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대한성공회설립130주년)
9월 29일 연중26주일 대한성공회설립130주년
이사야6:3-6, 시편: 103:15-22, 에페소서 2:13-16, 요한 21:15-18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1. 대한성공회의 탄생-고요한주교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성공회가 소개된 것은 중국에서 파송된 중국인 전도사 두 명이 김해를 중심으로 한 경상남도 일대에서 교리와 신앙을 전파하면서 비롯되었습니다. 그 당시 노력의 결과로 영국성공회에 의하여 한국선교가 결정되고 1889년 11월 1일 런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조선 교구의 첫 교구장으로서 고요한 주교(Charles John Corfe)가 주교 서품을 받고 동역자들과 함께 1890년 9월 29일 인천항에 도착하면서 한국 선교의 깃발을 올렸습니다.
2. 선교의 시작-의료와 교육기관
초대 선교사들은 성공회의 토착화를 위하여 한국문화 및 종교연구·사회복지활동·의료활동 등을 했습니다.
서울에 성베드로 병원과 성마태 병원, 인천최초의 양의 병원인 성누가 병원을 설립하였습니다.
강화와 수원 진천 등지에 진명학교 또는 신명학교로 불리워지는 초등학교를 설립, 1914년에는 성직자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성미가엘신학원(현재 성 공회대학교의 전신)을 설립하였습니다. 또한 성가수녀회는 1925년에 설립했습니다.
1900년에 본격적으로 건축한 강화읍 성당은 전통적인 한국의 사찰형식을 빌어온 최초의 토착화 성당이었으며 이러한 한국건축양식의 교회로서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성당은 강화온수리, 청주, 진천 등 여러 곳이 있습니다.
성미가엘신학원을 세워 1915년 최초의 한국인 사제 김희준(金熙俊, 마가)이 서품되었다. 1916년 5월 11일 제1차 교구의회가 조직되어 교구의회를 했습니다.
1931년 일제의 억압정책으로 교회부설학교 등이 폐쇄되었고, 1936년부터는 성직자들이 연행되거나 감시를 받았습니다. 1941년 주교 구세실(Cooper, C.)을 비롯한 외국인 선교사들이 강제국외추방을 당하였으며, 성미가엘신학원은 자동적으로 폐쇄되었습니다.
3. 1950년대 이후의 대한성공회
1945년 해방이후에도 어려움은 계속되었고 6.25동란을 겪으면서 6명의 성직자와 수도자가 공산군에 의하여 희생되는 가운데 경제적인 고난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후 1956년에 대한성공회는 새로운 교구장으로 김요한(John Daly)주교를 맞이하면서 새로운 선교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죤 데일리 주교-한국인에 의한 교회로 자전 자립 자주
첫째로 영등포와 강원도 황지에서 노동자들을 위한 봉사, 상담, 복지, 교육사업 등의 선교활동을 펴서 우리나라 기독교 산업선교의 효시를 이루었습니다.
둘째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가입하여 일찍이 벌려왔던 교회일치운동에 기구적인 참여를 하게 되었으며,
셋째로 전후의 어려운 사회상황에서 기아해방운동을 벌려 자활마을의 개척과 음성 나환자의 정착촌을 세우는 등 사회복지활동에 적극적인 활동을 벌렸습니다.
이러한 대한성공회는 1965년에 새로운 역사적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서울과 대전으로 교구를 분할하고 최초의 한인 서울교구장으로 이천환주교를 선출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한국인의 지도력 아래 한국의 교회로 새롭게 재편되는 계기를 맞이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1974년에는 부산교구를 신설하여 세계성공회 안에서 하나의 독립된 교회로 공인되는 발판을 만들어 가게 되었습니다.
4. 1970년대의 선교공동체
또한 1980년대에 주목할 만한 일로서 성공회가 벌려온 바 있는 "나눔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성공회는 현재 전국에 19개의 "나눔의 집"을 운영하면서 선교와 생활공동체를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이후에 기초수급자인 가난한 주민들을 지원하는 지역자활센터를 정부에 제안해서 전국에 구와 군단위에 하나씩 있습니다.
