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위로와 소망
2023년 12월 25일 성탄일
이사야 52:7-10, 시편98, 히브1;1-4(5-12), 요한 1;1-14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이 ‘말씀’은 헬라어로 로고스입니다.
로고스는 말이나 언어로 표현되는 것을 넘어서 더 많은 것을 뜻합니다.
본문에서 말씀이신 예수님을 세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말씀과 생명과 빛입니다.
말씀은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느님께서 말씀으로 우주를 만드셨다.’
하느님께서 천지를 만드실 때 예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3절에 나옵니다.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이 말씀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하느님께서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그 창조의 신비, 다른 말로 하면 생명의 신비라고 해도 맞습니다.
이 창조의 신비로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를 찾아와서 아기를 갖을 것이라는 말을 전합니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 아기는 위대한 분이 되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다윗의 왕위를 주시어 야곱의 후손을 영원히 다스리는 왕이 되겠고 그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이름과 신분과 역할을 말합니다.
이름은 예수, 신분은 하느님의 아들, 역할은 다윗의 왕위로 이어지는 영원한 통치,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이게 무슨 뜻인가, 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태어날 아기 예수님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과 같이 하느님은 당신의 나라를 다스리시면서 각 사람에 대한 계획을 하시고 태어나게 하십니다.
c.c.c.란 대학생선교회란 선교단체가 있는데 이 단체에 복음 전하는 사영리전도방법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복음 전도할 때 첫 번째 하는 말이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두 번째가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위한 계획이 있습니다.’ 이렇게 전개합니다.
창세기17장에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부인인 사라에 대해서 말씀하시길
“내가 그에게 복을 내려 너에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리라. 그에게 복을 내려 많은 민족의 어미가 되게 하고 그에게서 민족들을 다스릴 왕손이 일어나게 하리라.”
아기가 없던 사라에게 아기를 주시고 이스라엘민족에 대한 약속을 한발짝 이루십니다.
역시 아기가 없던 한나가 기도해서 사무엘을 낳습니다.
이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왕과 제사장과 예언자의 직분을 다 감당한 유일한 사람입니다.
마태복음의 시작은 누구를 낳고 누구를 낳고.
낳고, 낳고, 낳고, 그래서 읽다가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이 세상에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도록 한 창조 섭리는 각각의 생명이 태어날 때 계획하시는 하느님의 계획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생명을 낳도록 여성을 창조하셨고,
여성은 하느님의 계획을 이 땅에 이루도록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합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역사를 낳는 일입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은 구약의 예언이 펼쳐지는 새시대를 잉태한 여인들의 위대한 만남입니다
우리가 진로를 정할 때 하느님의 뜻을 찾아 그 길로 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일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생일축하 노래,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불려지는 이 노래, 상당히 의미가 큰 노래입니다.
.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이신 분이 이 세상에 오셨는데 사람들은 반겨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베들레헴에 호구조사하러 간 그곳에 방을 찾다가 빈방이 없어 마구간, 또는 외양간에서 아기를 낳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처음 오셔서 누우신 곳이 마구간 구유입니다. 이것이 세상이 반겨주지 않은 증거이고,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는 마구간에서 아기를 낳는 사람도 없고, 신생아를 구유에 누이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빈 방있습니까? 란 유명한 연극이 있습니다.
미국 시골에 한 교회에서 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연극입니다.
교회에서 주일학교 아이들이 성탄연극을 준비하는데 요셉이 만삭된 마리아를 데리고 베들레헴에 가서 방을 찾다가 아기를 낳는 어제 우리가 한 연극 그 내용입니다.
그 교회 아이들 가운데 약간 지능이 낮은 밥이란 아이가 있었는데 선생님이 이 아이는 어떤 역학을 맡길까 하다가 여관주인역할을 맡겼습니다. 이 아이가 하는 대사는 ‘방이 없어요.’ 이 대사만 하면 되는 거에요.
