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거룩한 부르심은 은총의 섭리

유테레사 2023. 6. 11. 20:19

611일 연중10주일

창세 12:1-9, 시편 33:1-12, 로마 4:13-25, 마태9:9-13, 18-26

<거룩한 부르심은 은총의 섭리입니다. >

 

지난 주일은 성삼위일체 대축일이었습니다. 이제 특별한 날에서 평범한 일상처럼 연중주일로 접어들었습니다. 오늘 1독서는 창세기 12장입니다. 그전 11장은 바벨탑 사건입니다. 하느님께서 언어를 흩으신 다음 하느님의 자비는 창세기 12장 아브람이 거룩한 부르심, 성소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브람을 믿음의 조상으로 부릅니다. 로마서에는 만민의 조상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람은 갈대아라 일컫는 메소포타미아 지역 하란에서 살았습니다.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서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하신 이때 아브람은 75세였습니다.

 

1. 성소, 거룩한 부르심

하느님께서 평생을 걸쳐서 모든 삶이 담겨있는 고향, 친척, 아비를 떠나가라는 이 성소, 거룩한 부름은 지금까지의 삶을 전부 내려놓으라는 명령입니다. 그동안 살아온 습관, 문화, 가치관까지 다 포기해야만 떠날 수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그것을 그대로 갖고 있으면 떠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아깝고, 저것은 어떤 의미가 있어서 갖고 있어야 하고 하다보면

고향을 어떻게 떠납니까? 친척들을 두고 어떻게 갈 수 있어요? 아버지, 부모님 곁에서 할 일이 많습니다.

마치 혼인잔치에 초대를 받고서 하는 말이

장가 들어야 합니다. 소도 사야합니다. 논과 밭을 샀기 때문에 할 일이 많습니다. 하는 양상과 비슷해 보입니다.

여러분

고향과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라는 것은 하느님께서 새 일을 하시겠다는 선언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성장하는 과정에서 몇 번을 떠나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학교 진학을 위해서 떠나야하고, 취업으로 인해 떠납니다.

그리고 인륜지대사로 일컫는 결혼은 부모로부터 완전히 떠나야만 가정을 이룰수 있습니다.

 

아브람이 살던 하란은 이방신을 믿고 우상숭배하던 지역이기에 그곳에서 떠나야먄 하느님을 예배하는 이스라엘을 세우기 위한 첫걸음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장소 뿐만 아니라 지금껏 가치관과 정신적인 것에서 떠나 하느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삶의 방향이자 삶의 근원을 하느님께 두는 것이 성소에 대한 우리의 반응입니다.

여기 계신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분들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성전인 이 곳에서 예배에 참여함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우리는 감사함으로 응답해야 할 것입니다.

 

2. 주님의 사역에 동역자로 부르심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느님의 계획은 그를 통해서 한 나라를 세우시고자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 너에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떨치게 하리라. 네 이름은 남에게 복을 끼쳐 주는 이름이 될 것이다.”12:2-3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태오에게 나를 따라오너라하고 부르시면서 주님의 구원사역에 함께 할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희랍어 원어에 조금도 지체하거나 주저함없이 당장 따르라는 뜻입니다.

시급한 신앙 결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당장 주님을 따르라,

주님께서 부르실 때 세관으로, 세금을 걷는 일을 하던 마태오는 하던 일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라갑니다.

마태오는 세관으로 일하면서 그 일이 이스라엘을 위한 일이 아니라 식민지 로마제국을 위한 일이었기에 갈등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예수님의 부르심은 그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릅니다.

그는 마태복음을 기록하였고 끝까지 제자로 살며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습니다.

 

하느님의 성소는 얼굴 생김새만큼이나 각각 다르게 받습니다.

작가 공지영이 쓴 수도원 기행 가운데 한 수녀님 일화가 나옵니다.

미국 워싱턴에서 잘 나가는 20대의 젊은 오페라 가수였던 그녀가 어느 날 음성을 듣게 됩니다.

사막으로 가서 나와 함께 있자

그런데 그냥 일상을 살아갑니다. 한 번, 두 번, 몇 번을 듣는 동안

그녀의 내면으로 사막은 영적인 사막인 것을 알게 됩니다.

