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임과 은사
엡4장, 로마서12장, 고전12장
바로 그 분이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선물을 은총으로 주셔서 어떤 사람들은 사도로, 어떤 사람들은 예언하는 사람으로, 어떤 사람들은 전도자로, 어떤 사람들은 목자와 교사로 삼으셨습니다. (엡4:11)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나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롬12:6-7).
로마서 12장에는 일곱 가지 직임이 나오는데 주목할 것은 어느 일이 더 중요하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누가 직임을 받든지, 어떤 직임을 받든지 사랑으로 열심히 봉사해야 한다.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고전12:28)
고전12장에는 순서가 나온다. 첫째는 사도, 둘째는 선지자, 셋째는 교사, 그 다음에는 능력 즉 기적 행함, 병 고침, 서로 돕는 것, 다스리는 것(경영, administration), 그리고 방언이다. 이 여덟 가지 중에는 직임과 은사로 구분된다.
대신부는 아래 표와 같이 직임과 은사를 구분했다. 사도직은 직임이면서 은사이다. 선지자는 은사이다. 교사는 직임이다. 능력, 기적 행하는 것은 은사, 병 고치는 것은 은사.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은 직임, 방언은 은사이다.
고전12:28 직임과 은사
직임 | 은사 | |
사도직 | 직임 | 은사 |
선지자 | 은사 | |
교사 | 직임 | |
기적행함 | 은사 | |
병고침 | 은사 | |
서로 돕는 것 다스리는 것 |
직임 | |
방언 | 은사 |
로마서 12장에서 예언은 은사, 섬기는 것, 가르치는 것 은사, 권위하는 것 은사, 긍휼을 베푸는 것은 직임이다.
로마서 12장 6절
직임 | 은사 | |
예언 | 은사 | |
섬기는 것 가르치는 것 |
은사 | |
권위하는 것 | 은사 | |
긍휼 베푸는 것 | 직임 |
성경은 은사와 직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고전12:4-6)
직임이나 은사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시다. 이로 인해 나타나는 역사는 다르지만 일하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시다. 직임은 주를 통하여 주시고 은사는 성령을 통하여 주신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예수께서 교회 안에서 일하실 때는 몸 된 교회를 통하여 역사하신다. 교회는 성령의 역사에 동참해야 하며 사람을 신중하게 택해서 일을 맡겨야 한다. 이것이 직임이다.
사도행전 6장에서 일곱 집사를 택하면서 “당신은 방언하시오” “당신은 병 고치시오”라고 하지 않았다. 은사는 성령께서 사람들에게 직접 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고전12:11). 각 사람에게 주신 성령의 은사는 공동의 유익을 위해서이다. 따라서 교회가 성령의 역사하심을 대신하거나 간섭할 수 없다. 그러나 은사를 분별할 수는 있다. 교회는 대언이나 예언을 듣고 어디에서 나오는지 분별할 책임이 있다. 은사 가운데 영분별하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남보다 예민한 분별력을 받은 사람이다. 교회는 은사로써 다른 은사를 분별하여 인정한 다음 사도를 임명하는 것이다.
사도, 감독, 교사
사도의 역할은 선교사와 비슷하다. ‘선교사’는 ‘보냄을 받은 사람’으로 전도를 위해 세상으로 나간 사람이다. 현대 교회의 제도나 조직은 성경과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성경에서 집사직은 뚜렷하지 않고, 장로는 역할보다는 자격이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목사나 신부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성경에 소개하는 직임 하나가 ‘교사’이다. 교회가 교사의 직분은 인정하면서 서열로는 주교, 신부, 목사, 장로, 권사, 집사 밑에 교사를 둔다. 현대교회에서 교사는 주일학교 교사로만 활동하는 것에 그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교사를 세 번째 위치에 두고 있다. 이것은 직분을 맡는 사람은 가르치는 위치에 서게 되므로 그 범위가 훨씬 크다고 본다.
현대 교회의 제도는 세속에서 왔다. 성경에 있는 교회제도를 거부하고 사람들이 고친 것이다.
일반 사회에서 가장 인정받는 사람은 미국 사회에서는 돈 많은 사람이 첫째이고 두 번째가 다스리는 사람이다. 한국에서는 공부한 사람이 첫째이다. 전통적으로 유교 사상의 영향이 크므로 학식많은 사람이 인정받는 편이다.
복음서에는 서기관이 대체로 좋은 의미로 표현되지 않는다. 예수 시대 서기관들은 예수를 반대해서 죽이기로 결정한 사람들이었다. 성경에서 서기관에 대해 좋은 의미로 말씀하신 적이 한 번 있는데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마13:52)”. 따라서 성령을 받은 서기관은 새 것도 알 수 있고 옛 것을 버릴 필요도 없다.
엡 4장11절 헬라어 성경에 그 사도, 그 선지자, 그 복음 전하는 자, 그 목자와 교사라고 되어
목자와 교사를 하나로 보고 목자가 되기 위해서는 교사도 되어야 한다 생각해서 공부하는 것이다.
구약성경에는 ‘목자’란 말이 70번 이상 나오는데 ‘다스리는 사람’이면 목자라고 했다. 왕, 정치인, 관리인, 제사장 등이다.
백성을 지도하는 사람들이나 정치적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태도를 분명히 해야한다.
에베소서 4장 11-16절에는 사도, 복음 전하는 자, 예언자, 목자, 교사 가운데 다스리는 사람이 빠져있다. 목자가 다스리는 사람이기에 빠진 것이다.
현대교회에서 목자가 교사까지 되어 다스리는 사람, 가르치는 사람, 영적인 지도자, 제사장, 예언자까지 하는 것은 성경과는 맞지 않다. 성경에 여러 가지 직임을 한 사람이 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각각 받은 책임대로 분수를 지켜 행하고 있다.
