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주님의 부르심

유테레사 2024. 1. 14. 23:26

114일 연중2주일

삼상3:1-20, 139:1-6,13-18, 고전6:12-20, 1:43-51

 

<하느님과 동역하는 부르심>

요한복음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될 사람들을 만나 제자로 부르시는 말씀입니다.

필립보, 안드레아, 베드로, 나타나엘 이렇게 네 사람의 이름이 나오는데

그들의 일상이 잔잔하게 묘사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지금 이곳이 갈리래아 호수 건너편 쯤 되는 베싸이다입니다.

베싸이다에서 맞은 편에 호수를 사이에 두고, 가파르나움, 나자렛, 티베랴, 가나, 이런 지명이 갈릴래아로 불리던 이 지역에 퍼져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로 활동하시던 지역은 갈릴래아입니다.

그중에서도 가파르나움이 활동의 거점이었습니다.

태어나신 곳은 예루살렘 근처인 베들레헴이지만 사셨던 곳은 갈릴래아 나자렛입니다.

나자렛 이곳에서 30년간 사시면서 이스라엘 사람들, 특히 갈릴래아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셨겠지요.

갈릴래아는 헬레니즘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이스라엘에서 하층민들이 살던 곳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사람들에게 경멸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타나엘이 필립보에게 메시아를 만났다고 하면서 요셉의 아들 예수인데 나자렛 사람이라고 하니까 나자렛에서 신통한 것이 나올 리가 있나? 이렇게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지 않지만 그 이면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사람이 있는데 세례요한입니다.

세례요한이 감옥에 갖히고 난 뒤부터 예수님은 이제 때가 되었다 하시는 것처럼 공생애활동에 접어듭니다.

 

본문은 필립보를 만나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에는 고깃배 위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베드로와 안드레를 맨처음 부르셨고 이어서 야고보하고 요한을 부르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요한하고 안드레가 예수님을 따라갔다가 안드레가 형인 베드로를 데리고 예수님에게 가서 제자가 되는 것으로 나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로 한 제자가 네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필립보가 예수님을 만나서 제자가 되기로 하고서, 필립보는 나타나엘에게 가서 예수님 얘기를 합니다.

모세의 율법서와 예언자들의 글에 기록되어 있는 분을 만났소. 그분은 요셉의 아들 예수인데 나자렛 사람이오.” 그래서 나타나엘은 필립보를 따라가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이렇게 필립보와 나타나엘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 여섯 사람뿐만 아니라 당시 청년들이 세례요한을 많이 따랐을 것입니다.

오래전부터 꿈꾸면서 기다려온 메시아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

그 분이 오시면 이 세상이 바뀔 것이고

이스라엘이 지금은 로마의 식민지 신세이지만

식민지에서 벗어나서 해방되고 우리는 하느님의 통치를 받는 이스라엘을 회복할 것이다.‘

세례요한이 청년들에게 율법서와 예언서를 보면서 이런 꿈을 꾸게 하고 미래를 보게 하면서 그 말을 듣는 이들이 뜨거운 열정을 갖고 메시아를 간절하게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암울한 시대에 청년들, 젊은이들이 세례요한을 찾아가 제자가 된 것입니다.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하는 말이 나자렛 사람 예수라고 하니까

나자렛에서 무슨 특별한 것이 있겠냐? 예루살렘이라면 모를까.’

실망스럽다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 기다리려고 우리가 그동안 꿈꿔왔던 것이 고작 나자렛 사람을 기다렸다는 말이냐?’

예수님을 만나기전 나타나엘이 한 말입니다.

그후에 나타나엘은 예수님을 직접 만나서 자신을 샅샅이 꿰뚫어 보고 만족시켜주신 예수님의 권위에 압도당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만나는 것을 보면서 중요한 몇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보아야 합니다.

고기 잡던 사람들이 갈릴리 호수 주변에 아주 많았을 것입니다.

그물을 처놓고, 고기 잡아서 뭍으로 나와서 파는 사람,

찢어진 그물을 깁는 사람, 배를 수리하는 사람,

고기 잡는 일을 생업으로 하자면 여러 가지 하는 일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하면 그냥 고기만 잡는 무지랭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영향을 받은 세례요한의 제자들입니다.

만나서 함께 밥을 먹고 하루나 이틀, 또는 더 장기간 같이 생활하면서 메시아에 대해 모두가 실제적으로 무언가 해야 할 것을 꿈꿔왔다는 것에서 일반 사람들과 다른 점입니다.

 

세례요한, 그는 오직 한 가지 목적을 갖고 태어난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메시아를 소개하고 맞아들이도록 준비하는 일입니다.

또한 자신의 제자들이 메시아를 맞아들이도록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율법서와 예언서를 통해서 메시아에 대해서 많은 얘기들을 했습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 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줄 분이다.’

세례요한에게 이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메시아가 곧 나타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메시아, 그 분만 나타나면 그 분을 따르자,

이런 생각을 세례요한을 따르던 그의 제자들의 무리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두번째로,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필립보, 나타나엘, 이 사람들은 모두 한 고향, 한 동네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제자가 열둘이지만 이 여섯 사람이 중심적인 역할(core-group)을 합니다.

이 중에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 함께 가셨고, 겟세마네에서 잡히시기 전에 데리고 가셨던 가장 아끼고 사랑하시는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나타나엘은 예수님 제자 중에서 율법에 깊은 조예가 있었습니다.

