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도우시는 보혜사 성령
5월14일 부활6주일 <우리를 도와주시는 보혜사이신 성령>
사행17:22-31, 시66:7-18, 베전3:13-22, 요14:15-21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다른 협조자 진리의 성령을 보내주실 것이다.’
성령을 약속하십니다.
성령을 그리스어로 ‘파라 클레이토스’라고 하지요.
이 말이 원어로 ‘파라 클레오’,라고 하는데 이 말의 뜻은 위로라고 합니다.
성령에 대해서 공동번역에는 협조자, 개역성경에는 보혜사로 나와 있습니다.
파라란 말은 옆에서, 클레이토스는 우리의 초대를 받으시다.
파라 클레이토스는 ‘내가 도움받도록 내 곁으로 보내진 자,’ 그리스어로는 이런 뜻입니다.
다른 협조자, 다른 보혜사, 다른이란 형용사가 붙어있는 것을 보면
현재의 협조자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다른 협조자, 다른 보혜사는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하시는 분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협조자보다는 보혜사가 그 의미를 잘 나타내고 있는데
보호하고, 은혜를 베풀고, 가르친다는 뜻입니다.
각 성경에서 성령님이 하시는 역할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살펴봅니다.
성령을 위로자, 상담자, 돕는 자, 변호사, 대변자, 중재자, 그 외에도 아주 많습니다.
원래 파라클레이토스란 말은 옛날 그리스 법정에서 변호인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합니다.
요즘처럼 돈을 받는 전문적인 변호사가 아니라 피고의 절친한 친구로서 변호를 하는데 변호하다보면 그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생을 각오하면서 친구의 곁에 앉아서 끝까지 무죄를 변호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피고인 친구에게 더없이 힘이 되어주고 위로가 되어주는 역할, 그 변호인이 파라클레이토스입니다.
나를 위해서 내 곁에서 나를 변호하는 분이 파라클레이토스, 성령이십니다.
제자들에게 성령님을 보내시는 이유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시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18절에 “나는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겠다.”
이 말씀은 제자들을 포함해서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하느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이해하시는지 알 수 있게 합니다.
우리나라에 고아가 가장 많았던 적이 6.25전쟁이후입니다. 숫자가 십만명정도 된다고 추정합니다. 폭격으로 무너지고 폐허가 된 전장터에서 4-5살 정도 된 아이가 혼자 울고 있는 사진, 또 천막친 곳에서 많은 아이들이 배급받은 것을 먹고 있는 사진, 우리 민족이 겪은 6.25의 참상을 알려주는 사진을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어떤 분이 간증을 하시는데 6.25때 이북에서 살았는데 폭격으로 부모님이 죽고 당시 11살인 자신은 팔 하나를 잃었어요. 그래서 피난민에 섞여서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대전에 머물게 되었는데 대전역 앞에서, 먹을 것을 찾아서 주워먹는 생활을 하게 되었어요. 하루는 검정차가 지나가다가 멈추더니 그 안에 있던 서양사람이 자신에게 오라고 손짓을 해서 그 차를 타고 갔답니다. 거기서 먹을 것을 주고 목욕을 시키고 옷도 주고 공부도 가르쳐주시고 해서 지금은 장애인 복지를 위한 세계적인 학자가 되었어요. 그 분 표현이 11살에 팔하나 없는 거지였던 자신을 선교사님이 주워주셔서 이렇게 오늘의 나가 되었다고 하는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선교사님은 대신부님의 아버지이신 R. A. Torrey 2세 선교사님이십니다.
우리나라에서 6.25이후부터 지금까지 해외에 입양보낸 고아가 삼십만명 가량됩니다. 그 중 미국에 갔던 입양아 중에서 시민권이 없이 지옥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는 입양인들이 21000명이나 됩니다. 양부모들이 입양할 능력이 안되는 사람들이죠. 이 입양인들이 신분이 보장안되니까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고 하다가 추방되서 한국에 왔는데 말도 안통하고 문화도 다르고 그래서 자살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경제 지위가 세계 10위라고 하는데도 매년 해외 입양 300명 가량씩 하고 있습니다.
저의 매일 기도하는 기도제목 가운데 국내 입양과 미국에 시민권 없는 한국 입양인들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 가운데 버려진 아이들, 고아는 돌봐주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먹을 것을 주고 입혀주고 가르쳐주고 살아가는 것을 가르쳐주는 누군가가 있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남겨두고 하늘로 오르시기 전에 너희들을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겠다고 하시면서 한 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소개하시는 그 분은 협조자, 보혜사이신 성령님이십니다.
나대신 해서 나를 말해주는 역할, 대언을 하는 것으로 성령의 역할을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서 성령께서도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는 우리를 대신해서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깊이 탄식하시며 하느님께 간구해 주십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서 나의 형편에 대해서 변호해주고 말 해주는 친구가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 사람의 인생은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그 역할을 하신다는 것에 먼저 위로를 얻습니다.
