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 성공회(聖公會) >
세계 성공회는 전 세계 170여 개국에 38개의 독립적이고 자치적인 지역 관구 교회로 이루어져 있으며 신자는 약 1억명 정도이다.
성공회는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175년경 이미 영국에 교회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성공회의 기원은 초대교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성공회는 7세기에 로마교회와 병합되어 발전을 거듭해 오다가 16세기에 대전환을 맞는다. 16세기 종교개혁의 파장이 영국에도 큰 영향을 주어 결국 루터교, 장로교 탄생과 더불어 영국은 3대 종교개혁의 온상이 된다.
1. 성공회란 어떤 교회인가.
성공회란 어휘의 영어적 의미는 'Holy Catholic Church'이다. 이를 직역해 보면 '거룩한 성도들의 모임'이란 뜻이다.
성공회는 16세기 종교개혁을 통하여 교황권의 관할과 교리상의 지배에서 분리되어 나온 3개 교회집단(성공회, 루터교, 개혁교회)의 하나로서 영국교회의 대표주교인 캔터베리 대주교 관구와 통공(通共)관계에 있는 교회다.
성공회는 로마 가톨릭도 아니고, 일반 프로테스탄트도 아닌 중간 위치에서 양쪽을 포용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영국교회를 모교회로 하여 그 역사의 뿌리가 중세기 이전 영국역사에까지 뻗어있다.
오늘날 성공회 내에는 로마 가톨릭에 가까운 앵글로 가톨릭(Anglo Catholic), 전통의 고교회파(High Church), 개신교 전통을 중심으로 복음주의 노선인 저교회파(Low Church), 그리고 이 양자 중 아무것에도 속하지 않은 광교회파(Broad Church)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명확한 구별 없이 존재한다.
그래서 성공회는 세계 성공회가 하나로 연합되는 중앙헌법이나 기구도 없고, 각자가 독립하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본질적인 것에 일치, 비본질적인 것에 다양성’이라는 전통을 이은 성공회는 19세기 이래 교회일치를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영국으로부터 전래된 대한 성공회는 고교회파에 속하며, 성사와 전례를 중시하는 고교회파 성공회의 건축적 전통은 로마 가톨릭과 유사하다.
교리는 공교적 신앙을 지키고 그 기본바탕은 세 가지 신경(니케아신경, 사도신경, 성 아타나시오 신경)을 믿는다,
구약성경 39권과 신약성경 27권을 정경으로 삼고 이외에 성경 외전인 14권의 책을 생활의 규모와 도덕의 교훈으로 읽고 준 정경으로 삼는다.
중요한 성사로 세례성사와 성체성사가 있고 성직은 세 가지 성직의 성직품인 주교, 사제(신부), 부제가 맡는다.
종교개혁시대 영국교회는 초대교회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가톨릭 전통을 유지하면서 개혁사상을 받아들여 로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를 포용하였다.
근대에 이르러 나태해진 신앙을 18세기에는 복음주의 운동으로, 19세기에는 옥스포드운동으로 교회의 신앙을 확립하였다.
성공회 신앙의 세 가지 지침 : 성경, 이성, 전통
2. 성공회의 역사 (잉글랜드 종교 개혁)
성공회(聖公會)란 말은 ‘거룩한 성도의 모임을’의미한다. 이것은 사도신경의 <거룩한 공회>(Holy Catholic church)이며, 교회의 본질을 설명 해 주는 뜻 깊은 말이다.
성공회는 1534년 헨리8세가 수장령(首長令)을 발표함으로써 그 씨앗을 뿌렸으나, 1547년 에드워드 6세의 즉위와, 1549년 11차 공도문(Book of Common Prayer)이 제정되면서 그 바탕을 이룩하였고, 1558년 엘리자베스1세의 즉위와 통일령(Acts of Uniformity, 1559)의 발표로 성공회의 성립을 확고히 한 후, 성공회 신학이 근본이 된 <39개 신조>를 선언(1563년)했는데 이것은 앵글리카니즘(Anglicanism) 신조의 기본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그 기반을 공고히 하였다.
