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7월31일연중18주일
전도서1:12-14,2:18-23, 시편49:1-12, 골로3:1-11, 룩12:13-21
<탐욕 탐심을 경계하라>
이 세상은 한 마디로 보이는 것, 물질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엄청난 물질의 홍수 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이 물질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에 필요로 하는 것이지요.
물질이라고 하면 견물생심이란 고사성어가 떠오르듯이
보면 갖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반면에 신앙생활은 보이지 않는 세계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해서, 하느님과의 관계 안으로 점점 더 들어가면서 신앙의 깊이가 더 해지게 됩니다.
1. 광야의 훈련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우리는 예수님을 부를 때, 또 하느님을 부를 때 주님이라고 합니다.
나의 주, 나의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삶을 책임지시고 다스리시는 분이다, 그런 의미입니다.
성경에서 또 하나의 다른 주인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돈입니다. 왜 돈이 주인이 됩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막강한 파워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어요.
돈이 최고다. 돈만 있으면 돼, 돈이 없어서 못했네,
그래서 현대사회는 물질만능주의사회, 라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어떤 사람을 택하셔서 쓰시려고 할 때 맨 먼저 물질에 대해서, 재정에 대해서 훈련을 하십니다. 광야훈련을 하십니다.
광야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척박한 땅입니다.
물도 없고 밤에는 맹수도 나타나서 안전이 전혀 보장되지 않은 곳입니다.
광야훈련은 자연스럽게 재정훈련이 됩니다.
재정이 맨 먼저 부각되고 훈련으로 인도하시는 것은
세상의 주인을 따르느냐? 아니면 하느님을 따르느냐?
이 훈련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사용하시려면 하느님을 따라야하는데 물질이 하느님께서 주관하시고 하느님께 속한 것임을 철저히 깨닫고, 삶이 그대로 되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 재정훈련을 잘 통과해야 하느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물질의 묶임에서 해방되면 대개 다른 것에도 자유롭습니다.
방송이나 그 외 신앙간증 들어보면 이런 간증을 많이 들을 수 있습니다.
2. 이 시대의 바훔은?
어떤 사람이 땅을 더 많이 가졌으면 하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고을에서 공고 하기를 ‘누구든지 하루동안 걸어 다닌 땅을 1000루블에 주겠다’는 소식을 들어요. 이게 웬 횡재냐 하면서 이 사람은 너무나 기뻤습니다.
두 말없이 그곳으로 가서 촌장을 만나고 그에 대한 설명을 듣는데 하루 동안 다닌 땅은 전부 줄 것이다.
단, 해가 지기 전에 돌아와야 한다는 것, 지켜야할 약속은 이것 입니다.
이 사람은 너무나 기쁘고 흥분되서 잠도 설쳤습니다.
잠을 설친 다음 날 아침, 해가 뜨기 전에 나가서 마을사람들의 환대를 받으면서 걷기 시작합니다.
아침 식사 전에 벌써 많이 걸었습니다.
아직도 해가 저만치 있네, 하면서 갑니다.
점심때가 되어 상당히 멀리 왔는데도 옆에 좋은 땅이 보였어요.
그러니까 이것을 놓칠 수 없다. 하면서 그것을 돌아서 갑니다.
한참 가다보니 해가 기울기 시작합니다.
이제 돌아가자. 하면서 가는데 너무 멀리왔다는 걸 알았습니다.
부지런히 가다가 신발도 무거워서 벗어던지고 가는데 해가 점점 더 기울어갑니다.
달리기 시작합니다.
점심 때 돌아왔어야 하는데, 그때서야 그 생각을 합니다.
다리에 힘이 다 풀려서 걷기도 힘든데 해가 떨어질 것 같아 보입니다.
이제 저 앞에 촌장하고 마을 사람들이 몰려 있는게 보입니다.
비몽사몽간에 달립니다.
드디어 도착했을 때 해가 졌습니다.
촌장이 달려와 당신은 정말 좋은 땅을 차지했습니다. 축하의 말을 합니다.
이 사람의 하인이 달려와서 부축하는데 피를 토하면서 쓰러집니다.
그리고 하인이 그 자리에다 그가 누울 땅을 팝니다.
하루 온종일 땅을 갖기 위해 걷고 달렸던 그가 얼마만큼의 땅을 차지했습니까?
그 사람은 그의 키에 맞춘 고작 2미터의 땅을 갖게 됩니다.
톨스토이의 단편 가운데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에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이름이 바훔입니다.
바훔과 같은 인생,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일확천금을 노리고 비트코인에 투자했다, 주식에 쏟아부었다. 부동산에 투자했다가
낭패를 보는 이들이 왕왕 있습니다.
인간에게 있는 본성같은 이런 기질, 성향을 탐심, 탐욕이라고 합니다.
본문 15절에 “어떤 탐욕에도 빠져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사람이 제 아무리 부요하다 하더라도 그의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예수님 말씀입니다.
가톨릭성경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있지 않다.”
‘탐심’이란 말이 헬라어로 ‘플레오녀시아’, 이 말은 더 많은 ‘플레온’과 소유하다 ‘혀시아’의 합성어로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을 가리킵니다.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
여기서 ‘플레오녀시아’가 물질에 대한 탐심만을 말하는 것보다 사람을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가는 모든 종류의 죄악된 성향을 총칭하는 것입니다.
탐심과 탐욕이 인생을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가는 모든 죄악된 성향의 본질이라고 할 수도 있고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욕심이 삶의 많은 것, 인생을 송두리째 함께 끌고 들어가는 블랙홀이라고 이해해도 되겠습니다.
17절 곡식을 쌓을 곳이 없어,
부자임을 암시합니다.