성탄절이 되어서 저녁에 노래도 하고 율동도 하고 합창 등 여러 순서를 하고 이윽고 연극이 시작 되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을 향해 힘겹게 갑니다.
베들레헴에 도착해서 요셉이 방을 찾습니다. 문을 두드리고 ‘빈방이 있습니까?’
‘방이 없어요.’ 또 다른 집에 가서 ‘빈방이 있습니까?’ ‘방이 없어요.’
드디어 밥이 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주인장 빈방이 있습니까?’
그런데 밥이 대사를 안합니다.
선생님과 모두가 밥을 쳐다봅니다. 마음 속으로 전부 ‘빨리 해, 빨리’ 그런 눈짓을 합니다. 밥의 얼굴 표정이 울 것 같아요.
이윽고 밥은 울음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 우리 집에 반 있어요” 발음도 정확하지 않아서 방을 ‘반’이라고 합니다.
‘거짓말하면 안되는데... 우리 집에 방 있는데’
밥은 현실과 연극을 분간하지 못하고 고민하면서 이렇게 내뱉은 것입니다.
선생님과 아이들은 이제 연극 다 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잠깐동안 잠잠한 시간이 지나고 그 교회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박수를 치면서 환호합니다. 진정한 성탄절을 맞이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탄생은 겸손과 순종의 본이 되어주십니다.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계셔서 세상을 만드신 분이
자신이 만드신 창조세계 피조물 가운데 직접 오셨습니다.
어떻게 오셨는가하면 이 세상을 만드실 때, 만드신 법칙, 그 안에 스스로 들어오셨습니다.
자신의 권리, 모든 소유권을 스스로 포기하시고 스스로 제한하셔서 여성의 육신을 빌어서 잉태하셔서 열 달간 그 몸 안에 갇혀 있다가 아기로 오셨습니다.
엄마가 젖을 먹여야 먹고, 입혀야 입고, 닦여야 닦을 수 있는
세상을 지으신 능력의 주님이 자신을 다 내려놓고,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누군가의 손길에 전적으로 의지해야만 하는 가장 약한 존재가 되셔서 오신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5절부터 11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근본 하느님과 본체시나 자신을 겸손히 낮춰
사람의 몸, 죄인의 몸을 입고 오셨다.
이렇게 자신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
그 분의 마음, 우리가 지녀야 할 마음입니다.
성탄의 상징같은 구유, 구유는 말이 먹는 밥그릇이지요.
예수님의 탄생이 마리아와 요셉과 아기예수에게는 춥고, 불편하고, 더럽고, 비위생적인 환경이었겠지만 그것을 듣는 사람들, 이천년간 전해들어온 세상에는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구유탄생을 듣는 우리에게는 굉장한 위로가 됩니다.
하느님이시면서 사람의 몸을 통해 이 땅에 오신 거룩하고 귀하신 아기예수,
그는 세상에 오시면서 세상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러기에 세상에서 맞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매우 강력한 빛이기에 세상의 어둠이 강하게 저항한 것입니다.
마구간에서 탄생하신 예수님께서 사신 이 세상에서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구간에서 사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삶에서 그 분의 의지적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겸손과 순종은 예수님에게 삶의 본질 같은 것으로 봅니다.
또한 겸손과 순종은 교회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올해 성탄을 맞이하면서 전쟁과 가진 자의 폭력 등으로 심히 마음 상해있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마음 속에 들어와 쉬고 안식해라.’
‘내 마음에는 언제나 네가 쉴 곳이 있다.’
‘네가 말하는 것을 오해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용서해라.’
‘나는 언제나 너를 환영한다.’
그리고 ‘내가 구유에 태어난 것처럼 겸손하고 순종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구간에 태어나시고 구유에 누우신 아기,
한없이 나약하고 힘없는 모습이지만 하느님의 뜻이면서
예수님의 의지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탄생을 우리 마음 속에 담아두시고 힘을 얻고 위로를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는 그리스도 구세주이십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