① 종교개혁의 요인
대륙 유럽에서 종교개혁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영향력이 영국(잉글랜드)에서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이 영향력이 집중된 역사의 시점은 헨리 8세(Henry VIII. 1491-1547) 의 치세이다.
그는 아라곤의 캐더린(Catherine of Aragon)과의 결혼을 무효화하여 재혼을 통해 왕위와 영국을 딸에게 상속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교황에게 청원을 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교황 클레멘트 7세는 헨리 8세의 이혼을 인정해 주지 않았고 그는 가톨릭교회를 벗어나고자 했다.
그리하여 그는 영국에 자신을 수장(Supreme head)으로 하는 로마와 독립된 민족교회를 세우려고 결심하였다. 그는 변화를 도입하였으나 이 변화는 그 다음에 뒤따를 변화의 서막에 불과하였다. 향후 50년간 그와 그의 후계자들을 자문한 인사들이 헨리 8세의 계획을 훨씬 넘어서는 개혁된 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영국의 종교개혁 원인을 다른 측면에서도 볼 수 있었다. 헨리 8세의 시대 이전에 이미 상당한 힘으로 작용하고 있던 세력들 가운데 첫 번째 세력은 강력한 반교권주의(a bitter anticlericalism)였다.
교회의 토지 소유가 확대되어 있었다. 어떤 이의 평가에 의하면 교회는 영국 전체 토지의 1/3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토지 소유는 권력을 낳았고, 이 권력이 발휘되는 과정에서 부정이 생기게 되었다. 성직층은 정부와 행정을 독점하였다.
그 결과 학문의 전통이 영국의 대 수도원들에서 퇴락하였고, 수도원들은 별다른 빛을 비추지 못했다. 이러한 이유에서 헨리 8세의 개혁, 즉 성직층이 섬기던 로마 교회와의 결별의 조치는 대부분의 영국인들에게 환영을 받았거나 적어도 큰 저항 없이 받아들여졌다.
1534년 헨리 8세는 수장령(Act of Supermacy)을 발표하여 영국 성공회의 유일한 수장이 되었다. 그 후 헨리는 수도원을 해산시키고, 막대한 수도원의 재산을 소유하므로써 로마교회의 세력의 발판을 제어하였다. 또한 그는 3년 동안 376개의 수도원들을 철폐하고 그 곳의 유물들을 경매로 팔아치웠다. 이제 그는 또한 영국을 로마와의 법적인 분리로 이끌었고, 이런 세력(요인)들은 영국을 로마와의 교리적 분리로 이끌었다. 교리면의 쇄신도 드물게나마 이루어지긴 하였으나 그것이 가능했던 것도 왕의 수장권의 확립과 확대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16세기에 이르면서 두 가지 요인이 추가적으로 나타났다. 평신도들의 문자교육과 성경의 출판이 그것이다. 결국, 기독교를 이해하게 되면서 엄청난 모순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미 종교개혁의 선구자인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8-1384)는 속된 성직자들을 비판하였고, 기독교신앙의 유일한 원천인 성경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었다.
② 개혁의 진행과 성공회의 설립
헨리 8세가 죽은 후, 아들 에드워드 6세(Edward VI, 1537-1553)가 1547년 왕위에 올랐다.
1549년 에드워드는 통일령을 발표하였다. ‘통일령’(The Act of Uniformity)이란 영국의 종교개혁 때 성공회의 예전 및 기도서를 통일시킨 법령으로 1549~1562년에 걸쳐서 발표되었다. 또한 루터파와 칼빈파의 교의(dogma)를 참고하여 같은 해에 <공도문>의 일반적인 사용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1553년에 왕위에 오른 메리는 로마교회를 부활시키고 교황권을 재확인하였다. 이때 개혁파 성직자가 2,000명이나 사형을 당하였다.