1. 진리의 성령,
성령이 하시는 일 가운데 중요한 역할입니다.
진리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만이 구원자이시고 구세자임을 성령이 증거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진리이신 예수님에 대해 오락가락 한다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요즘 다원주의 그래서 예수님만 믿어야 구원받는다, 이것에 대해 다양성운운하면서 하느님이 그렇게 편협한 분이냐, 기독교는 왜 그렇게 편협하냐. 이런 말들이 많아요.
또 보편적 진리라고 말하는 것이 있는데 ‘사람은 결국 모두 다 구원받는다’는 겁니다.
‘무엇을 믿던지 다 구원받는다’ 그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이유가 없지요.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마음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진리를 알 수가 없습니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 분을 받아들일 수 없다. 17절에 말씀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진리이시고 구원자이시다. 이것을 우리 안에서 흔들리지 않고 굳게 믿도록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2. 성령님은 위로자이시다.
이 시대 문화코드는 ‘위로’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화 뿐만이 아니라 인터넷, 스마트폰, 문명의 이기가 가장 발달한 세상 속에서 살지만 빠른 속도의 경쟁으로 인한 인간소외감, 피로감, 인간성상실감 등에서 위로받고 싶어합니다. 위로의 말 한 마디를 듣고 싶어합니다. 위로받고 싶어하는 이유는 외롭기 때문입니다.
외로움 또한 이 시대의 상징적인 인간의 모습일 것입니다.
성령의 원래 원어인 파라 클레오는 위로라고 했습니다.
도움 받기 위해 내 곁으로 부름받은 자,
내가 도움받도록 내 곁으로 보내진 자, 이런 뜻입니다. 성령님은 나를 위로해주시기 위해서 내 곁으로 보내진 분입니다. 우리의 곁에서 늘 위로해주시는 성령님입니다.
3 성령은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로마서 8장 26절 “성령께서도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는 우리를 대신해서 간구해 주십니다.”
너무 큰 슬픔을 겪거나 상처를 입으면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요. 입으로 이렇고 저렇고 말조차 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럴 때는 그냥 울면서 울기만 해도 성령께서 대신 기도해주십니다. 나보다 더 나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아서 하느님께 기도를 해주세요. 나 대신 탄식하면서 우시기도 해요. 이런 친구가 어디 있어요. 이렇게 나를 위해서 도와주기에 힘쓰는 분이 영원히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이 계시다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위로가 됩니까? 성령님은 위로자이십니다.
4 성령과 방언
성령과 방언은 굉장히 밀접합니다. 방언은 개인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방언으로 기도하면 우리의 영이 강해집니다. 우리의 영이 강해진다는 것은 방언을 많이 하면 내면을 강화되는데 유혹을 덜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에 흔들리고 저 말에 상처받고 그랬던 사람이 방언을 계속 하면서 마음에 중심을 잘 잡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상처도 방언을 정기적으로 꾸준히 하면 치유되어 갑니다.
5 성령님은 인격체이시다.
성령님이란 님 자를 붙이는 것은 성령님은 인격체이십니다. 성령님을 근심케 하거나 슬프게 하지 말라. 이 말은 마음, 의지, 감정 등을 인격이라고 하지요. 성령님은 인격체이시기 때문에 님자를 붙여서 존중해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님은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 감정, 의지, 정서에 영향을 주시고 영향을 받으십니다. 그래서 기뻐하시기도 하고 근심하시거나 슬퍼하시는 것입니다. 근심케하고 슬프게 하면 성령의 힘이 약해집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충만, 위에서 부으시는 성령으로 채워지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지, 연약한 그릇은 쉽게 깨어집니다. 우리는 그런 연약한 그릇과 같습니다. 말 한 마디에 쉽게 상처받고, 마음이 바뀌고 이런 연약함을 하느님께서는 너무나 잘 아십니다. 우리가 티끌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를 지으신 하느님께서는 너무나 잘 아십니다.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겠다. 기어이 다시 돌아오는 그 날이 오게 된다.
성령님이 오시면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과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가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시면 하느님, 예수님과 함께 합니다.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앞에서 성령님에 대해서 몇 가지 말씀을 드렸는데
전에는 멀리 있던 우리가 너무나 가까이서 하느님을 느끼고 알게 된다는 것은
성령님으로 인해 우리가 하느님을 알아가고 하느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을 알고 싫어하시는 것을 알게되면서 그것을 따르게 되니 삶이 완전히 바뀌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님께서 일하시도록 협력해야 됩니다.
인격적으로 우리를 대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거제교회 공동체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티끌같이 보잘 것 없고 연약한 그릇과 같은 우리를 위해서 성령님을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 맘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리의 외로움 가운데 오셔서
나보다도 나를 더 잘 아시고 내 곁에서 나를 도와주시고 위로해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위로자이신 성령님은 우리의 곁에 계십니다.
성령님과 영원히 동행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