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천덕 신부의 삶과 영성(성령론)
대천덕 신부의 삶과 영성
(유명희 테레사 사제)
신부님께서 이 땅을 떠나시던 2002년 8월 6일 인터넷 추모글 가운데 어느 분이 쓰신 글입니다.
“예수님도 내가 떠나가는 것이 우리에게 더욱 좋다고 말씀하셨듯이...
신부님의 영향력도 그분의 소천 이후 더욱 넓어지고 풍성해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뜻깊은 이 자리를 비롯해서 대신부님의 삶과 영성이 더 확산되고 풍성해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특별히 대한성공회 안에 그렇게 될 것을 믿습니다.
1. 집안의 내력과 신앙 분위기
대천덕신부님의 삶을 지배하는 가치는 대대로 기독교 가정을 이루며 살았던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대신부님의 영성을 이루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Torrey 집안의 전통은 부모님의 신앙과 삶을 존경하되 자녀들은 각 자 주님의 부르심(소명)을 분별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격려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지정된 교단 안에서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데, 할아버지는 회중교회 목사, 아버지는 장로교회 선교사, 대신부님은 성공회 사제, 아드님 벤신부님은 동방교회 사제라는 것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이주한 대신부님의 선조는 더 나은 환경을 찾아 미국으로 와서 한 곳에만 정착한 것이 아니라 여러 곳을 이동하면서 살게 되었는데 대신부님은 집안의 내력을 개척자적인 선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모든 신념의 근거는 성경에 두었습니다.
신부님 가정에서 재정적인 면은 하느님을 신뢰하고 하느님께서 재정을 관리하도록 맡겨주셨다는 청지기 의식이 강해서 재정을 낭비하지 않도록 했으며, 이러한 선조들의 경험을 인정하고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2. 나고 자란 중국으로부터 받은 영향
대신부님은 중국 산동성 제남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중국의 대변혁기였던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에 보아온 중국의 사회문제인 빈곤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해결책을 찾아보고자 노력했습니다.
이때부터 가난한 사람에 대한 애정과 관심, 그리고 해결책을 위해 평생 마음에 담고 섬기고자 하셨습니다.
이런 마음과 함께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일반 성경이 어려운 단어로 번역되어 있어서 가난해서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겐 어려운 내용이라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성경 번역을 중요한 과제로 여기고 돌아가실 때까지 성경번역작업을 해오셨습니다.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쉬운 말로 번역해서 누구라도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성경 번역을 평생 과제로 알고 해왔습니다.
<빈곤과 토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중국에서 살던 때 사회의 빈곤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을 찾는 가운데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관심을 가졌고 공산주의가 더 현실적이라 생각하며 가까이 했습니다. 이후 미국에서 선원생활 할 때는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의 저서를 읽습니다. 선원들과 함께 노조 활동을 하는 등 적극적인 사회운동을 합니다. 그러나 이들과 지내는 동안 이들이 하느님을 믿지 않고 목적으로 수단을 정당화하려는 것을 보고 자신이 가야할 길이 아니라 여겨 이들과는 결별하게 됩니다.
그 후에 젊은 시절은 가난과 불평등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적 사회 운동 프로그램을 가진 기독교 단체를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던 중 제인사모가 성공회 부인들을 위한 수양회에서 소개받은 헨리 조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을 읽으면서 성경의 가르침과 일관된 내용을 찾게 됩니다. (또한 헨리 조지가 성경을 매일 읽는 성공회 집안이란 사실도 알게 됩니다.)
이 발견은 교회가 부자와 권세있는 자의 편을 들고, 세계 대다수의 사람들이 빈곤과 질병, 분노 가운데 살아가는 것에 무관심한 이 세계에 성경적으로 빈곤 해결책의 방법을 적용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주의 은혜의 해’(희년)를 어떻게 선포하게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3. 삼대에 걸쳐 형성된 성령론
<성령론>
대신부님 하면 성령, 성령의 사람, 균형잡힌 성령론을 가르치신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신부님 가르침 가운데 하나인 성령론도 할아버지인 토레이1세로부터 전해진 것을 좀 더 세분화 했습니다. 대신부님의 할아버지(19세기 신학자이며 부흥전도자인 Reuben Archer Torrey 1세1856-1928)는 19세기 미국 부흥사인 D.L 무디와 동역하신 분으로 미국 복음주의의 반열에 있는 신학자입니다.