그 후 엘리자베스 여왕은 가톨릭의 많은 정치적, 종교적인 신조들을 거부하는 한편 국가뿐 아니라 교회마저도 장악하려는 속셈으로, 그리고 그녀의 통치영역 안에서 다양한 종교적인 요소들을 가능한 한 통합하려는 마음이어서 교회 안에 존재하는 청교도들의 극단주의를 배격하였다. 그녀는 1559년 수장령과 통일령, 그리고 1563년의 결정적인 주교회의(Convocation)에 의하여 자신의 만든 앵글리칸의 모형(Anglian Church)에 순응하도록 촉하였다. 이것이 오늘날 성공회의 원형이 되었다.
③ 성공회의 신학사상
윌리엄 스코트는 영국 성공회의 교리적 신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 먼저, 성경에서 표현되고 있는 기독교 신앙에 영국 교회는 무조건적으로 동의한다. 영국 교회의 신앙은 성경적 신앙으로서, 다른 종교개혁 교회들과 같은 노선을 취한다. 성경은 신앙의 유일한 규준(the sole rule of faith)이다. 구원을 위해서는 성경에 포함되어 있는 것만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성공회는 초기 교회 역사에서 이루어 놓은 업적도 존중한다. 따라서 영국교회는 초기 교부들과 교회 회의에서 이루어진 신경들과 가르침을 특별한 존경의 대상으로 삼는다. <39개조>에 나타나 있는 중용적인 신교신조는 국민감정에 적합한 것이었다.
<제 39조>는 연옥신앙을 거부하고, 성상과 유물에 대한 미신적 신앙을 거절한다. 또한 화체설을 받아들이지 않고 대신 쯔빙글리나 칼빈주의적 해석을 허용한다. 즉, 성찬식에서는 오로지 천상의 영적인 방식에 따라 그리스도의 몸이 주어진다. 그리스도의 몸이 주어지는 방편은 믿음(신앙)이다.
또한 <제 31조>에서 미사의 희생제사적 측면을 비난한다. 따라서 십자가상에서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이상과 같은 점들을 고려해 볼 때, 성공회는 중도적 입장에 서 있다. 물론 성공회는 종교개혁의 기본적인 모든 원리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교리적 문제에 있어서 이러한 중간 입장은 전형적인 영국적 성격인 합리적 정신, 내지 중용의 정신의 표현이다. 교리에 대한 이와 같은 태도는 영국 성공회 내에는 기독교 신앙의 소유 면에서 언제나 상당한 신축성과 포용성이 존재하여 왔음을 뜻한다.
이 중도 사상은 오해되는 경우가 많다. 성공회가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회의 중간적 위치에 있는 교회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중간이 아니라 두 극단을 포용하는 신학과 교리를 수용하고 있다는 의미로서의 중도(中道)이고, 다리교회라 말 할 수 있다.
이러한 포용성은 문제점도 안고 있다. 즉 기독교신앙의 본질적인 요소에 대한 강한 집착이 희미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하나의 지붕 아래 일치와 다양성을 모두 수용하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지만 성공회는 이렇게 자신의 신앙과 신학을 이어왔다.
성공회라는 이름의 역사적 배경과 그 의미를 알리고자 한다.
3. 성공회, 聖公會라는 이름은 영국교회가 동북아세아의 한문문화권에 선교 되면서 붙여진 한자 이름이다.
한국, 일본, 중국에 있는 영국교회 전통의 교회들이 모두 같은 聖公會라는 간판을 붙이고 있다.
聖公會는 거룩 성 聖, 공번된 공 公, 모일회 會이고, 거룩하고 공번된 모임이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Holy Catholic Church 이다.
우리의 신앙고백인 사도신경에 들어있는 문구이다.
캐토릭이라는 용어는 公的이고 public, 보편적 universal, 전체적 whole이라는 뜻으로 그 원어는 희랍어 katholikos에서 온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캐토릭이라는 말을 쓰면 로마 캐토릭 교회를 생각하는데 캐토릭이라는 어휘자체는 좋은 뜻이다.