5. 현재의 대한성공회
대한성공회는 아직도 수적으로 참 미약합니다. 6.25전쟁 이전까지 북한에 있던 많은 교회(50개)를 잃은데다가 일찍이 너무나 엄격한 성직자양성 프로그램으로 인하여 충분한 성직자를 길러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전세계 162개국에 퍼져 있는 약 1억의 성공회 신자들과 교류하면서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세워가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재 대한성공회는 전국에 133여교회, 성직자 약230명 약 5만명의 신자가 있으며, 3개 교구는 각 교구를 중심 으로 교회발전과 사회복음화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산교회 설립 1975년, 축성 1983년 7월 3일
1975년 대청동교회는 마산지방에 거주하는 몇 세대의 교인 가정을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시작했습니다. 75년 9월30일 교인가정에서 첫 미사를 봉헌하였고(44년전) 76년 9월 문상윤신부가 관할사제로 부임하여 본격적인 전도활동이 전개되어 11월 21일에 해운동 2의 15(경남대 부근)에 10여평의 임시성당을 전세로 마련했습니다. 다음 해인 1977년 10월에 교인들이 증가하며 산호동 337에 42평의 건물로 교회를 이전했습니다.
마산지역 선교는 영등포교회가 공업단지에서 산업선교를 실시한 예를 따라 당시 수출자유공단으로 불려진 마산지역 산업화에 주목하여 산업선교 지향을 목표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죤 데일리 주교님의 특별한 관심과 시대적 흐름에 따라서 영등포지역 산업선교를 위해 서울교구 영등포교회, 강원도 황지탄광선교를 위해 대전교구 황지교회(태백교회),
마산 수출자유공단 선교를 위해 부산교구 마산교회를 설립하게 된 것입니다.
미국성공회의 UTO(미국성공회 어머니연합회 감사헌금재단)를 통한 지원금 1천6백만원, 호주성공회와 카나다성공회 그리고 교우들의 헌금으로 1980년 현재의 합성동에 대지 71평에 54평의 성당을 건축했습니다. 이곳에는 근로여성들의 합숙시설로 노동자 복지와 기독교교육을 목적으로 한 ‘성로(聖勞)의 집’을 건립했습니다. 성로의 집은 1980년 5월 5일 개관하여 7년간 지하와 1층에 여성근로자들의 복지를 위한 숙박시설로 운영했습니다.
이후에는 동아시아 성공회협의회(CCEA)로부터 2400만원 지원받아 2층에는 성당(43평), 1983년 7월 3일에 3층에는 사제관을 증축 전체 117평으로 축성식을 거행했습니다.
근로여성 숙박시설인 성로의 집은 87년 말에 폐쇄했습니다.
80년대 후반에 이르러 생활야학 ‘문화교실’과 영세민을 위한 유아원을 운영하다가 폐쇄하고 지역사회를 위한 문화공간의 제공을 통해 설립 정신을 재현하려는 노력을 했습니다.
이제 마산교회는 36살이란 청장년의 나이를 맞이하였다. 사람으로치면 한참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기이지만 그렇지 못한 모습이 많이 안타까운 점이리라. 어떤 일을 추진하고자 할 때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출발점을 찾아보고 나아갈 방향을 찾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마산은 2010년 7월 1일에 마산시, 창원시, 진해시가 통합되어 창원시로 행정구역 개편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 지역에 많은 변화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현재 교회가 위치한 합성동에서 설립초기의 선교비젼을 품고, 교회의 나이에 걸맞는 역량도 함께 갖춰가도록 기도하며 우리에게 향하신 하느님의 뜻을 찾으며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부산교구가 지향하는 교회의 목표인 ‘건강한 교회로’를 이루기 위해 마산교회 공동체 모두가 기도하며 한 마음이 되어 협력해야 합니다.
설립130주년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오늘의 복음이 우리 대한성공회와 함께 마산교회에도, 우리 모두에게도 의미가 있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질문하십니다.
베드로가 마음 편하게 대답을 할 상황이 아니었어요.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예수님께서 질문하셨어요.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
베드로가 정답을 말했어요.
“시몬 바르요나, 네가 복이 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베드로의 이 고백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에 굉장히 중요한 확인입니다.
구원자로서 그 다음 사역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후에 십자가 수난이 있기 전날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면서 헤어지는 것을 예고 하십니다. 그랬더니 베드로가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바치겠습니다.” 장담합니다.
“오늘밤 닭이 울기전 네가 나를 세 번 모른다고 할 것이다.” 주님이 예언을 하셨어요.
그날 밤 대제사장 안뜰로 결박당해서 끌려가는 예수님을 따라가서 그곳 하인들이 베드로를 보고 저자와 한패다. 나는 그를 모른다. 세 번 부인합니다.