대신부님의 성령론은 ‘성령의 두 가지 사역’, 또는 ‘성령의 두 가지 역할’로 구분한 것인데, 성령의 외적 사역과 내적 사역을 말합니다.
먼저 성령의 외적 사역은 ‘위로부터 오는 성령’, ‘기름 붓는 (anointing)’ ‘위에서 임하다, 임하는(come upon)’ ‘입히다, 감싸다(put on)’ 등으로 표현되는데 이것은 은사와 겉으로 드러나는 성령의 역사를 말합니다. 이런 단어를 뜻하는 헬라어 ‘프레데스(plethes)’는 배터리를 충전한다,는 의미의 ‘충전하다’(배터리를 쓰면 다시 충전해야함)이며, 이 능력은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의 행적들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성령이 충만하다로 표현합니다.
다른 한 가지 성령의 내적사역은 Ⅰ고린 13장과 갈 5장 22-23절에서 보듯이 열매에 해당하며 이는 인격을 성숙케 합니다. 헬라어로는 ‘프레레스(pleres)’인데 이는 나무가 열매를 맺기 위해 수액에 젖는다는 의미의 ‘흠뻑젖는 형태’입니다. 스테반을 포함한 일곱 집사의 성령 충만이 이에 해당하고 신앙으로 다듬어진 인격이 갖춰진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대신부님은 이를 ‘성령충분’으로 표현합니다.
성령의 외적인 힘, 능력(은사)과 내적인 열매(인격, 성품)라는 두 가지 성령의 사역이 함께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자연스럽고 보다 온전한 성령 사역을 하게 되는 점을 특별히 강조했습니다. 이전까지는 열매를 강조하고 은사에는 소홀히 여기거나, 반대로 은사를 강조하고 교회 질서를 존중하지 않아 문제가 되어 교회 내에서 성령을 거부하거나 아예 관심 밖으로 밀려나게 된 예가 종종 있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마 7:16-23). 즉, 은사는 인격과 상관없이 드러날 수 있기에 성숙한 인격 안에서 하느님의 뜻대로 행해지는 은사만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 나갈 수 있다는 이 점에 대해 대신부는 성령의 외적 사역과 내적 사역을 구분하고 둘 사이에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대신부의 성령론은 여러 선교단체와 많은 교회들에 보급되었습니다. 현재는 미국장로교회 브래드 롱이란 목사를 통해 설립된 국제두나미스협회에서 주관하는 6단계 전문 훈련프로그램으로 체계화되어 한국과 미국을 포함해서 영국, 아일랜드, 알래스카, 캐나다, 대만, 홍콩, 일본, 이스라엘, 중남미, 동유럽 등으로 확대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신부님의 성령론이 중요한 점은 은사 중심의 순복음교회 계통과 경건한 신앙생활로 열매와 인격의 변화를 강조하는 장로교회가 한 성령을 부분적으로 이해하고 멀어졌던 것을 같은 성령의 두 가지 역할을 바르게 한 것이며 두 가지 역할이 서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교회 안에 성령 사역이 바르게 되어지도록 한 것입니다.
성령론에서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성령 세례입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성령으로 세례받는 장면이 비둘기형상으로 묘사됩니다. 성령 세례는 일생에서 한번 경험하면서 당사자는 명확한 체험으로 그 전과 후의 차이를 인식하게 되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성령 세례를 받았는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을 방언을 하느냐, 안하느냐에 두는 경향이 있는데 (오순절 계통의 교회) 토레이 1세는 성경에 있지 않은 것이므로 그것은 동의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라 대신부님도 성령 세례를 강조하며 예수원에서 3개월 훈련을 받는 지원자들에게 ‘성령 안의 새 생활 세미나’(성령세미나)를 봄, 가을에 해왔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사행 2장)사건에서 보듯이 성령세례는 성령의 외적 사역의 시작이고 출발이며, 그 이후에는 위로부터 계속 부으시는 성령의 임재, 즉 성령의 충만이 있게 되는데, 이때 구하거나 주시는 능력(은사)으로 이 세상에 선교하도록 위임하셨습니다. 그래서 대신부는 설교나 강의를 하기 전 약 30분 가량 방언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면 ‘성령의 능력이 입혀지는(성령 충만)’ 유익이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성령세례는 누구에게나 일생에 유일한 특별한 경험이며 다른 은사들이 더욱 계발되게 하는 능력의 통로같은 것이지만, 성령 세례를 받았는지 여부에 따라 우리는 바리새적인 태도를 갖게 될 수 도 있고 개척자이신 예수님과 살아있는 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자서전25P)
4. 교회 공동체와 코이노니아
성령론과 함께 또 하나 중요한 가르침은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입니다. 대신부는 성령의 인격성을 강조하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령과의 개인적인 교제를 통해 성령의 실제적인 지도를 받으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 즉 성령의 통제를 받으며 산다는 것은 누구나 두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사역인 코이노니아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대신부는 미카엘신학원 원장 시절 1년간 영국 캔터베리 성 어거스틴 대학에서 수학하며 ‘신자생활의 세 가지 실험’에 관한 논문을 쓴 적이 있는데 예수원공동체는 그 연구의 실험실이기도 합니다. 신자생활의 세 가지 실험이란 첫째, 나와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수직적인 구조)입니다. 둘째, 우리(교회공동체)와 하느님과의 관계(신자 상호간의 수평적인 구조)입니다. 셋째, 교회와 사회의 관계(기독교공동체와 비기독교적인 사회와의 관계)를 말합니다. 공동체는 이것을 실험하고 검증하고 연구해보는 현장이며 여기에서 관계는 코이노니아를 뜻합니다.
