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성직자회 후원의 날 설교 23년 4월 28일 전주교회
루가10:38-42
<참 좋은 몫을 택했다> 유명희 테레사 사제
서울과 부산, 전국에서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서 오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이렇게 자리를 함께 하여 주시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같은 뜻, 같은 생각을 갖고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을 동지라고 하는데
동지 여러분, 이렇게 부르고 싶습니다.
여성직자가 2001년 서품 시작한 이래 22년 되었습니다.
그 당시와 지금을 보면 상황은 비숫한 것 같습니다.
22년간 여성사목을 표현한다면 ‘고군분투’ 라는 사자성어가 잘 말해준다고 봅니다.
목회가 어려운 것이지 그렇지 않은 목회가 있느냐고 반문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상황에 대해 한 가지 잘 말해주는 것이 있습니다.
지난 주 설교 준비하면서 전에 들었던 것이 다시 떠올려졌습니다.
엠마오 가던 길에서 두 제자와 예수님이 만나 대화를 합니다.
제자들이 전혀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무슨 일이냐?’ 이렇게 질문하시죠.
제자들은 여전히 알아보지 못하고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사건을 설명합니다.
무슨 일이냐? 잠깐 넌센스퀴즈까지는 아니라도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는 것 한 가지가 있는데
예수님이 하신 말씀, 무슨 일이냐? 반말하시는 예수님, 반말하시는 분은 예수님입니다.
우리나라 성경에서 예수님은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모든 상황 속에서 반말을 하십니다.
예수님이 실제로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을 터인데 우리나라 성경은 반말로 표현합니다.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서 높여드리고 경외하는 마음에서 사대부집안 윗 사람, 높은 지위의 사람이 말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외 모든 사람은 아랫사람 이니 반말로 대하시는 것이지요.
우리나라 정서이기도 하겠지만
이것은 우리나라 교회에서는 으레 당연하게 여겨온 뿌리깊은 유교문화, 가부장적인 가치관을 나타내주는 표현이 될 것입니다.
가장 압권을 꼽자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고기잡는 제자들에게 오셔서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마치 조폭 보스가 부하들에게 한 건 했냐, 그런 느낌이 드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나라 교회의 관점과 가치관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또한 교회 안에서 이런 모습, 이런 표현에 대해서 아무런 거부감없이 그대로 수용하고 사용해왔다는 것을 생각해보게 하는 점입니다.
지금 당장 바꿔야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유교적이고 가부장적인 문화와 관습과 분위기에서 오는 권위주의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권력과 위력에 의한 분위기, 말과 행동, 표정은
상대적으로 약자이고 아랫사람인 여성을 위축되게 하고 상댱한 제약을 가져오게 합니다.
그리고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과 현실에 놓이게 합니다.
여기에 연결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성경구절이 오늘 주제로 삼은 루가복음 10장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시는 도중 베다니에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의 집에 들르시죠. 일행을 맞아들여서 식사를 대접하려고 마르다는 준비를 하고 마리아는 예수님 발 앞에 앉아서 말씀을 들을 자세를 취합니다.
일행이 열두 제자를 포함하면 15사람은 넘을 것 같습니다.
마르다가 재료를 썰다가 볶다가 마음이 급해지니 마리아를 부르려다가,
예수님께 이릅니다.
“주님 제 동생이 저에게만 일을 떠맡기는데 이것을 보시고도 가만 두십니까? 마리아더러 저를 좀 거들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여기까지는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이런 제안을 한 사람의 입장이 더 크게 고려되고 대부분 그의 제안에 힘이 실리게 됩니다. 그래서 그 제안대로 마리아는 잘못한 것처럼 머쓱해서 일어나 주방일을 도와야 할 것입니다. 이어서 본문을 보겠습니다.
“마르다, 마르다, 너는 많은 일에 다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된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상황이나 분위기에 휘둘리지 않으시고 중심을 잘 잡고 말씀하시는 예수님,
그리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마리아의 선택과 행동을 얼마나 존중해주시는지요.
존중해주시고 책임도 져주시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마치 교회와 사역지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우리 여성사제들에게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된다. 그 일은 마리아(너희)가 해야 할 일이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하신 여성 사제를 후원하시는 동지 여러분
본문 속에서 예수님께서 여성사제를 후원해주시는 역할에 대해 잘 말씀해주셨다고 생각됩니다.
여성사제들이 힘들거나 어려움을 겪을 때
42절로 말씀해주시면 용기와 힘을 얻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는 우리의 의견과 생각에 대해서 존중받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저희와 관련된 일들에 대해서 저희의 의견과 생각에 대해서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예수님 발치에서 말씀듣기를 좋아했던 마리아는 그것이 언니를 돕지 않는 일로 비쳐졌을 지라도 그 말씀듣는 가운데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 가장 아끼는 나르드 향유를 들고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털로 씻는 예언자의 행위를 한 것입니다.
‘이 여인은 나의 장례를 위해 기름을 부은 것이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곤 했던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음을 이해한 단 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알고 기름을 바른 예언자적인 행동을 한 유일한 제자입니다.
예수님은 기름붓는 마리아를 통해서 큰 위로를 받으셨습니다.
여성들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마지막에 구세주의 본분을 감당하시며, 수난을 겪으시고 죽음과 부활하시는 순간 순간, 그 곁을 떠나지 않고 주님과 함께 했습니다. 그 가운데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 언덕을 걸으실 때 그 곁에 함께 했고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그 아래에서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실 때 그녀의 모든 삶도 함께 못박히며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안식일 다음 날 아침에 무덤을 찾아가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납니다. 수난과 죽음과 부활이란 이 3일간 제자들은 어디론가 피신해서 숨어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찾아오셔서 ‘마리아야,’ 부르시고 마리아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서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일러라,’
이런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제자들을 찾아가 전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고 보냄을 받은 사도입니다.
그후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평생을 증거하면서 살았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모든 복음서마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의 증인으로 나오고 있는데
사도행전에 들어서며 그녀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한번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열심히 주님을 증거하며 다녔을 터인데 아무도 그녀의 전도에 대해선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성들의 역사는 이렇듯 자주 숨겨집니다.
기독교 이천년 역사 가운데 여성들의 헌신과 충성에 대해 잊혀지고 숨겨진 여성의 역사는 살아있는 교회와 함께 면면히 함께 해왔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여성과 남성을 만드시고 하느님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남성만이 아니고, 여성만이 아닌, 여성과 남성 서로간에 인격과 인격으로, 존중하는 관계를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관계 안에서 교회는 완전한 하느님의 나라로 세워질 것입니다.
함께하신 여러분,
첫 번째 아담에게 하와가 선악과를 건네서 죄악이 임했습니다.
두 번째 아담,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만난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첫 번째 증인으로 세상에 소망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저희 여성 사제들은 교회의 소망을 전하는 사도가 되고자 합니다.
세상에 생명을 전하는 사도가 되고자 합니다.
이 자리에 계신 후원회 여러분과 참석하신 여러분
여성 사제들이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소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끝까지 응원해주시고 지지와 격려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외롭지 않도록 기억해주시고 기도해주십시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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