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윤 선교사님(우간다 성공회 세번째 이야기)
우간다 김정윤 선교사
우간다 성공회 소속으로 수도 캄팔라에서 420km 떨어진 북부지역 네비교구 골리에서 33년간 사역하는 한국인 독신 여선교사 김정윤 선교사를 소개하려한다. 김선교사는 17년 전, 필자가 예수원에서 생활할 때 방문하여 만난 적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장로교회 신자였던 간호사출신 김선교사가 우간다에서 성공회 소속으로 사역한다는 사실과 아프리카의 사역에 관심이 끌렸다. 그래서 ‘한번 가 보리라’ 마음으로 벼루며 간간이 연락하던 중, 지난 5월 그곳에 다녀왔다.
김선교사는 30세에 미국에 가서 12년간 필라델피아 동쪽 유태인병원에서 풀타임으로, 서재필기념의료원에서 한국인 돕는 보건진료소에서 파트타임 간호사로 있었다. 어느 날 한국인부흥집회에 참석하여 선교사로 헌신하여 한국월드컨선선교회를 통해 스코틀랜드에서 시작한 A.I.M(Africa Inland Mission-아프리카 내지 선교회) 뉴욕본부에서 훈련을 받고 1985년 우간다로 파송되었다.
1940년에 설립된 우간다 북부 아루아(Arua)지역 성공회 마디웨스트나일(Madywestnile)교구 소속 쿨루바(Kuluva)병원 의료선교사이자 우간다 성공회 선교사로서 첫 걸음을 시작하였다. 당시에 우간다는 62년 영국의 보호정치에서 독립하여 오보테 정부 출발, 이디아민 반군활동, 70년에서 80년까지 이디아민 정권 장악으로 외국인 추방, 학살, 질병, 영양결핍, 에이즈 창궐로 인구감소 등 정치적인 오랜 혼란으로 나라상황이 말이 아니었을 때였다.
김선교사는 쿨루바병원 동산에서 기도, 금식기도, 전도, 영성훈련 지도 등 의료사업과 동시에 선교를 해야만 했다. 병원 근처에 성공회신학교에 있던 영국선교사들은 떠나고 자국 직원들은 학살된 형편이었다.
진찰하는 김정윤 선교사
아루아지역에 의료선교사이며 교육분야 선교사로 파송된 김선교사는 쿨루바 병원에 두 명의 간호사, 조산사, 불결한 매트레스, 이, 빈대, 파리가 득실대고 수술실 천장이 뚫려 고양이들이 내려다보는 등, 일반병실은 지붕만 덮여있는 열악하기 이를데 없는 환경을 보고 낙심하였다. 시설좋은 미국병원에서 12년간 있었기에 이런 형편에서 환자를 수술하는 것을 보며 살지 못할 줄 알았던 환자가 1주일 후 회복하고 퇴원하는 것에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고 일 하기로 마음을 잡았다. 그때부터 간호교육과 전도자 양성교육을 함께 하였다. 병원 진료도 하면서 의사, 간호사를 가르치고 비인가로 간호사 교육을 해오다 93년에 간호학교가 정부로부터 인가를 받았고 32명 교육받은 간호사들은 전부 신자로 헌신하였다. 당시 이 교구에 영국에서 공부한 젊은 사제인 청년사역자 헨리 오롬비(Henry Oromby) 사제가 부임했는데 차에 스피커를 달고 홍보해서 사람이 모이면 말씀을 전하는 열정적인 분으로서 김선교사가 요청하면 언제든 지 와서 말씀을 전했다. 이때 오롬비 사제로부터 신앙적인 지도와 도움을 받았던 젊은이들이 현재 초, 중등교사로 교회의 중진이 되었다. 정식 간호학교로 등록되던 93년에 김선교사는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여겨 미국에 들어갔다. 이해에 오롬비사제가 네비지역 총사제로, 10월에 마디웨스트나일교구에서 분리, 신설되는 네비교구 주교로 승좌식에 초대를 받고 들어오면서 선교에 협력하게 되었다.
가운데 김정윤 선교사
김선교사는 네비지역 주민들의 보건을 위해 공중위생보건교육을 총사제들에게 실시하고 더 나아가 정부지원 보건교육을 네비교구 전 성직자에게 실행하였다. 2000년대에는 선교회의 전인구원사역 교재를 총사제들과 웍샵을 통해 지역 현실에 맞는 교재로 재구성하여 지역교회 성직자와 전도사들에게 전달교육을 하는 등 교육에 힘썼다. 교육받은 이들은 1년에 1-2회 전체 재교육을 하며, 의료와 신앙교재보급과 교육은 네비교구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2000년대 들어 보건소를 관리 운영하는 위원회를 구성하여 담당하는 이들이 운영에 참여하고 있고 네비교구 보건담당자로써 그간 늘어난 네 개의 보건소(골리, 좀보, 파트워트, 냐리에기파쵸라)를 방문하여 운영 및 관리를 도우며 이동진료를 실시했다.
골리헬스센터
병원 입원실, 입원하면 온 가족이 함께 와서 있는다. 심지어는 키우는 닭이나 개까지도 데려 온다.
골리보건소는 100병상을 갖춘 골리헬스센터로 그 지역에 유일한 준종합병원 규모가 되었다. 또한 교도소와 지역에서 전도하는 전도팀을 구성, 훈련하여 교도소와 지역에서 전도를 담당하고 있다. 한국(한국의 장로교회들)에서 단기선교팀이 방문하면서 중고등학생 장학지원 사업을 시작하여 현재 10명에게 후원하고 있다. 한동안 영락교회 대학부에서 모금하여 우물파기 사역으로 5개 펌프 작업을 한 적도 있다. 여성 바이블공부는 매주 금요일에 하고 있는데 100여명이 32그룹으로 나눠 성경을 읽게 해서 문맹에서 벗어나도록 교육하는 사역이다. 이 지역에 고산지 13만평을 기증받아 영성훈련하는 골리영성훈련센터를 설립하고자 기도하며 애쓰던 중, 16년 4월 그간 도로사정이 안좋은 비포장도로 운전을 해오다가 척추 부상을 입어 한국에서 수술, 다시 우간다에 들어가 활동이 어려운 상태지만 선교사역은 진행 중이다.
골리영성훈련센터 채플
우간다 33년 사역은 선교사의 자격이 없는 사람을 하느님께서 부르시고 사역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할 뿐이라 말한다. 김선교사는 2005년 연세대에서 설립자 언더우드의 선교정신을 기리며 한국 선교사에게 주는 언더우드상을, 2011년에는 대한기독간호사협회 공로상을 수상했다.
‘우간다의 나이팅케일’로 불려지는 76세인 김선교사에게 그간 말라리아에 몇 번 걸렸냐는 질문에 “아마 40번 정도 걸리지 않았을까, 첫해에는 한 달에 한 번, 그 다음해에는 두서너 달에 한번씩...”.
김정윤선교사님과 댁에서, 한국에서 허리시술하고 들어가서 휠체어타고 다니던 중 넘어져 골반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해 우간다에서 수술을 했다. 일상보행이나 활동이 어려운 상태이다.
골리대성당 주일예배
골리대성당 전경, 붉은 지붕이 채플 옆의 건물은 여러 기관의 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