교회가 공적이고 보편적인 성격으로서 어느 특정한 시대나 인종이나 계급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4. 한국성공회의 특징 : 성공회 (영국교회)도 19세기에 옥스퍼드 대학교 안에서 로마캐토릭 전통에 접근하는, Oxford Movement 즉 Anglo-Catholic으로 알려진 하이처치 High-church 운동이 있었다.
로마캐토릭 처럼 의식(儀式), 칠성사(Seven sacraments) 등을 강조하는 신학이다.
신부father, 미사(Lat.missa) 등의 단어들은 모두 하이쳐치 전통 즉 캐토릭적 용어들이다.
한국에 온 영국인 선교사들이 하이처치 선교단체인 S.P.G.선교회에 소속되어 있었다.
한국인들은 성공회라면 로마캐토릭 교회와 비슷한 것으로 오해를 한다.
일본, 홍콩을 포함하는 세계 여러 성공회에서는 High Church 만이 아니라 개신교적으로 복음주의와 설교를 더 강조하는 Low Church 전통의 성공회도 많다.
일본과 홍콩에서는 성공회 성직자를 神父호칭 아닌 牧師라고도 부른다.
성공회의 발상지인 영국에서는 국교로서 공식이름이 the Church of England 이다.
이와 관련하여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에서는 앵글리칸 쳐치 Anglican Church라는 이름을 쓴다.
5. 성공회는 감독(주교)이 위에서 성사적으로나 행정적으로 살피고 다스리는(over-see), 감독 위주의 교회라는 뜻이다. 그러면 영국교회나 Anglican church는 무엇이냐? 쉽게 말하면 영국적 교회라는 뜻이다.
이런 관련에서 영국교회의 공식명칭인 the Church of England나 그 영국민들이 식민지로 이주해서 세운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앵글리칸 쳐치는 모두 영국 교회와 연결된 이름이다.
그렇다고 전세계 성공회의 협의체인 Anglican Communion에 속한 각 나라의 성공회들이 로마교회의 교황 처럼 최고위의 휘하에 속한 것이 아니다. 각 나라의 성공회들은 자율적인 권위와 행정을 실행한다.
성공회는 신학적으로는 다른 어느 교단보다도 건전하고 옳은 교회이다. 참된 의미의 캐토릭 전통과 성서를 중요시하는 푸로테스탄트의 복음주의를 다 포함하는 중도적 Via Media의 교회이다.
6. 성찬례
유카리스트 희랍어 감사하다
성공회 성찬례는 감사에 초점
사제가 빵을 들어올릴 때 회중, 자신을 높이 들어 봉헌하는 것, 바침
빵을 보며 십자성호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그 제물임을 표현하는 행위
축성은 우리의 진정한 봉헌이 이루어진 후에 진정한 감사의 마음이 받아진 후에
회중 모두 참여하는 마지막 “아멘”후에 이루어진다.
사제와 회중 모두 함께 함께 절을 하며 봉헌하는 것이다.
제정사에서 빵을 언급한 부분 마치고 “방을 들어 봉헌한다”
잔을 언급한 부분을 마치면 “잔을 들어 봉헌한다”
회중의 아멘이 끝난 후에 “축성된 성사에 예를 표한다”
이 세 지침은 모두 회중들이 사제를 따라 반응하는 행위와 연관되어 있다.
-기념설과 임재설
전례문은 하느님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
말씀의 전례, 청각적 예배 속에서 참된 하느님과 우리의 수직적 관계를 조명하고
그 빛 안에서 성찬의 전례를 통해 모든 물질의 주인이신 참된 하느님께 감사하며
이웃과 함께 빵을 나누는 수평적 순서로 나간다.
성찬례의 성사성
과월절 사건과 십자가 사전이 기억되고 그 사건을 재현하는 순종의 행위에 있다.
성찬례의 신비는 마지막 만찬의 말씀 “나를 기념하여 이 예를 행하라”는 명령에 순종하며 주님의 삶을 기억하면서 빵을 나눌 때 실체가 상징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신비이다.
