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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소원은 큰 기쁨이었습니다.

유테레사 2024. 2. 14. 19:46

215일 은퇴감사성찬례

 

이사야55:6-11, 27, 딤전 6:11-16, 루가 10:38-42

 

  저의 은퇴감사성찬례에 시간을 내셔서 와주신 여러분들의 사랑에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부산교구에선 은퇴당사자가 설교 했다고 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부담되기도 했는데 한편으론 소회를 함께 나누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사야558절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다. 나의 길은 너희 길과 같지 않다.’ 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저는 말을 잘 못하는 사람입니다.

말하는 것을 늘 어려워 합니다.

우리나라 인사는 굿모닝, 헬로, 이렇게 정해진 말보다는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서 다 다르게 하는 식인데 그래서 인사하는 것을 어렵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다고 하시는 말씀대로 늘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해야 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이 하느님의 뜻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열왕기상(3:7)에 지혜의 왕으로 불리는 솔로몬왕이 일천번제를 드리고 꿈에 하느님께서 나타나 무엇을 해주면 좋겠냐? 하시니까 대답하기를 왕이 되긴 했는데 저는 어린 아이에 불과하므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고 옳은 것을 분별하는 지혜를 주십시오.’

그렇게 말합니다.

또 하느님께서 예레미야를 택하셔서 나는 너를 만방에 내 말을 전할 나의 예언자로 삼았다.” 대답하기를 저는 아이라서 말을 잘 못합니다.’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후에 예레미야의 활약은 남유다의 멸망에 대한 회개를 눈물로 촉구하고 기도하며 많은 고난을 겪은 것을 우리가 압니다.

 

솔로몬왕이 자신을 어린 아이같다고 하고, 예레미야 예언자도 자신을 아이같다고 하는 것을 보면서 어찌되었든 위로가 되었습니다.

지혜있기로 첫째로 꼽히는 솔로몬 왕조차 자신을 어린 아이같다고 말하는 것을 보니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반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지혜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저를 위해 기도할 때 이사야서 11장에 개역성경에 있는 표현대로 하면 지혜와 총명, 재능과 모략, 지식과 하느님을 경외하는 힘을 구하는 기도를 해왔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저희 고향친구들 넷이 와 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제 앞자리에 앉아있던 한 친구는 한 학기 동안 뒤돌아 앉아서 교회 얘기를 했습니다. 이 친구의 이런 열성으로 성공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 친구와 또 한 친구는 제 서품식에도 왔었고 은퇴식에도 참석하게 되어서 정말 뜻깊은 자리가 되어서 감사하고 기쁩니다.

저를 성공회로 인도한 이 친구는 지금은 천주교 다니면서 열심히 봉사하고 있습니다.

 

이십대 중반 예산전화국에 4년째 다니던 해에 이 일보다 더 의미있는 삶을 찾아 인생의 진로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 한 가지와

내가 좋아하는 일은 교회에서 하느님 일을 하는 것이다. 교회에서 하느님 일을 한다면 평생을 해도 싫어하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 사표를 내고 신학교 입학을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뭘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학교를 통해서 어떤 길이 열리지 않겠나 하는 막연함으로 4년 마치고 연구원 2년까지 마치는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이십대 중반 직장을 그만두고 이 길을 선택한 것은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에서 하느님 일을 하는 것을 제가 가장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평생 그 일을 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4 야훼께 청하는 단 하나 나의 소원은 한평생 야훼의 성전에 머무는 그것뿐, 아침마다 그 성전에서 눈을 뜨고 야훼를 뵙는 그것만이 나의 낙이라.

 

274절 말씀대로 그 한 가지 소원, 하느님과 함께 하는 것은 큰 기쁨이었습니다.

오늘 복음 본문을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에 과한 루가복음 1038-42절을 선택했는데 이 본문은 여성선교주일 본문으로 저도 몇 번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다른 관점에서 보려고 합니다. 이 본문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직장이나 단체, 가정에서도 흔하게 경험할 수 있는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우리가 주목해 볼만합니다.