성령의 내적, 외적 사역은 거듭난 자에게 성화와 복음 증거, 그리고 역동적인 교제가 형성되게 하며 새로운 모델인, 몸된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탄생하도록 시너지 효과가 생겨나게 합니다. 이것은 사행 2장 44-47절과 4장 32-35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대신부는 공동체(교회)를 이루는 성령의 사역을 코이노니아로 설명합니다.
대신부는 교회에서 코이노니아에 대한 이해가 많지 않은 이유로 오순절교단과 개신교에서 성령의 사역을 서구 개인주의의 영향으로 이해하고 개인적인 경험으로만 그쳐왔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오순절교단에서는 은사운동에 물질적 부를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여기는 번영신학으로 우리나라 교회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 또한 헬라어인 코이노니아가 우리말로 번역되기에는 그 의미가 너무나 많은 뜻을 담고 있기에 한 가지로 표현할 수 없어 성경에는 17가지, 또는 그 이상의 표현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성경에는 교제, 통용, 공급, 함께 받는 것, 동정, 나누어 줌, 사귐, 동무, 연보, 교통, 함께 함, 간섭, 상통, 교류, 친교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할렐루야’, ‘아멘’과 같이 번역하지 않고 ‘코이노니아’로 그대로 쓰여야한다고 합니다.
- 또 하나 오역된 단어로서 “교회”가 있습니다. 6세기경의 중국선교사들이 제국주의적 사고방식과 유학자들의 우월의식의 영향으로 “敎會”라고 번역하였는데 사실은 ‘사귈 交(교)’ “交會”(사귀는 모임-교회)로 번역해야 신약의 교회와 뜻이 맞다는 것입니다.
코이노니아는 신약성경과 교회, 삼위일체까지 포괄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이에 연관된 성경 구절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 주시는 친교를 여러분 모두가 누리시기를 빕니다.(고후 13:13)’ ‘우리가 보고 들은 그것을 여러분에게 선포하는 목적은 우리가 아버지와 그리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사귀는 친교를 여러분도 함께 나눌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1요한 1:3)’ 등이 있습니다.
죄인된 우리를 위해 외아들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주님의 아가페 사랑에 대한 전인격적인 반응으로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 물질이나 생명까지도 자원하는 마음으로 함께 나눔으로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세워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생전에 대신부가 코이노니아를 설명할 때 하던 농담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깡패요!” 서로 죽을 때까지 철저하게 책임지는 관계라는 의미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관심과 사랑이 코이노니아에 의한 나와 하느님, 우리와 하느님, 교회와 사회의 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이고 이것이 성경적 토지법인 희년사상의 실천과 맥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남을 위한 중보기도(대도)도 코이노니아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가난한 사람에 대한 책임은 교회공동체와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그렇게 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주의와 코이노니아는 서로 상반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개인주의는 교회 분열을 일으키는 죄로 여겼고, 기복신앙, 개인주의 지향을 한국교회 공동체성의 실패라고 했습니다. 이의 해결책으로 신부님은 공동체성 회복을 위한 여러 제안을 제시했습니다. 그 가운데는 신학교육에서 공동체성을 지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미카엘신학원 원장으로 재임시에 3년간 공동생활하면서 실천적 신학을 연구하도록 애를 썼습니다.