7. 신자생활 : 성사를 통해 이루어진다.
성사는 사제를 중심으로 7성사, 세례, 성체, 고해, 혼배, 조병 성사는 사제를 통해서
견진과 서품 성사는 주교님을 통해 이루어짐
1. 전통: 전통을 간직한 상태로 개혁의 신앙을 받아들였다. 즉 성전의 모양, 초대교회 때의 성인을 신앙의 모범으로 삼는 것 등.
2. 성사: ‘보이는 것들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현존을 만난다’는 성사는 예수님이 직접 세우신 ‘성체 성사’와 ‘성세 성사’와 성서 안에 있는 성사들- 견진 성사, 고해 성사, 혼배 성사, 조병 성사, 와 신품 성사가 있다.
3. 예전: 예배의 형태를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 두 부분으로 말씀과 작은 예수로 세상에 파송되는 성찬의 의미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 성공회의 믿음의 근본은 성서를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었다고 믿으며, 삼위일체을 고백하는 아타나시오 신경과 사도 신경, 니케아 신경을 이단을 가려내는 지표로 삼고 있다.
□ 는 천주교
* 성공회가 갖고 있는 것 외에
1. 성모 마리아 무 원죄: 천주교는 성모 마리아의 무원죄 뿐만 아니라 성모 마리아가 예수 외에 자녀를 갖지 않았으며, 승천했다고 믿는다.
* 그러나 성공회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모든 사람이 원죄를 갖고 태어났다고 믿으며, 성모 마리아를 성경에 있는 그대로 ale고 존경하며, 신앙의 모범으로 삼지만 성모 마리아에게 자신을 의탁하거나 하느님의 자리에 두지 않는다.
2. 공로설: 구원은 믿음 외에 자신의 착한 행위가 구원의 조건이 된다고 믿는다. 성공회는 착한 행위는 자연스럽게 행하게 되는 하느님 자녀의 행실이지 구원의 조건은 믿음으로 충분하다고 믿는다.
3. 연옥설: 사람이 죽으면 즉시 하느님의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연옥이라는 곳에 있다가, 가족들의 기도나 다른 것들에 의해 천국이나 지옥에 간다는 교리로 이로써 천국 티켓을 파는 중세기 부패의 온상이 되기도 하였다.
4. 교황 무오 설: 교황의 말씀은 절대 잘못이 없다고 믿는 교리로, 성경과 같은 권위에 두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를 사형과 영원한 지옥으로 보낸 것 등, 시대적으로 많은 잘못이 있음을 시인하고 있다.
절기 : 예수님의 생애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대림절, 성탄절, 공현절, 사순절, 부활절, 오순절(성령강림절)
8. 성찬례 안내와 기도서 설명
입당 : 성수
절 : 제대를 향해(제대는 예수님의 몸을 상징)
십자성호 : 오른손가락을 모아서 이마(지혜, 정신, 생각), 왼쪽 가슴, 오른쪽 가슴(힘,능력,마음), 배를 찍은 후 양손을 모아 기도손
-성찬례 성체거양(몸이다, 피다, 들어올릴 때)
성체성사하는 방법은 제대 사제 앞으로 나와 왼손 위에 오른 손 아래에 포개서 성체를 받아
오른 손으로 들고 보혈을 적셔 영한다. 옆으로 옮겨서 두손 합장하고 절하고 들어가서 잠시 묵상한다.
9. 대한성공회
1890년 한국에 전래되었다. 의료, 교육 선교로 시작,
1941년 2차대전 중 영일동맹파기로 외국인 추방, 선교사 나감으로 큰 타격입음
45년 해방되어 수습,
6.25로 정체, 1965년 한국인 주교 선출, 서울과 대전교구 분할
1974년 대전교구에서 부산교구 분할
서울교구는 서울과 경기도, 강원도 일부
대전교구는 대전과 충청남북도, 전라남북도, 강원도 일부
부산교구는 부산과 대구, 경상남북도, 제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