라고 마음으로 응답하고 사막같은 수도원을 찾아서 로마의 봉쇄수도원을 찾아 들어갑니다. 몇 평의 작은 방에서 두 가지 기도제목으로 평생을 무릎끓고 기도합니다. 하나는 교회의 정화, 또 하나는 당시 6.25 발발했던 때이므로 한국의 평화를 위해서 44년간 기도하면서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죽기 30분전에 나와서 몸이 많이 아파요. 이 말을 하는데 무릎 아래로는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서 시퍼렇게 변색이 되어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 갔습니다.

주님의 제자로, 주님의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하느님께 철저히 순종하고 충성하는 종으로 살아야 합니다.

 

3. 구원사역의 토대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순종한다는 것을 어렵고 부담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가 아까 봉쇄수녀원에서 평생 기도한 수녀님처럼

그 부르심이 살아온 삶과 전혀 다르고, 너무나 힘들게 살라고 하실까봐

겁을 먹고 하느님과 가까이 하지 않으리라. 그렇게 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자녀가 성직자나 주님의 일을 위하여 헌신한다고 하면

위에 드린 말씀 들이 부모님이 가장 우려하시는 점들 입니다.

그러나 성소는 하느님의 주권아래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하느님의 일꾼은 자기가 원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느님의 섭리로

부르심을 받고 선택받습니다.

 

마태오가 예수님을 만난 후 자신의 집에서 떠나기 전 송별회를 열었습니다.

그 자리에 마태오와 세리와 죄인도 있고 예수님과 제자들도 함께 음식을 먹고 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와서 묻기를

당신네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음식을 나누는 것이요?’

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어제 마르꼬복음 본문에서 율법학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과 동일합니다.

의인인척 하는 바리사이파사람들, 율법학자들

이들의 기만과 위선으로 일관된 삶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죄로 갈등하고 연민하는 영혼들을 찾으십니다.

사랑하는 딸이 죽고 낙망하는 회당장과 열두 해동안 하혈병을 앓던 여인의 절망에 자비의 은총을 베푸십니다.

모든 생명은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느님 없이는 생명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혈병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순간

생명의 힘이 그 여인의 고질병을 치유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소녀에게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으시자 잠에서 깨어난 듯 일어 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죽음을 이기고 정복할 수 있는 힘은 오직 생명이신

예수님의 능력만이 생명을 회복케 합니다.

죄인과 병자를 치유하시는 왕의 권능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 신앙생활로 부르시는 거룩한 부르심, 성소는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입니다.

어떻게 부르시던지, 언제 부르시던지 상관없이

그것은 전적인 하느님의 주권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삶이 왜곡되고 뒤틀려진 채, 죄와 절망과 좌절에 빠져있을 때, 내 힘의 한계를 느끼고 깨닫는 사람을 찾아오셔서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으시고 일으켜주십니다.

 

사랑하는 거제요한공동체 여러분

하느님의 일꾼으로 부름받으실 때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하고 따르시기 바랍니다.

내 삶을 온전히 주님께 드리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느님께서 내 삶에 들어오셔서 새롭게 하여주시기를 간구하시면

내가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생명의 기운, 생기가 넘쳐나며 회복될 것입니다.

삶이 버겁고 힘들고 지치고 뭔가 잘 안된다고 생각되시면

내 모습을 직면하셔서 내 힘의 한계를 주님께 말씀드리시기 바랍니다.

내 힘의 한계를 아는 것이 축복이고 하느님과 함께 동행하는 시작입니다.

요한교회 공동체 여러분

성삼위일체 축일 이후부터 녹색으로 상징되는 가장 긴 기간 연중주일에 들어서는 오늘 성경본문들을 통하여 믿음의 도전을 받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하나 바랄 수 없는 환경과 여건가운데서도 하느님의 부름을 따라 앞서간 믿음의 선조들의 삶을 본 받아 믿으며, 순종하며, 다시 결단하며 충성스럽게 나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새 힘을 주셔서 일으켜 세우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