“한집에서 혼자 살면 내가 누군지 알 수 없습니다.
공동체는 내가 누구인지 알기 쉽게 합니다.
같이 살아야 진정으로 변하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공동체를 해야할 이유에 대한 대답입니다.
코이노니아는 실험이자 삶입니다. 대신부님 성령론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코이노니아입니다.
성령세례와 복음주의적 전통에 있는 대천덕신부가 성경적 경제원리에 의한 토지문제등에 집착한 것도 코이노니아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에 대한 대답으로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물질적 문제는 기도와 영적 전쟁이 없이는 해결될 수 없으며, 영적인 문제는 현실의 삶, 즉 실제적인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는 해결될 수가 없습니다.” 대신부님 하신 말씀입니다.
성경을 원어로 연구하면서 성령의 외적 사역과 내적 사역을 찾아 구분한 것은 한국 기독교계와 사회에 미친 공헌이 지대하다고 인정받는 점입니다.
5. 음양사상
대천덕신부는 생애의 60년을 중국과 한국에서 살았습니다. 태어난 중국 산동은 유교의 발원지입니다. 어찌보면 동양적인 사상에 더 영향을 받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동양사상과 신학의 토착화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는 동양 음양사상의 근거로서 창세기1장에 하느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남자를 ‘양’ 여자를 ‘음’, 따라서 음양은 ‘하느님의 형상’이며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런 대자연의 이치를 따른 동양 사상의 관점에서 성경을 숙고하면 ‘이것 아니면 저것’이란 한쪽을 선택하는 서양식 사고로는 알 수 없는, 더 폭 넓고 깊은 이해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앞에 있는 ‘성령의 두 가지 사역’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이전까지 학자들의 성령론은 성령의 열매, ‘거듭나게 해서 열매맺게 해야한다’는 내적 성령을 강조한 반면, 그 후에 대두된 오순절교단은 성령의 능력, 기적, 은사와 같은 외적 성령에만 치중하여 성령론은 양분된 상황이었습니다. 대천덕신부는 음양사상에 따라 사람의 내면을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는 성령의 내적사역을 ‘음’, 성령의 능력인 외적사역을 ‘양’으로 구분하여 음양의 통합과 조화로써 성령의 두 가지 내외적 사역으로 정리했던 것입니다.
그의 음양사상에 대한 이 같은 이해는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나타납니다. 미가서 6장 8절에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은 첫째, 공의(그는 ‘Righteousness’는 애매한‘의’일 뿐이고 ‘Justice-공의’라는 이 표현을 좋아했다.)를 실천하는 일이고 둘째, 자비를 사랑하는 일인데, 공의는 하느님의 법을 실행하여 가난한 사람이 없게 하는 것으로써 이를 양이라 하였고, 자비는 그래도 남아있는 가난한 사람을 돌봐주고 부족하면 더 도와주는 것으로서,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부족함이 없도록 코이노니아를 실행하는 이것을 음이라 했습니다. 따라서 사회문제는 사랑이나 자비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고 공의없이는 기본적 문제해결이 안되므로 공의를 먼저 행한 후 자비를 행해야 하는데 이 두 가지를 함께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선교사들이 공의에 대한 이해가 없어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 천국간다, 죄를 회개하라고 했지만 지금 이 땅에서 공의를 가르치지 않은 것은 실수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유주의신학과 민중신학은 공의를 추구하지만 성경을 따르지 않고 ‘정치적으로 옳은 말’(Politically Correct)을 따라 가다보면 일반화되어서 효과가 적으며 공의와 무관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성령을 무시하고 사회문제에만 관심을 갖거나, 사회문제는 무관심하고 성령만 강조하는 신학은 미성숙한 신학이라 보았고 이러한 교회도 문제로 여겼습니다.
이밖에도 나를 위한 기도와 남을 위한 기도, 기도와 노동, 제자가 되는 것과 제자 삼는 것, 전통적인 예배와 자유로운 예배, 알미니즘과 칼비니즘에 이르기까지 음과 양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중요한 것은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둘 다 인정하는 중용을 말합니다. 서양에서의 중용의 의미가 양쪽 길 사이의 가운데 길 정도로 여기는 것이라면,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쌍방으로 통행하는 넓은 길이 중용이라는 것입니다.
