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

유테레사 2021. 9. 5. 22:48

95일 여성선교주일

요엘 3:1-2, 시편85, 갈라디아서 3:26-29, 루가 24:1-10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

대한성공회가 매년 9월 첫째주일을 여성선교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여성선교주일은 여성선교에 대한 적극적 관심을 일으키고 지지하자는 취지에서

십여년 전부터 실행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찬례의 모든 기도문과 성경 본문도 여성과 연관된 말씀입니다.

 

1. 예수님 주변에 여성들

예수님께서 요즘 아침 묵상에 계속 등장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질문하거나 안식일 논쟁과 같은 것에 대해서는 조금의 여지도 없이 냉혹하고 매섭게 대하시는 모습을 봅니다.

이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가르침을 하기 때문이지요.

자기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구전율법과 같은 사람이 만든 가르침을 통해서 일반 사람들을 억압하는 것을 지적하시면서 새로운 체제, 새로운 가치로써 하느님 나라를 말씀하십니다.

이와 다르게 예수님께서 약자들에게는 스스럼없이 대하셨는데 그 중 하나가 여성들입니다. 약자 가운데 하나가 여성이란 말이 유대전통에서도 그렇고 우리나라 유교적인 가부장제 사회에서도 그런 점은 동일하리라 봅니다.

 

예수님 주변에는 늘 여성들이 가까이 있었습니다.

복음서에 예수님과 11로 만나는 장면이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시카르라는 지방 우물가에서 만난 여성과 대화하시는 예수님은 그녀가 얼마나 고통스럽게 살고 있었는지, 남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수치스런 삶을 살아온 것을 대화 중에 서로 나누면서 이 여성은 모든 억압과 굴레에서 해방됩니다. 가장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예수님이 먼저 꺼내시면서 어둠이 빛 가운데 드러나며 치유되었고 자유케 됩니다.

그동안 피하고 숨어다니던 동네사람들에게 가서 메시아를 만났다고 전하러 다니고, 사람들을 예수님께 데려옵니다. 이 여성은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고 그후로도 그렇게 살았을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제자들 전도부인

기독교가 어떤 나라에 들어가면 여성들을 교육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학교를 세우고 교육시켰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기독교가 가장 잘한 것으로 평가되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여성들을 교육한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나라 여성들은 이름도 없이 살았습니다.

언년이, 갓난이, 딸 그만나라고 딸그마니, 이름같지 않은 걸 부르면서 일종의 무시하고 천대하는 의미로 그렇게 부른 것 같습니다.

선교사들로부터 교육을 받은 여성들 가운데 교회에 봉사하고 헌신하는 이들이 생겼는데 전도부인이 그들입니다.

성공회에서는 초대전도부인이 박유니스, 아가타전도사님 할머니십니다.

박유니스전도부인도 아펜젤러선교사의 한국어선생이던 남편이 아펜젤러선교사와 목포 앞바다에서 배가 난파되면서 함께 목숨을 잃게 되자

성공회 트폴로프주교님의 권유로 정동성당 내에 두 아들과 함께 와서 교회 일을 돌보고 지내면서 전도부인으로 섬기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전도부인들은 대개 남편이 돌아가신 분들이 주님께 헌신하여 전도와 심방을 하고 주일학교와 교회 모든 허드렛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남편이 없이 어떻게 뭘 하면서 살아가야하는지 막막한 상황에서 할 일이 있다는 것에 소망이 생기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는 일을 기쁨으로 여기며 봉사했습니다.

그들 자신의 삶이 증거이고 경험이기에 그것을 나누는 것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습니다.

강화 지역 교회와 경기도는 수원교회와 안중교회, 충청도는 진천교회 등에서 전도부인들이 많이 나왔고 이 분들의 후손들이 지금 성공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주님께 헌신하는 한 사람, 전도부인을 통해서 한 집안 전체가 의식이 깨어나는 변화가 있게 된 것입니다. 전도부인들의 믿음이 오늘날 성공회에 근간을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봅니다.

전도부인들의 명단에 밝혀진 이름만 50여명이 됩니다.

1910년에서 40년까지 가장 많은 활약을 했는데 이분들의 활약을 짐작할 수 있는 숫자입니다.

 

3. 부활의 증인 여성들

해마다 부활주일 복음은 요한복음 201-18절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부활하신 예수님의 만남입니다.

오늘 본문은 루가복음 241-10절 요한복음과 동일한 배경입니다.

기록된 시기가 루가복음은 50-60년대이고, 요한복음은 그보다 나중인 95년경으로 봅니다.

오늘은 루가복음을 본문으로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여성과 연관이 깊은 주제입니다.

요한복음에는 부활하신 주님을 막달라 마리아 혼자서 만난 것으로 나옵니다.

루가복음에는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그 외 다른 여자들이 함께 주님의 무덤에 갔다가 비어있는 무덤을 본 증인으로 나오는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만찬 후에 제자들과 함께 올리브산으로 가십니다.