3년간 따라다닌 예수님, 가장 사랑하고 가장 가르침을 잘 따르는 제자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그렇게 알고 있었던 베드로, 그는 달라진 환경에서 그 예수님을 세 번이나 전혀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누구나 이런 상황에 처하면 우선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가? 나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혼란에 빠지게 되겠지요.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이 한꺼번에 드러나는 자신의 실제 모습에 다다르게 됩니다.
모든 포장이 벗겨지고 내 안의 모든 것이 발가벗겨지는 수치감과 절망감에 당면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실패했다. 내 인생은 실패했다고 하면서 자책할 것입니다.
대한성공회 130주년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어떻게 봐야하겠습니까?
우리는 양보다 질이다. 하면서 위안을 삼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사회선교, 사회복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성공회가 44년 전에 마산지역에 첫발을 들여놓았습니다.
그동안 기쁜 일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일들, 여러 가지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지내왔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여기 계신 분들이 성공회 마산교회입니다.
이 교회를 지켜오신 분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몸 되신 교회를 꾸준히 묵묵히 지켜가시는 분, 그 가정을 축복하십니다.
13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안에 한편으로는 아쉬움도 있으실 것입니다.
44년 전, 마산에 들어온 우리 성공회가, 36년 전에 이 자리에 건물을 세운 마산교회에 대해서 아쉬움이 있으실 분도 계시지않을까요?
“왜 우리는?” 이란 의문을 갖는 분도 있으실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는 베드로를 찾아오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한 이후에 갈팡질팡했어요.
안식후 첫날 새벽에 막달라마리아가 급하게 오더니 주님 살아나셨다는 말에
얼마나 놀랐는지 한달음에 무덤에 가서 들여다보고 다시 돌아왔어요.
그리고 마음을 추스릴 길이 없자 갈릴리에 가서 고기나 잡자하고 갈릴리로 왔습니다.
고기잡지만 고기가 안 잡힙니다.
그때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은 숨길 것이 없는, 발가벗겨진 나 자신일 뿐입니다.
여러분
십자가에는 우리의 연약함이 달려있고, 우리의 허물이 못박혀있고, 우리의 잘못과 죄가 못박혀 있습니다.
마산교회 지난 시간들 보면서 기쁨도 있었지만 아픔과 슬픔도 있었습니다.
성 바울로가 팔삭둥이같은 나를 이렇게 표현한 것처럼,
부족하기만 한 나를 불러주셔서 하느님의 자녀 삼아주신 하느님께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감사드려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합당합니다.
부지런히 감사드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또 하나는 주의 기도에서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주듯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주시고,”
우리에게, 우리교회에, 나에게, 서운하게 하고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해야 겠습니다.
일곱 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신 것처럼 마음에 담아두고 가두고 있는 일이나 사람을 용서하셔야겠습니다. 그래서 자유하시기를, 해방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말을 들은 베드로가 괴로웠겠죠.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이 말만큼은 안하셨으면 했는데 그 말을 하시네요.
제가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 한 분 한 분에게 헬레나야, 요셉아, 모니카야,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여러분 대답하시겠습니다.
-제가 사랑합니다.-
내 어린 양들을 잘 돌보아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제가 사랑합니다.
내 어린 양들을 잘 돌보아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제가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
내 어린 양들을 잘 돌보아라.
베드로를 너무나 잘 아시는 주님께서 그의 연약함을 익히 아심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명을 맡겨 주세요.
그를 불러 제자로 삼으셨기 때문에 사명을 맡기십니다.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완벽해서 사명을 맡기신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그 연약함 가운데 그 속에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교회의 모든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전부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깊이와 넓이 크기가 달라지고 변화하는 것이 신앙의 경륜이고 성장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제가 사랑합니다. 수시로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고백하시는 분에게 사명을 맡기십니다. 뭔가를 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 양을 먹이라.
연약해도, 허물이 있어도, 그것을 인정하고 주님께 올려드리면 주님의 십자가에 영광이 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 믿는 신자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제자를 부르시면서 제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선교사나 성직자만 해당되지 않아요.
우리가 제자입니다. 제자로 부르신 주님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보내십시오.
이사야서 6장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선교130주년, 마산 선교 44년을 맞으면서 주님께 많은 고백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고백에 담긴 마음과 헌신을 통해서 우리의 삶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에 새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자주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선교 130년 전 오늘 이 땅에 첫발을 딛은 고요한주교님에게
우리나라의 성공회 선교를 시작하신 그 비젼 안에 우리가 있었습니다.
마산교회가 있었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