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직

담담한 기쁨(2003년 부제서품 당시 쓴 글)

유테레사 2021. 4. 7. 20:40

<서품소감> 담담한 기쁨

유 테레사 부제(2003년 서품 당시 쓴 글)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는 날이 평생에 몇 번 있을 것이다. 그간 늘 축하해주는 사람으로만 참석하며 마음 한 편으로는 부러움같은 것이 넌지시 자리잡곤 했는데 막상 내가 축하받는 사람으로 한꺼번에 여러 개의 꽃다발을 받으며 그간의 아쉬움을 다소 풀어보았다고 한다면 너무 가볍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를 비롯해서 동생내외, 작은 어머니, 사촌동생 등 가족과 내가 살아오며 만났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모여 마치 지난 내 삶을 한 자리에 모아놓은 듯 그들을 보면서 감격도 하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당신의 완벽한 연출이십니다.” 그런 마음이 들었다. 생각지도 않은 사람들 가운데 한 분이 재인 사모님이시다. 여전히 소녀같으신 미소로 테레사부르시며 축하해주실 때 안스러우면서도 기뻤다. 이곳에서 뵐 수 있다는 것에....

여러 사람들이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서품인데..” “그렇게 원하던 것인데..” “얼마나 기다렸어요이런 말들을 들을 때 정말 내가 그렇게 성직자가 되기를 기다렸는지 되뇌어보았다. 89년 성직고시를 보던 때로부터 14년만이고 83년 신학교 입학한 때로부터는 20년만이다. “나는 이 희망을 이미 이루었다는 것도 아니고 또 이미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달음질칠 뿐입니다.(3:12)” 사도바울로의 고백이 얼핏 떠오르면서 이것이 나의 목표였다면, 아마 지난 시간들을 견뎌오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성직고시를 본 다음해인 90년에 내 삶을 하느님께 헌신하며 나의 진로는 하느님께서 계획하시고 진행하셨고 나는 그때 그때 가라고 하시는 곳에 가서 그곳의 사람들과 함께 살며 그곳의 사람이 되었다. 태백교회, 대전대성당, 충주교회 그리고 예수원.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삶을 배웠다고 할까? 왜 이런 시간이 필요했는지 이제 알 것 같다. 그들에게 받은 사랑, 그들에게 난 참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참아주고 받아준 사람들, 고맙기 그지없고 감사할 뿐이다. 나를 잘 아시는 하느님의 완벽하신 연출이라고 할 수 밖에...

사람에게는 사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기 위한 연출이었다. 사람은 사랑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 하느님께서 그렇게 만드셨다. 그래야 사랑을 할 수 있다. 사랑을 줄 수 있다. “그나마 섬길 수 있는게야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다.

성직서품날짜가 잡히면서 예복을 맞추고 서품피정을 하고 하루 하루 지나면서 이제 성직에 오르게 되는가 보다그러할 때 마음에 부담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랜 야인 생활(?)이라는 자유로움을 박탈당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내 느긋한 생활도 조금은 민첩해져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어찌 될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상주교회가 생긴이래 성직 서품식은 처음하는 행사라고 하듯이 교회 전체의 행사로 치루어졌다. 성당 내부의 리모델링과 도색공사, 조명공사로 성당이 환하게 바뀌었고 어머니들의 정성어린 음식 준비 등 잔치를 앞둔 설레임이 교회와 교우들에게 가득함을 느끼며 맞이하였다.

서품식 날이 되어 전날 비가 쏟아졌고 아침녁에도 가는 비가 뿌렸는데 진행되면서 날이 개었다. 신학교 동기 신부님의 설교가 진솔하게 들렸다. 순종과 겸손의 서약으로 제단 앞에 후보자 네 사람이 엎드려있는 동안 기도를 바칠 때 발을 붙이라는 연습 때의 지침이 있어 발을 붙이기 위해 힘을 주느라 기도 말들이 귀에 잘 들어오지는 않았다. 부제 서품 예식에서 주교님이 질문을 하실 때마다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주교님을 바라보며 나름대로는 힘있게 답변하며 내가 늘 접하던 것들이고 바라던 바이어서 너무나 익숙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예산교회 신부님이 모시고 네 번째 자리에 앉아 계신 연두색 한복을 입은 어머니는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하실까? 자꾸 쳐다보면서 가여운 마음에 몇번 울먹울먹 했었다. 평생 삶을 포기하며 사신 어머니는 당신의 무기력과 무능력으로 모든 것에 마음 문을 일체 닫기로 하신 것인지, 치매도 있으시지만 당신이 늙으신 것이 염치없는 것인지 인사하는 사람마다 이렇게 늙었어요.” “팔십이 넘었어요로 인사말을 대신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너무나 아파온다. 집에서도 밖같에 나오시지도 않아 다리힘도 약해졌다고 오빠의 성화가 대단하다. 서품식에 오라고 몇 번을 전화하고 전화해도 이제 밖에 안 나간다그 말씀만 되풀이하시던 어머니, 겨우 겨우 예산의 신부님께서 모시고 왔다. ‘평화의 인사에 다른 사람보다도 어머니에게 가서 절을 하리라 마음먹고 있었기에 그렇게 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이 눈물을 흘리지 않으시는 모습이다. 나에게 오는 올케의 눈에도 눈물이 보이면서 서로 안았다. “명희 언니오래만에 듣는 목소리는 신학교 동기들이 이층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데 너무 반가웠다.

식이 다 끝나가며 마지막 파송예식, 이것을 두고 기도하며 기도부탁하며 올 것이 왔다. “나가서 주의 복음을 전합시다. 알렐루야 알레엘루야기어가는 목소리로 예수원에서도 늘 두려워했던 것을 이제는 담대하게 해야한다. 그래서 담대하게 소리를 질러 했다.

나가서 주의 복음을 전합시다. 알렐루우야 알레에에에엘루우우야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화답하며 모든 서품식은 마쳐졌다.

오늘 아침에도 비가 뿌렸는데 오후부터는 개이면서 날씨마저도 덥지않아 잔치에 기쁨을 더해주는 듯 했다.

한 팀, 두 팀, 서울로, 부산으로, 모두들 가시고 난 후 상주교회 사람들이 분주하게 뒷정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방으로 들어왔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담담하게 기뻤다. 내 속에서 힘이 난다.

함께 하는 기도모임 중에 내 안에서부터 감사가 솟아나온다

하나님 저를 당신의 종으로 삼아 주심에 감사합니다.”

나를 택하시어 종으로 삼아 주심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놀랍고 엄청난 축복이다. 내 평생에, 앞으로도 영원히 감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