6. 예수원 생활
- 중보기도의 집, 예수원
예수원 설립 목적 가운데 하나인 ‘發力所(발력소)’는 한국교회와 세계 평화, 그리고 주님의 지상명령(마태28:18-20)을 이루기 위한 기도의 댐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교 현장에서 수고하는 많은 목회자와 선교사들을 위해 지속적인 기도를 하는 영적 발전소를 의미합니다. 그가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은 여러 교회들을 방문하면서 만난 목회자들이 설교와 예배에 성령의 임재와 생명력있는 활동이 약하고, 소진되기만 하는 어려움을 보면서 마음에 담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교회 안에 사역자를 위한 중보기도가 매우 부족하여 나타나는 모습으로 본 것입니다.
중보기도(Intersession prayer)는 남을 위한 기도입니다. 예수원의 주된 사역은 중보기도입니다. 매일 낮12시부터 30분간은 대도(代禱)라고 하는 중보기도를 하는데, 예수원을 방문한 사람은 누구든지 대도시간 참석을 규칙으로 할 만큼 중요한 예배시간입니다.
예수원 중보기도는 두 가지 형태로 합니다. 앞서 말한 매일 정오에 하는 대도를 외향적중보기도(Extensive intersession prayer)라 하며 이때는 교회와 성직자, 선교사, 국가의 문제, 지도자들, 요청하는 기도들을 기도문으로 만들어 인도자와 참석자들이 함께 한 달간 기도 압니다. 성공회를 포함해서 여러 교회와 성직자를 위해서는 날짜별로 돌아가며 기도하는 것은 예수원 설립부터 지속해온 기도입니다. 또 다른 한 가지 중보기도는 월요일 저녁예배 시간에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그 날에 정해지는 몇 가지 주제로 집중기도를 하는데 이것을내향적중보기도(Intensive intersession prayer)라고 합니다.
이외에도 공동체가족에게는 매일 한 시간씩 개인적으로 기도하기를 권장합니다. 실제로 대신부님은 점심식사 후, 매일 오후 1시부터 1시간 넘게 개인대도를 드렸습니다. 외부에 출타중 일때도 가져간 대도록으로 시간되면 대도를 드렸고, 부정맥으로 입원해서도 코에 산소호흡기를 하고 시간되면 대도록으로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방식은 철저한 기록을 바탕으로, 매일 중보기도와 일주일에 한 번씩 드리는 중보기도로 구분했으며 일주일에 예배와 기도시간이 30여 시간 가량 되었습니다. 스스로 기도생활의 모범을 보였고 본이 되었습니다.
예수원 헌장에는 대한성공회의 쇄신을 위한 언급이 있습니다. 예수원에서는 중보기도를 시작한 이래 매일 세분 주교님을 위해서, 사제들을 위해서는 돌아가면서 매일 기도해왔습니다. 대한성공회는 예수원에 사랑의 빚, 중보기도의 빚을 지고 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자리에 예수원 형제 자매들에게 지금 다함께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리면 좋겠습니다.
7. 개인적 일화들
- 대통령에게 편지
사무실 업무 일정이 아침 출근해서 신부님 우편물 부쳐야할 것을 확인하는데 문밖에 놓으신 봉투 하나가 있어 집으면서 보니 긴 포스트잇에 영어로 president 써있었습니다. 김대중대통령 재임기간인 99년으로 기억합니다. 신부님은 아무 말씀도 없으셨습니다. ‘이 편지가 그 편지구나!’ 마음 속으로 감격하면서 청와대주소를 찾아쓰고 ‘김대중 대통령님 귀하’편지봉투 쓰던 손이 떨렸습니다. 부동산투기를 금지해달라는 대통령께 드리는 서신이었습니다. 약간 두툼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 죄의 고백
예수원 주일 성찬례는 성공회식 미사를 드립니다. 교회와 다른 점은 죄의 고백을 공중고백하고 사제와 회중이 상호 사죄선포하는 것이 다릅니다. 죄의 고백 시간에 대신부님은 언제나 첫 번째로 죄 고백했습니다. 설립자의 정신과 신념을 알 수 있는 모습입니다.
- 대신부님의 리더쉽은 설립자의 독점적 권한을 내려놓고 의회의 결정에 따랐습니다. 예수원에 여러번 새 건물이 세워졌지만 변함없이 늘 1호실에서, 신부님 키에 딱 맞는 딱딱한 나무침대를 기억합니다.