이 곳에 겟세마네동산이 있고 유다가 제사장과 병정들을 데리고 이 곳으로 오기 전인데열한명의 제자들에게 (마태2631),

오늘 밤 너희들은 다 나를 버릴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곧 이어 게세마네에서 체포되면서 제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의 집 안뜰에서 고초를 겪고 날이 밝아서 빌라도에게 가시고 로마 병정들에게 채찍으로 맞고 가시관을 쓰신 후,

골고다 언덕,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어머니를 만납니다.

그리고 예수님 얼굴을 닦아주러 다가온 베로니카를 만납니다.

예수님을 따라오며 통곡하는 예루살렘의 여인들을 위로하시며 십자가 처형되는 곳까지 가십니다. 십자가의 길 14처 가운데 세 번 여인들과 만납니다. 큰 위로를 받으셨을 것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사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꿋꿋이 자리를 지켰던 사람은 여자들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 군인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주위에서 눈물을 흘리는 가족이나 친구들을 살기 등등하게 위협하는 상황 속에서 대역죄인 곁을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남자들이 교회의 모든 것을 주도하는 입장에서 볼 때, 부활하신 예수께서 여자들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셨다는 사실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여자들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전해 주었습니다.

 

루가는 예수님과 여자들의 관계에 특별한 관심을 보입니다.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를 따라 다니던 여자들도 모두 멀리 서서 이 모든 일을 지켜보고 있었다. 루가23:49”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입니다.

"그리고 악령에서 벗어나 질병에서 낫게 된 여자들도 더러 있었는데, 곧 일곱 귀신이 쫓겨난 바 있는 막달라 여자라는 마리아, 헤로데의 신하 쿠자의 아내인 요안나, 그리고 수산나, 그밖의 여러 여자들이었다. 루가24:10”

부활하신 날 아침 무덤가에 간 여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러 다니실 때 늘 여자들이 곁에 있었는데 그 여자들과 개인적 친분이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자들의 병을 치유하시고 격려하시며 악령을 쫓아 내셨습니다.

그 여자들은 대부분 평범하게 사는 사람이 아닌 삶의 질곡이 있는 사람들, 자신을 비하하고 소망없이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여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귀한 가치, 존엄성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이런 점은 12제자에게도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베드로에게 하신 것처럼 돌봐주시고 가르쳐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위기적 상황이 닥쳐왔을 때 제자들은 사라졌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시면서부터 못박히고 돌아가실 때까지 여성들은 그 주변에서 함께 하고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점이 하느님께서 여자들에게 주신 특별한 감성이자, 성향이고 영성이라고 봅니다.

즉 정치적인 위계질서에 익숙한 남성들에게 로마식민지 체제하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제자들에게는 감당키 어려운 정치적 권력의 힘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를 피하는 것입니다.

이런 체제에 익숙하지않고 그 실체를 덜 느끼는 여자들에게는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를 지고가시는 예수님, 사랑하는 주님,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예수님을 그대로 혼자서 감당하도록 버려두지 못하는 것입니다.

 

4. 여성들의 사명

폴 투르니에는 스위스의 의사이며 현대 기독교 심리학에 큰 공헌을 한 분입니다.

이 분이 쓰신 여성 그대의 사명은이란 책이 있는데 이 분의 말은

지금까지 세계가 남성들의 주도권아래에서 오늘날의 세계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이제 객관성으로 가득한 딱딱한 세상에 여자들의 따뜻한 온기와 기계화된 세상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것이 오늘날 여성들의 사명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점이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부활에 끝까지 주님을 따라서

함께 한 여성들의 인내와 용기, 순수한 믿음이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찾으면 우리 모두 한 분 한 분에게 언제나 가장 가까이에 계시고 만나주십니다. 예수님을 만나고자 간절히 원하면 세상의 거리낌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성인지 감수성이나 2차 가해와 같은 세상의 왜곡된 편견과 차별이 없이 그 존재 그대로 받아주십니다. 아직도 전 세계에서 매일 5.7명의 여성들이 남편과 가족, 친지, 이웃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있다는 통계가 엊그제 나온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힘있는 자가 힘없는 약자에게 힘으로 억압하는 것은 하느님의 형상이 깨어지고 왜곡된 모습입니다.

 

오순절 성령은 남종과 여종을 부르시고 함께 협력하여 이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확장케 하셨습니다. 성령은 차별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대로 각각 소명을 주시고 능력을 주셔서 일하도록 함께 하십니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 존중하고 서로 섬기며 살아갈 때에 온전한 하느님의 형상이 회복될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를 위해서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성령과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았다고 말씀하시는 우리 가정이 되시고,

우리 교회가 되고, 우리 사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 가정의 사랑의 공동체, 교회  (0) 2021.12.26
어린 아이를 섬기는 마인드가 되라  (0) 2021.09.19
회개만이 참된 정결례입니다.  (0) 2021.08.29
성찬례, 예수님의 선물  (0) 2021.08.15
영원한 생명의 양식  (0) 2021.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