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왔다

유테레사 2022. 8. 14. 22:39

814일 연중20(다해) 2

이사 5:1-7, 시편 82, 히브 11:29-12:3, 루가12:49-56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왔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성경에서 이제까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과 다릅니다. 통념을 깨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왔다.’ 말씀하셨습니다.

불 지르러왔다. 뭔가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 불을 성령이다, 영적활동이다, 심판이다, 로마의 침략이다

등등 해석을 합니다.

그런데 전후 정황으로 볼 때 심판이 타당하다는 것이 학자들의 공론입니다.

심판은 앞으로 있게 될 일입니다.

왜 심판을 말씀하셨을까? 생각해보면

바리사이파사람들, 율법학자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겪으시면서

기존의 가치와 사고방식으로는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하신 것입니다.

불과 성령은 태워버립니다.

불이 나는 곳은 집이든 건물이든 산이든 그 곳은 다 타버립니다.

요즘 이상기후로 가물고 있는데 건조하다보니 불이 자주 발생하는 것을 봅니다.

불이나면 산에서 주거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완전 초토화시켜버립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합니다. 새롭게 시작합니다.

성령도 불과 같이 우리의 옛 성품을 태워버리고 새로운 마음을 갖게 합니다.

돌같이 굳은 마음을 살같이 부드럽게 하십니다.

 

불을 지르러 오셨다는 말씀과 연관되는 말씀이 그다음에 이어집니다.

그동안 평화를 준다. 하나가 되라, 말씀하시던 예수님께서 있어서는 안 될 것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다섯 식구가 32로 갈라져 싸우고, 부자간에 싸우고, 모녀간에 갈라서고, 고부간에 다툰다고 하니 어떤 집안이 이렇다고 하면 콩가루다, 콩가루 집안이다. 그렇게 말할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콩가루집안이 된다고 말씀하시니 어떻게 된 일입니까?

어떻게 콩가루집안이 되었습니까?

 

1.복음 앞에 갈등과 충돌

콩가루집안이 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예수님 믿으면 그동안 살아온 습관과 문화에서 총체적으로 달라지는 것이 나타납니다.

교회는 대부분 일요일에 예배를 드립니다.

헌금도 하고 금하는 것, 안하는 것도 생기고 기도를 하게 되고 이전과 다른 생활로 인해서 멈칫 멈칫 하면서 한걸음씩 새로운 변화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믿지 않는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교회다니는 친구의 새로운 변화를 보면서 당혹스러워 합니다. 함께 놀러도 가고 영화도 보러가고 무엇이든 같이 했던 가족이나 친구인데 친구를 잃은 것도 같고 화도 나고 거리감을 갖게 될 것입니다.

뭔가 달라졌다. 다르다는 이질감을 갖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쉽사리 그냥 물러나지 않을 것 같고 분명한 차이를 느끼면서

같이 있지만 다른 변화가 느껴지는 것입니다.

 

2.복음은 영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나라에, 민족에게 맨 먼저 가서 복음을 전한 선교사는 거의 죽임을 당했습니다. 우리나라에 개신교는 평양 대동강에서 쪽복음을 전한 영국인 토마스선교사가 한국 병사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어느 나라나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천주교 신자가 네 번의 박해를 거치면서 수천명이 순교당합니다.

복음이 전파되면 복음의 빛이 비쳐지는 곳에는 영적인 싸움이 일어나고 영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기존의 영역에서 권세를 잡고 있던 어둠의 세력이 영역을 안뺏기려고, 자신들의 권한에 침범당했다고 여기면서 극렬히 저항합니다.

신앙생활은 영적싸움에서 승리해 나가는 것입니다.

 

내가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

예수님께서 겪으셔야하는 십자가 죽음이고 성취해야 할 사명입니다.

예수님은 영적싸움의 선봉에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죄인으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고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죄를 이기신 첫 번째 승리자이십니다.

 

3.평화가 함께 하소서.

그러나 영적싸움은 선과 악을 분리하는 심판입니다.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 영적싸움이라는 갈등의 심각성과 비참성을 극대화한 것

최악의 상태가 그런 분쟁과 갈등이 가족 안에서까지

천륜이란 혈연관계인 가족 안에서도 어쩔 수 없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신자의 진리성과 비신자의 비진리성이 서로 충돌하는 현상이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족 안에 분란이 이것입니다.

이런 갈등과 분쟁, 충돌은 필연적으로 생겨날 수 밖에 없다는 것에서

우리는 복음의 진실과 정직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대충이란 것이 없는 것입니다. 통하지 않습니다.

믿는다고 해두자. 믿었다고 봐주자.

이런 것은 인간세상에서는 통용되지만

하느님은 완전하신 분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절대성과 완전성 앞에서 우리는 항복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주인은 예수님입니다.

