.....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았으니 그 날에 (믿는)사람들이 삼천 명 가량 늘어났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서로 친교를 맺고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루가 복음 사가는 예루살렘에 탄생된 최초의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삶의 특징을 (1) 사도들의 가르침 (2) 친교 (3) 빵을 떼어 나눔 (4) 기도로 요약하고 있다.
모든 공동체에는 공동체를 이루는 두개의 큰 기둥이 있다. 그하나는 일치를 증진시키는 요소이며 다른 하나는 다양성을 증진시키는 요소이다. 일치를 증진시키는 요소는 공동의 목표, 공동의 신념, 공동의 믿음, 공동의 동의 등이며 다양성을 증진시키는 요소는 공동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의 다른 형태들이다.
초기 그리스도인 공동체에도 이 두가지 요소가 있었다. 예수님에대한 공통된 믿음, 신념, 목표와 동의가 일치를 이루는 요소라면 공동의 목표를 향하여 가는 방법에서의 다양성이다. 즉 다양한 임무분담, 책임의 다변화이다. 비록 같은 일치의 요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외교인에게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핵심 메세지를 전달할 임무를 가진이도 있었고, 공동체 구성원의 교육을 담당하는 이도 있었으며, 새로 세례받은 이들을 격려하는 이들도 있었고, 공동체 살림을 주관하는 이들, 그리스도인에 대한 외부의 공격을 막아내는 변론과 변호및 호교를 담당하는 이들로 다양성이 존재했었다.
일치를 증진시키는 예수님께 대한 명확한 믿음 내용은 무엇보다도 중요했는데 이는 복음선포의 본질적 내용(케리그마)에 관한 것이었다. 이 내용은 시간이 지나면서 공동체안에서 명확해지고 일정한 틀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그 내용은 사도행전 전반부 10장까지와 바오로 사도의 여러 편지들에 나타나 있다. 이를 요약하면,
1) 구약성서에 나타난 하느님의 약속은 이제 실현되었다.
2) 이로써 오랫동안 갈망하여 오던 다윗 가문의 메시아(구세주)가 오셨다.
3) 그분은 바로 나자렛의 예수로서
- 하느님의 능력으로 선한 일과 위대한 징표로써 오셨으나
- 성서에 기록된 대로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고.
- 죽음으로 부터 들어올려져서 하느님 오른편에 앉으셨다.
4) 그분은 영광중에 다시 오셔서 인간을 심판하실 것이기에
5) 이 메세지를 들은 이들은 회심하여 죄를 용서받을 세례를 받아야 한다.
이 복음선포의 핵심내용에서 파생된 것이 전승인데 복음선포의 본질적인 내용 뿐 아니라 이 내용을 설명하는 여러 가르침을 전파하면서 동시에 예수님의 언행에 관한 이야기를 곁들이게 되었다. 예컨데 예수님의 선포하심과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현실적 구현을 설명키 위하여 구체적으로 치유에 관한 여러 기적사화를 덧붙였으며,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설명하기 위하여 부활사화등이 곁들어 지게 되었다. 또한 바오로 사도의 경우에는 초기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당면한 여러 분쟁과 갈등을 해소 시키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들을 인용한 훈계들도 곁들여 졌다.(고린토1 7;10; 11;22-25, 사도행전 20;35) 이런 과정을 통하여 예수님의 언행이 전승으로 초기 공동체 안에서 형성되게 되었다.
팔레스티나에 형성된 초기 공동체들은 예수님이 사시던 사회, 정치, 경제 현실을 살던 이들이었고 예수님께서 사용하시던 언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전승이 전달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비록 기본적인 사회현실은 같았어도 이 당시는 격변의 시기였기에 예수님이 떠나신후 몇년도 채 되지 않아 예수님이 생전에 겪으셨던 사회현실과는 다른 변화된 현실과 사건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서 예수님의 언행을 당시 사람들이 제대로 알아듣게 하기 위하여는 변화된 현실에 맟추어 설명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예컨데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당대 사람들은 급박한 현실로 알아들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종말이 가시화되지 않자 종말은 언제 닥칠지 모른다는 어투로 재설명을 하여야만 하게 되었다. (마태오 24; 45-51; 25;1-13) 이처럼 팔레스티나에 살던 이들은 비록 같은 언어로 예수님의 언행을 알아들을 수 있었으나 상황변화에 따른 변형된 전승을 듣게 되었다.