 

마르다 마르다 너는 많은 일에 다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이 말씀이 마태복음 625- 34절 명절 본문과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도 될 것 같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고 염려하지만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신앙을 갖는 것이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사제직은 하느님 우선으로, 하느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이제 저의 성직 여정에 큰 도움을 주신 두 분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90년 새해가 되면서 이제는 기도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예수원을 처음 가게 되었습니다. 태백버스 터미널에서부터 같은 버스를 타고 예수원에 내려서 같은 방을 썼던 태백사시는 집사님, 제가 기도생활을 해야겠다고 집을 나서서 태백터미날에서 만났던 그 집사님께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35년간 기도해주셨습니다.

아침과 저녁에 교회에 가셔서 매일 기도하시는 백금석집사님, 지금은 권사님이신데 이 분의 한결같은 기도는 저의 지난한 여정에 큰 힘이 되어주셨다는 것을 제가 알고 하느님께서 아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오고싶어 하셨는데 시니어클럽 일하러가셔야 해서 못오셨습니다.

 

또 한 분은 여러분 잘 아시는 대천덕신부님입니다.

설명이 필요없는 분이시지요.

신부님 얼굴을 뵙는 것 만 해도 흔히 말하는 거룩한 아우라를 느끼게 됩니다.

제가 예수원 사무실 책임자로 신부님을 가까이에서 매일 뵙고, 신부님 생활하시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고 듣고 말하면서 만나뵈던 시간은 제 삶을 풍성하게 해주시는 하느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신부님은 언제나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신부님 미소에 관한 한 가지 일화를 말씀드립니다.

 

80대 들어서시면서 다리 한 쪽을 절으셨는데 고관절염으로 다리가 아파서 그렇게 5센티정도 짧게 되셨습니다.

하루는 사무실에 나와 계셔야할 신부님이 안 보이셔서 1호실에 올라가보니 재인사모님께서 다리가 아파서 잠을 못 주무셨다고, 침대에 누워계신 신부님을 뵈었는데 한쪽발을 쿠숀에 받쳐놓으시고 미안한 표정으로 바라보셨습니다.

진통제를 여덟 알을 드셨다고,

하루종일 진통제를 드실 정도로 그렇게 통증이 심하셨는데 저는 아프신 걸 전혀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신부님의 얼굴은 여전히 미소를 짓고 계셨습니다.

 

극심한 고통가운데서도 이렇게 미소 지을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신부님이 평생을 쌓으신 영성의 능력이고,

내면의 깊이이며, 십자가 지는 삶으로 이해했습니다.

대신부님 미소는 여전히 그립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하신 여러분

마지막으로 드리는 말씀은 그간 여성 사목자로 사목의 현장에서 느꼈던 점은 우리 사회와 관습과 문화는 여성을 지지하고 호응하는 것에 여전히 아쉬움이 남습니다.

대화가 필요한 상황에서 가부장적인 문화와 관습이 불쑥 자리를 잡고 동료로서 함께 대화하고 이해하는 분위기를 찾아보기 어려웠던 시간들이 가장 힘들었던 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목생활 중 가장 안타까웠던 일은 6년간 일구던 안동교회를 문 닫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할지라도 하느님은 한 가지 소원에 대해서 기뻐하셨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늘 부족함이 없게 하셨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는 잔잔한 기쁨이 늘 자리하고 있었던 것을 감출 수 없습니다.

 

저의 사제 정년 은퇴를 하는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그간 기도와 물질로 사랑을 베풀어주신 모든 분들께 특별히 여성성직자 후원회에 하느님께서 함께 하여주시길 바랍니다.

은퇴 이후에 제 삶은 하느님과 여러분들께서 베풀어주신 사랑의 빚을 갚아가는 시간으로 살도록 하겠습니다.

끝으로 부산교구 박주교님과 동료성직자 여러분들과

그리고 여성성직자 여러분들, 우리 하느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주님을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