한편으로는 재물로 채워질 길 없는 깊은 영혼의 갈증을 나타냅니다.
그 다음 하는 일이 창고를 짓고 쌓아 두자.
창고를 더 크게 지을 계획을 하고 더 많은 곡식과 재산을 쌓아 두려는 꿈을 꾸면서 스스로 만족하고 흡족해합니다.
세상에서 가르쳐주고 배우게 되는 인간의 모습이고 세상을 살아가는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3. 생명을 얻기 위해
그러나 여러분,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생명이 조에, 하느님의 생명, 영생입니다.
재산이, 물질의 부요가 영생을 주지못하는 것이지요.
우리나라 재별들이 1세대에서 2세대로 오면서 대부분 법정분쟁을 했습니다.
금오, 현대, 한화도 그래서 가족의 연을 끊기도 하고 서로 서먹한 관계로 살아가기도 합니다. 재산 때문에 중요한 가족관계에 해를 입혔습니다.
탐욕은 중요한 것을 놓치게하고 보지 못하게 합니다.
분별력이 없게 만듭니다.
골로새서 3장6절에서 탐욕과 탐심은 우상 숭배라고 강력하게 말씀합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사망을 낳는다.
욕심을 부리기 시작하면 생명력 같은 것이 있어서 죄와 사망을 낳습니다.
절제나 통제가 안 된다는 것이 함정입니다.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중에 절제가 있어요. 모든 것에 절제를 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능력은 그냥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지요.
훈련으로만 가능합니다. 영성훈련이 이런 것입니다.
예수원에서 하루에 세 번 3종을 치는데 처음 지원훈련 시작할 때, 얼마나 성가신지 몰라요. 3종이 울리면 그 자리에서 멈춰서 기도해야 합니다.
시트를 한참 개고 있는데 거의 끝나가는데 3종이 들려와요.
두 세장만 개면 되는데 3종이 울려요. 처음에는 빨리 개고 끝내자. 3종을 무시하고 계속 일을 합니다.
하루 이틀 시간이 가면서 3종이 울릴 때마다 마음이 복잡해져요.
일을 마저 마쳐야지. 하는 것 하고 공동체 규칙에 따러야지. 이것하고 갈등을 합니다.
어느 날부터 3종이 울리면 모든 것에서 손을 놓고 그 시간에 기도하면서
중요한 것을 배웁니다.
내 삶의 주인이신 하느님,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주님 부르셨어요?
절제와 순종을 배웁니다.
부자가 곡식을 쌓아둘 곳이 없어서 창고를 더 크게 지어서 곡식과 재산을 넣어 두어야지. 이렇게 계획하고 ‘영혼아, 많은 재산을 쌓아두었으니 몇 년 동안 걱정할 것 없다. 싫컷 쉬고 먹고 마시며 즐겨라.’
싫컷 쉬고 먹고 마시며 즐겨라.
이것이 오늘날 세상 사람들의 하나의 로망같은 허망한 바램입니다.
인간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날 밤 그 영혼이 그에게서 떠나갑니다.
백세시대, 백세인생의 시대가 되었어도 역시 시간의 제한을 받는 인생입니다.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면서 쌓아놓은 재산은 쉬고 먹고 마시고 즐기리라, 했던 그 계획도 사라지고 삶 자체였던 재산은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닙니다.
4.물질과 재능을 선용
오늘 기도문 가운데 인용합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나이다. 비오니 성령의 지혜를 주시어 우리가 받은 물질과 재능을 축복의 도구로 선용하게 하소서
물질과 재능을 나만을 위해 사용했다면 이제는 이웃을 위해서, 남을 위해서 선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성령의 지혜를 구하시는 것입니다.
미국은 이웃을 위해서 배려하는 것이 문화 가운데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하나가 기부하는 것입니다. 기부가 운영하는 재정에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아요.
미국사회에 노인 봉사자들이 3-4천만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두 가지이상 하는 분도 있다는 겁니다.
텔레비전보다보면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병원비가 필요한 아이, 조부모 아이, 해외 난민 어린이, 등 많습니다. 재정이 필요한 곳에 기부하는 습관을 갖는 것입니다.
한달에 오천원, 만원부터 동네나 거제 지역에 또는 다른 지역이라도 기부하시는 습관을 갖으시기를 바랍니다. 시작을 하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느님께 감사드리시는 것입니다.
감사는 뇌신경전달물질 세로토닌이 배출되어서 우울증을 치료합니다.
주무시기 전에 하느님께 다섯가지, 또는 열가지를 감사드리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거제 공동체 여러분
성경은 탐욕에 대해서 죄라고 말합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가져 옵니다. 야고보1:15
탐욕은 더 얻고자 하는 욕망이고 더 쌓아놓고자 하는 욕망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가치이고 세속사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나를 위해서 재물을 쌓고 소유를 위해서 살아갑니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는 이 세상에만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나라를 위해서 물질을 드립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에 물질을 봉헌합니다.
이 세상을 사시는 동안 하느님을 위해서 부지런히 정성껏 물질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너희 마음이 있는 곳에 너의 재물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물질은 하느님의 것이고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동안 관리를 맡은 청지기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물질과 재능을 축복의 도구로 선용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6절에서8절까지 말씀으로 마무리합니다.
자기가 갖고 있는 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종교가 크게 유익합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세상에 가지고 온 것이 없으며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시오.
거룩한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늘의 것을 추구하시는 복된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익숙해져야할 끝자리 (0) | 2022.08.28 |
---|---|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왔다 (0) | 2022.08.14 |
빵을 달라는데 돌덩이를 주겠느냐 (0) | 2022.07.26 |
성찬의 신비로 한 몸인 교회 공동체 (0) | 2022.04.10 |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 (0) | 2022.0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