우리가 유념해야할 바는 예수님에 관한 구어전승은, 단순히 예수님의 말마디가 그대로 반복해서 전해진 것이 아니라 시대변화에 맞게 설득력있는 논리체계를 가감한 변형의 과정에 따라 전파되고 전수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구어전승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하여는 다음 두가지점을 감안하여야 한다.
첫째로, 제자들이 설교할 때 제자들은 예수님 생전에는 이해하지 못했으나 부활과 성령체험으로 인한 새로운 이해를 토대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달했으며 이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마디 하나 하나를 그대로 반복해서 전달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즉 새로운 체험을 통한 새로운 이해에 근거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달하였다는 점이다. 그렇다고해서 예수님의 말씀이 본질적으로 훼손된것은 물론 아니었다. 단지 부활과 성령체험으로 인하여 새로운 깨달음을 첨가한 전달이었기에 말마디 하나 하나를 그대로 반복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둘째로,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은 예수님 생전의 상황에 맞는 것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도 변하게 되어 새로운 관심사와 문제에 대하여 이에 맞는 가르침과 행적을 두드러지게 전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즉 사도들은 새로운 상황에 대한 설명을 예수님의 말씀과 언행에 비추어서 재해석하여 전달할 필요성에 직변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과정에서 예수님의 언행은 다른 상황에 맞는 형태의 표현으로 전달되게 되었다.
이러한 재해석과 재구성의 단계는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의 언행을 재해석하고 재구성하지 않았을 때에는 새로운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는 의미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게 하는 경우도 상정할 수가 있다. 예컨대 어떤 이들에게는 웃기는 이야기도 상황이 다른 이에게는 전혀 웃길 수 없는 경우와 같은 것이다. 심지어는 웃음에 찬 이야기가 조소나 모욕으로 받아들여 질 수도 있다. 서양사람에게는 농담으로 받아들여질지 모르나 같은 말이 한국 사람에게는 전연 의미없는 이야기일 수가 있듯이 말이다. 예전 프란치스꼬 성인은 가난한 삶을 상징하는 뜻에서 가장 흔하고 값싼 옷을 수도복으로 삼았는데 수백년이 지난 후에는 이러한 수도복을 지어 입으려면 보통 사람이 입는 옷의 몇배나 비싼 옷이 되어버려 더 이상 가난을 상징하는 옷이 아님과 같은 맥락이다. 예수님 생전에 하신 말씀을 말마디 그대로 전달할 때 상황이 변한 때에는 알아듣기 어려운 말씀이 되어 버릴 수 있는 경우에, 복음전달자들은 상황에 맞게 말씀을 선택하여 재구성하여 전달하였던 것이다.
구어전승이 전승으로 정착되는 과정에서 또 하나 유념해야 할 바는 전승이 기록될 때 일관된 이야기로 처음부터 끝까지 형성되지 않았던 점이다. 다른 말로 하면 구어전승의 각 조각난 단락들이 단순 기록으로 나열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마르꼬 10;12에서 10;17까지의 짧은 기록은 전혀 내용이 다른 세가지 다른 이야기가 단순나열되어 있다. 12절에는 이혼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면 간음한 것이란 내용인데 13절에는 전연 다른 이야기, 즉 어린이와 같아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세 이야기는 전혀 별개의 다른 내용을 담고 있어 일관된 맥락이 있는 것이 아니다. 성서에서 우리는 이런 전혀 다른 단락의 기록을 찾을 수 있다.
구어전승이 초기 공동체의 체험 속에서 기록된 과정을 살펴보면 구어전승은 당시 삶의 자리에 맞게 전수되었으며 필요에 따라 전수되었다는 점이다. ’삶의 자리‘는 복음서 전승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이에따라 사용된 단어나 용어 및 표현 형태도 상황에 맞게 기록될 수 있도록 전수되었다.