필립보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말하면서 나자렛 사람이란 말을 듣고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기대도 안합니다.

그러던 나타나엘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 있었던 것을 보았다.”

그러니까 나타나엘이 깜짝 놀라면서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시며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고백합니다.

이 당시에는 무화과 넓은 잎사귀 아래에서 묵상을 하면서 사색에 잠기는 것이 지적이고 고차원적인 사람, 지식인층이라는 풍토가 있었다고 합니다.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 있었다예수님이 보시지도 않았는데 말씀하시니까

놀랍기도 하지만 자신의 지적인 수준을 인정해준 것에 대해 마음이 확 열린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어쨌든 이 여섯 사람은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랐습니다.

갈릴리 바다, 고기잡는 일, 눈뜨면 어울려 다녔고, 장성해서는 고기를 잡는 어부가 되었는데 동업자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아주 친밀한 소그룹 공동체입니다.

서로를 잘 알고 같은 업종에 종사하고 같은 목적을 갖고 있는 공동체,

이런 정도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겁 날 것이 없어요.

사람이 살면서 나를 이해하고 나와 같은 생각, 뜻을 가진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큰일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제가 예수원에 있을 때 김장을 하는데 3500포기를 했어요. 밭에서 뽑아온 배추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그것을 보면서 야 이거 언제하나그런 생각을 하지만 80명 정도 전체가 다 달려들면 정말 이 산더러 들려서 옮겨져라하는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김장을 하는데 첫째 날에는 하루 종일 배추를 뽑아서 싣고와서 마당에 쌓아놓습니다.

다음 날 밑둥자르고 갈라서 소금에 절이는데 하루 걸립니다.

셋째 날 헹굽니다. 넷째 날 목요일에는 양념으로 속을 버무려서 김장독에 채워놓습니다. 매일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간쯤 되었을 때 일을 마칩니다.

일꺼리가 많아도 하는 말이 손이 무섭다. 손이 무섭다.’ 그런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공동체는 큰 힘이 있습니다.

서로 마음이 맞는 몇 사람, 소수 소그룹, 그 안에선 서로 자신의 허물을 드러내고 연약함을 인정하는 내면이 다져지는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보면 헌신된 소그룹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역사하신 것을 봅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께서 처음 부르신 어부출신 제자들이 소그룹이었다고 말씀드렸지만 이들을 부르실 때는 집단으로 한꺼번에 부르시지 않았다는 것에 우리가 주목해야합니다. ‘여러분들 다 오십시오. 모두가 나를 따르십시오.’ 이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오늘 구약 본문말씀인 사무엘 상 31절에서 20절은 사무엘이 하느님께 부름받는 내용입니다.

하느님께서 다른 사람을 거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통해서 하시지 않고 직접 사무엘을 부르십니다. 사무엘을 양육하고 있던 엘리 제사장에게 내가 사무엘을 불러야겠다. 사무엘을 불러와라. 그러시지 않고 직접 부르셨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부르실 때 한 사람 한 사람을 직접 만나서 그 얼굴을 똑바로 보시고 시몬, 내가 이제부터 너를 게파라 부르겠다. 나를 따라라.”

안드레, 나를 따라라,” “필립보야 나를 따라라.” 요한, 야고보, 나타나엘

모두 한 사람씩 이름을 불러내셨어요.

요한복음 103절에 목자는 자기 양들을 하나 하나 불러내어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각 각 불러내어 인도하십니다.

 

여러분,

하느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과 개인적인 관계를 갖으십니다.

하느님의 사람으로, 사역을 맡기려고 부르실 때도 하느님과 개인적인 관계가 바탕이고 기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소그룹이었지만 부르실 때 한 사람씩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소명은 하느님께서 나와 동역하자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나를 하느님과 동역하는 대상으로 여기시기 때문에 소중하고 귀한 존재로서 하느님의 사역에 초대하시고 맡기시는 것입니다.

나를 하느님과 동역하는 대상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존귀한 존재입니까?

하느님께서 부르실 때 그 존귀한 초청에 대해서 우리가 취해야 할 도리는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직접 부르십니다. 당사자가 이건지 저건지 잘 모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분명하게 확인되어집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이 내면에서 계속 살아있습니다.

시편 139편에서 보듯이 하느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 분이십니다.

부르심 받은 자는 고린도전서 6장에 말씀대로 우리 육신은 성령이 계신 성전입니다. 육신을 거룩하고 정결하게 잘 관리하고 지켜가야 합니다.

그러할 때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나타납니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하느님 뜻을 따라 올바로 섬기면 큰 은혜가 있습니다.

결코 부족함이 없는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니까 어디든지 가라고 하시는 곳에 갈 수 있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한 자에게 큰일을 맡기신다고, 말씀 하신 대로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 할 일입니다.

 

성요한 교회 여러분

우리 삶에서 가장 귀한 것은 하느님의 동역자로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 한 분, 한 분에게 부르심이 있기를 바라고 부르심에 충성하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의 신분은 이 세상에 살지만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신분입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하늘이 열렸습니다.

그동안 죄로 막혀있던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곧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이

하느님 나라를 보며 그 나라를 소유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오늘은 본기도로 마치겠습니다.

영원하신 하느님, 우리 몸을 성령의 전으로 삼아 주셨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성령의 은총으로 주님과 하나 되어 하느님의 영광을 온 세상에 드러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