 

4. 복음은 궁극적인 것이다.

어떤 한 가정에 복음이 들어오고 복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여러 면에서 충돌하게 됩니다. 신자가 된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예수님과 가족들 사이에 양자택일을 해야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을 각오해야 하는데 이것이 가장 어려운 시련이 될 것입니다.

믿지 않은 가족들과 직면해야하는 상황이

부모님의 장례에 대해서 전통적으로 할 것이냐? 새로운 문화이고 익숙하지 않은 교회식으로 할 것이냐? 이런 것에서 첨예하게 대립합니다.

믿지 않던 집안에 한 사람이 믿기 시작하면 시간 차이가 있지만

믿는 사람이 계속 늘어납니다.

저희 작은 어머니가 믿는 집안 사람으로 저희 집안 믿지 않는 집안에 시집와서 많이 고생하셨어요. 작은 아버지도 자상한 분이 아니라서 말을 툭툭 내뱉으시고 작은어머니 교회다니시는 것을 못마땅해 하시고 핍박도 하셨어요.

작은 어머니까 5년전엔가 어느 날 전화하셨어요. 작은 아버지가 자기 발로 교회 가셔서 세례받으셨다고 하면서 50년걸렸다고, 작은 아버지가 순한 양이 되었다고, 3년 후 돌아가셨는데 교회식으로 장례하고, 묘비에 집사 아무개라고 비에 새겨진 것을 보고 이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너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노라

필립비16절 감사한 것은 주님의 일은 계속 진행중 이라는 것입니다. 살아계시기에 생명이시기에 계속 일하십니다.

 

5. 나는 불을 땅에 던지러 왔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불을 땅에 던지러 왔다고 말씀하신 그 뜻을 다시 새겨봅니다.

예수님을 전할 때는 십자가를 말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말하려면 죄를 말해야 하고 죄를 인정해야만, 죄인임을 고백해야만

예수님의 십자가가 높이 들어 올려집니다.

그런데 여간해서 사람들이 죄를 인정하기 쉽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아이들은 대부분 인정하고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아이들이 지은 죄라는 것이 싸우고 심부름 안하고 거짓말하고 미워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죄가 더 많아지는 것이겠죠.

그래서 어릴 때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하자는 것이 어린이선교단체들이 하는 선교전략입니다.

복음을 전하면 처음 듣는 사람도 이 말은 지금까지 들어본 그런 얘기하고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죄에 대해서 진지하게 말하는 것은 처음 듣는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그날 예비하신 영혼은 복음을 듣고

인간의 본성에 맞닥뜨려 죄가 어떤 건지 죄를 지은 것에 대해서 마음이 가난해지는 은혜를 입고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그렇지 않다해도 그 마음에 복음의 씨앗은 뿌려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일하실 것입니다.

가족 안에 분란

이런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 두렵고 싫어서 화평하게 살아야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고 우리의 죄의 댓가를 치르신 것처럼

복음으로 복음의 빛이 비추므로 분란이 일어나는 것은 진리 앞에서 치러야 하는 대가입니다. 값진 대가를 치르는 것입니다.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받아들이기까지 겪어야하는 시련으로 치러야 하는 대가이며 가치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6. 복음의 빛을 비춥시다

여러분

불은 죄를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 나오면 죄를 보게 되고 죄가 드러나는 것, 심판입니다. 불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예수님을 보내셔야 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빛입니다.

교회의 지체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빛을 비추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저스틴 웰비 대주교님 람베스회의 마지막 기조연설 가운데 인용합니다.

교회는 어둠 속에서 빛을 밝히는 곳입니다.

교회는 관계를 맺는 사람들입니다.

교회의 소중한 근거는 성경이며 성경이 원칙입니다.

성공회의 다섯가지 선교지표에서 첫 번째, 말씀을 선포하라

성장하는 교회의 힘은 복음을 알고 있고, 복음을 간증할 수 있는 교회에 있습니다.

 

교회는 그 지역에 빛입니다.

부지런히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하느님께 대한 진리가 결의된 태도입니다.

늦기 전에 한정된 시간에 하느님과 화해하는 가정이 되고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이웃이 하느님과 화해하도록 우리는 하느님의 메신저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거제요한공동체 여러분

이런 결의가 우리 안에 있으시기를 예수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2독서 히브리서 12장 구절로 맺겠습니다.

2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구름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도 온갖 무거운 짐과 우리를 얽어매는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2 그리고 우리의 믿음의 근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만을 바라봅시다. 그분은 장차 누릴 기쁨을 생각하며 부끄러움도 상관하지 않고 십자가의 고통을 견디어내시고 지금은 하느님의 옥좌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