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에서 성령쇄신이 시작된 것은 20세기 초엽이었습니다.
1900년 이탈리아의 '성령 봉헌 수녀회'의 설립자인 엘레나 게라 수녀는
교황 레오 13세에게 신세기의 첫 해를 '오소서 성령이여'를 노래하면서 시작할 것을 제안하였고
교황 레오 13세는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레오 13세 교황이 성령께 대한 회칙을 통해서 성령께 간구하라고 했던 호소는
1954년 4월, 엘레나 수녀의 시복을 계기로 교황 요한 23에게 채택되었고,
교황은 순례자들에게 새로운 성령강림의 필요를 역설하게 되었습니다.
요한 23세는 또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개최되기 전날 참석자들에게
사도행전을 한 번 더 읽을 것을 권유하였고
초대교회와 같은 새로운 성령강림을 기대하면서
마리아와 함께 기도할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그 후 그는 공의회의 축원이 있을 때마다 누누이 위의 기도문을 상기하였으며,
요한 23세의 뒤를 이은 바오로 6세 교황도 이 기도문을 인용하였습니다.
현대의 가톨릭 성령쇄신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끝난 직후인
1967년 미국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에 있는
듀케인(Duquesne) 대학에서 몇몇 학생들이
교회의 참다운 쇄신은 성령강림에서 시작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바오로 서간과 사도행전을 읽으며 매일 성령송가를 바쳤습니다.
이들은 교황 요한 23세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야에 기대했던
새로운 성령강림에 대한 동경을 가슴에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들에게 사도들이 다락방에서 체험했던 것과 같은 그런 성령의 체험이 주어졌습니다.
이들은 다른 대학의 친구들과 이 체험을 나누게 되었고,
이 체험의 여파로 본당과 수도원에서도 기도 그룹이 생겨나게 되었으며,
5대륙에까지 번져 수많은 나라에서 성령쇄신이 시작되었습니다.
1967년 미국에서 첫 전국대회가 열린 이래
1974년에는 세계대회가 열려 많은 사제들과 주교들까지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가톨릭 성령쇄신은
메리놀 외방전교회 백 제랄드, 신부, 서 요셉 신부, 조영호 수사, 에르나 슈미트 슈녀등을
중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한국 성령(은사)쇄신의 출발에는
성공회의 아쳐 토레이 신부와 스웨덴의 루터교 신자였던 미리암 여사의 도움이 컸습니다.
미리암은 간호원으로 생활하면서 미8군에서 성서공부를 지도하다가
성령세례를 받았던 팀 클락이라는 병사를 만나게 되고
그를 통해 그녀는 독일 까리따스회 소속 수녀인 에르나 슈미트 수녀와 만나게 되었고
이후 몇 몇 사람이 새로운 영성 체험을 나누고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1971년 5월 말 13명의 외국인 성직자, 수도자가
성공회의 아쳐 토레이 신부로부터 피정을 받았습니다.
7월 말에는 미국에서 성령쇄신에 참가했던
메리놀 외방전교회 백 제랄드 신부가 합세하게 되었습니다.
1973년 12월 5일에 '가톨릭 성령운동협의회'가 창설되었고
1975년에 '한국가톨릭 성령쇄신 봉사자 위원회'로 개칭되었습니다.
현재 이 봉사회는 각 교구의 교구장이 임명한 지도신부와 평신도 대표와 약간의 위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교구 간 긴밀한 협조체제를 이루고 있으며
전국대회 등 여러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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