현대교회는 성직자와 평신도로 구분지어 성직자가 모든 일을 도맡아 하고 평신도는 돈만 내면 되는 모습은 성경과는 다른 사상이다.
딤전 3장 1절 이하에 감독의 자격에서 감독은 주교, 장로로 해석할 수 있다. 감독이 되려면 선한 일을 사모해야 한다.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고 근신하고 아담하고 나그네를 대접할 줄 알아야한다. 신학교 교육과는 별 관계가 없다. 또한 ‘가르치기를 잘해야 한다’(딤전 3:2)고 했다. 이 말은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딤후 2:24)’ 이처럼 성품을 나타내는 단어들 가운데 ’가르치기를 잘해야 한다’는 말은 전체 흐름과 맞지 않다. ‘가르치기를 잘하는’ 헬라어는 ‘디닥티코스δίδακτίκος’로 딤전3:2, 딤후2:24 이 두 곳에서만 나온다. 유대인 역사가이며 교사로서 바울과 같은 시대에 학자인 알렉산드리아의 필로(Philo)의 저서에서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그에 의하면 “가르치기를 잘하는”(apt to teach)이 아니라 “가르칠 수 있는”(able to teach)의 뜻으로 설명한다. 이 말은 가르침을 잘 받는 사람, 즉 겸손한 사람이란 뜻이다.
주의 종은 항상 배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가르치기를 잘하는’이라는 번역은 원래 의미와 다른 것이다.
성공회에서 주교를 사도의 후임자라 하지만 성경적으로는 맞는 말이 아니다. 주교와 사도는 같은 역할을 하지 않았다. 사도들은 항상 돌아다니면서 여러 교회를 방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선교사이다.
디도서 1장에 ‘장로’가 나오고 5절에선 장로, 7절에서는 감독이라고 했는데 장로와 감독에 구별이 없었다고 본다. 여기서 장로의 자격과 디모데후서의 장로의 자격이 비슷하게 나온다. “다투지 아니하고 겸손하고 부드럽고 깨끗한 생활을 하고 대접을 잘하고 받은 가르침을 잘 지키고 좋은 교리를 가르치고 그릇 행하는 자를 책망하라”고 되어 있다.
사도행전 20장 17절을 보면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에 교회의 장로들을 청했고 28절에 장로들에게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라고 했다. 그러므로 장로, 감독, 목자, 이 세 단어는 한 사람에 대한 말이라고 본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약3:1)
야고보는 자신을 선생이라고 소개하면서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은 사람이 공부를 많이 하고 가르치는 위치에 서면 심판의 비중이 더 크다는 말이다. 책임이 무거울수록 잘하지 않으면 더 무거운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선생의 위치는 충분히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에 잘못하면 심한 화를 당하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이것이 일반사회와 다른 점이다. 오늘날의 교회는 심판의 원리를 잊어버린 것 같다. 그러나 성경은 모세와 다윗의 경우와 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 원리를 말하고 있으며 지도자나 가르치는 사람의 책임이 얼마나 무겁고 큰 지 알 수 있다.
사도행전 6:1-4 일곱 집사이야기가 나온다. 교회에 사람들이 많아지고 재정도 많아지면서 재정을 관리하던 열두 사도가 운영에 어려움이 생기게 되었다. 열두 사도는 잘못을 인정하고 이 일을 맡을 일곱 사람을 선택하도록 해서 재정 관리를 담당할 사람들이 세워졌다. 이들의 자격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들, 즉 이 사람들의 마음에 성령의 내적 역사가 끊임없이 활동하고 지혜가 있는 사람들이다.
사도의 첫째 임무는 기도하는 것이 최우선의 일이다. 사도들에게 기도의 중요성은 절대적이다. 이것은 헌대 교회의 책임자들에게도 기도는 중요하다. 그러나 교회가 커지면 커질수록 교회생활이 분주해지기 때문에 기도생활을 못하는 것 같다.
사도들의 둘째 임무는 말씀 전하기이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함으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곱 집사를 택하고 사도들은 본연의 자세로 돌아갔던 것이다.
일곱 집사의 명단은 성경에 나오지만 교회의 사도, 장로, 감독들이나 목자들의 명단은 나오지 않는다. 로마서 끝에 여러 사람에게 안부를 전하면서 이름만 나올 뿐, 직분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고린도 교회에도 개인이 아닌 온 교회에 인사를 한다. 그리스보와 가이오, 스테바나는 세례의 책임을 맡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외에 빌립보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에도 나오지 않는다.
이것에 대해서 한 개인의 직분을 강조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본다. 성경은 교회내 직분의 차등을 인정하지 않는다. 성경은 ‘모두가 모두에게 필요한 지체’라고 가르치고 있다. 목사, 신부, 사제, 전도사 등 성경에 나오지 않는 직분들을 아는 것 보다 오직 각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자신의 직분(사명)을 깨달아 주님이 원하시는 길로 인도함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임을 주신 이유로 엡4:12-13에서 밝히고 있다. “그것은 성도들을 준비시켜서 봉사활동을 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자라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마침내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 있어서 하나가 되어 성숙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의 완전성게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많은 책임을 맡아 하게 되면 아름답지 못하고 비능률적이며 부패하기 쉽다. 우리는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데 쓰이는 도구로서 겸손히 충성할 수 있도록, 늘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책임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심판도 무겁다는 사실을 깨닫고, 국가 지도자와 교회 지도자들을 위하여 쉬지않고 기도해야 한다.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지체이므로 서로 사귐과 섬김을 실천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한다. 기도하며 실천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관리인에게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것은 주인에 대한 충성이다(고전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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