- 새벽 4시 45분 일어나서 5시30분까지 원어 성경연구, 책상에 큰 원어사전이 펼쳐져있고 늘 공부하는 신부님으로 기억합니다.
- 신부님은 어느 누가 오던지 그를 진심으로 반갑게 맞이해서 마음에 머물 수 있는 자리를 내어주시는 분입니다.
- 어느 날 티타임 시간에 3개월 지원자들이 초대되어서 함께 들어갔던 적이 있는데 재인 사모님의 제안으로 게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옆에 앉은 사람과 둘씩 짝이 되어 상대방에 관한 정보를 세 가지씩 돌아가며 말하는 것이었는데 저는 신부님과 짝이 되어 제가 질문하기를 “성경에 바우로, 베드로, 바나바, 모세라는 인물이 있는데 신부님은 누구를 닮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신부님은 주저없이 “모세”라고 하셨습니다. 돌아가며 발표할 때 제가 그 얘기를 했더니 사모님께서 “나이가 80이라서 그렇다”고 하셔서 빵터졌습니다.
- 설교자는 성숙에 대한 설교하기를 강조했습니다.
8. 개척자 대천덕신부님
강원도 산골 오지인 탄광촌 황지 하사미마을에 신학과 기도의 실험실 예수원을 설립할 때가 47세였습니다. 대천덕 자서전은 개척자의 길이란 부제가 붙어있고,
2002년 예수원 뒷산에 모신 그의 묘비에는 ‘하나님 나라의 개척자’로 새겨져 있습니다.
"나는 새 출발을 꿈꾼다.
하나님 안에서 늘 새로운 꿈을 갖는 자는 언제나 젊은이다.
분명 육신은 노쇠해지고 있으나 고목나무에 찬란히 빛나는 내면이 있듯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며 하나님 뜻을 찾는데 진력할 때 나는 늘 청춘이다”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에 연재되었던 신부님 글 입니다.
언젠가 제가 어느 저녁예배 시간에 의견을 나누면서 ‘저는 대신부님의 사상을 잘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다음 날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에 저를 부르시더니 ‘제 사상은 없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합니다.’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 모두 이 말씀과 함께 대신부님의 삶과 영성을 기억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다른 교단과 신학 전공자들 가운데 대신부님과 예수원에 대한 연구 논문과 자료가 많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대신부님을 통해서 성공회에 주신 우리의 영적 유업, 성령과 코이노니아, 공동체와 중보기도 등 실천이 있고 열매가 있는 가르침이 대한성공회에 풍성하게 하는 아름답고 탐스러운 열매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대신부님을 통해 주신 풍성한 지혜와 지식은 가히 보고(寶庫)라 여길만한 대한성공회와 한국교회의 유업이라 여기깁니다. 우리가 지키고 보전해나갈 과제들이라 보며 발제를 마칩니다,
9. 좋아하는 성경구절
* 진로(상담)
-요한복음 7장 17절,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려는 사람이면 이것이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가르침인지 또는 내 생각에서 나온 가르침인지를 알 것이다.(삶의 지침이며 묘비명)
* 희년과 공의
-레위기 25장 23절, 땅은 내 것이요, 너희는 나에게 몸붙여 사는 식객에 불과하다.
-미가서 6장 8절, 이 사람아, 야훼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들어서 알지 않느냐? 정의를 실천하는 일, 기꺼이 은덕에 보답하는 일, 조심스레 하느님과 함께 살아 가는 일, 그 일밖에 무엇이 더 있겠느냐? 그의 이름을 어려워하는 자에게 앞길이 열린다.
* 성령의 능력
-즈카르야서 4장 6절, 그것은 권세나 힘으로 될 일이 아니라 내 영을 받아야 될 일이다.
* 삶의 문제, 어려움과 진로(상담)
-야고보서 1장 5절, 만일 여러분 중에 지혜가 부족한 사람이 있으면 하느님께 구하십시오. 그러면 아무도 나무라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에게 후하게 주시는 하느님께서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 코이노니아
-요한1서 1장 3절, 우리가 보고 들은 그것을 여러분에게 선포하는 목적은 우리가 아버지와 그리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사귀는 친교를 여러분도 함께 나눌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고후 13장 13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 주시는 친교를 여러분 모두가 누리시기를 빕니다.
* 22년 5월26일 성공회대학교 20주기 추모행사 학술세미나 발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