3. 헬레니즘 문화권의 공동체의 복음이해와 전수
복음은 초기단계에서 벌써 팔레스티나 밖으로 퍼져 나가고 있는데 다마스커스, 안티오키아, 에페소, 알렉산드리아 등지에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초기에는 이들 지역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 중심으로 복음이 전달되었는데, 이후 이들 지역의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전달되었다. 그러나 특이한 상황은 팔레스티나와는 전혀 다른 이질 문화권인 헬레니즘 문화속에서의 복음의 전달이다.
우선은 이들 지역에서 통용되던 희랍말로 복음이 통역의 과정을 겪어야 했다. 아라메아 말에서 희랍말로 통역이 이루어진 과정에서 여러가지 미묘한 의미의 변화가 수반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여러 복음전달자가 여러 곳에서 활동하는 과정에서 사람에 따라 다른 통역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희랍어로의 다양한 통역을 거쳐 문자로 기록되는 과정에서 미묘한 통역상의 차이점이 생겨났고 이는 복음서에 그대로 전수되었다.
언어의 차이보다도 더욱 중요한 점은 다른 문화권에 알맞도록 용어와 함께 표현들이 변화된 점이다. 이미 팔레스티나 지역에서도 이러한 상황변화에 따른 표현양식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질 문화권인 헬레니즘 문화 속에서는 새로운 표현양식의 차이가 더욱 클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새로운 문화권에서의 복음 수용과정에서 예수님의 언행은 또 한차례의 재해석과 재구성이 불가피해졌고 이는 공동체 삶에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비록 이런 문화권에 살고는 있었지만 유대인들은 상대적으로 덜 어려움을 겪었으나 희랍로마 문화속에서 살아온 이방인들에게는 팔레스티나의 문화속에서 형성된 예수님의 가르침을 수용하는데 여러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이들이 복음을 받아들일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는 이들의 가치관, 의식구조, 행동양식에 저항이 되지 않는 범위속에서 복음의 정당성을 이들의 논리에 맞게 설명하여야만 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걸맞는 신앙행위와 삶의 자세를 설명하여 납득시키려면 주님의 교훈적 말씀에 대한 전승이 강조될 수 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하여 전달된 복음이 초기 공동체에서 어떻게 이해될 수 있도록 전수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두번째의 단계인 이 전승단계가 최후의 전승단계인 복음사가들의 기록단계로 어떻게 전승되었는지는 다음에 다루기로 한다.
중요 요점
☞ 예수님은 생전에 제자들을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이 세상에 전파하는 협조자로서 훈련하여 파견시키셨다. 뿐만 아니라 이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치유하는 현장실습까지 시키셨다.
☞ 마태오 5장 1절 - 7장 9절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모아놓은 것이며, 마태오 8장 1절 - 9장 38절까지는 기적사화로써 제자들은 이 기적의 현장에 있었다. 그리고 10장 1절 - 42절까지는 파견이 기록되어 있다. 이 파견이 실습훈련이다. 이 과정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대신하는 자로 공인받고 구세주의 사명을 말씀과 행적으
로 대행하는 이들이 되었다.
☞ 제자들은 그리스도로 부터 파견을 받아 그분을 증언하는사람들이다.
☞ 팔레스타인 초기공동체에는 다른 공동체들처럼 모든 일치를 증진시키는 요소와 다양성을 증진시키는 요소가 있다. 즉 공동의 목표와 다양한 그 추진방법들이다.
☞ 예수님에 관한 구어전승은 단순히 예수님의 말마디가 그대로 반복되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시대변화에 맞게 설득력있는 논리체계를 가감한 변형의 과정에 따라 전파되고 전수되었다. 따라서 ”삶의 자리“는 복음서 전승에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출처/참사람되어 단행본, <예수님 한 분으로부터 네 개의 복음서가>, 헤르만 헨드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