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9일 연중25주일
잠31:10-31, 시1, 야고보3:13-4:3,7-8상, 마르코 9:30-37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어서 두 번째로 맞이하는 추석 명절입니다.
작년과 다른 점은 백신 접종이 시작되어서 그래도 1차접종이 70%되었다는 것에 조금은 안도를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문대통령께서 대통령특사 자격을 준 BTS와 함께 un총회에 참석하시러 오늘 출발하신다고 합니다. 3년전 추석에는 3일간 평양 방문해서 김정은 위원장과 회담하는 꿈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추석연휴에 고향에 간 귀성객들이 모두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하시고 모두 무사히 귀가하시길 바랍니다.
1. 예수님의 두 가지 사역, 전도와 양육
예수님에게 제자들은 어떤 존재였을까요?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특별하고 얼마나 애틋하셨을지 오늘 본문에서 살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기적을 행하신 후에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입은 그 당사자에게 내가 한 이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당부하시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가르치시는 일도 중요한 사역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사역이 있는데 그것은 제자들을 양육하시는 일입니다.
현재 교회에서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교회 안의 신자들에게 예배, 설교, 소모임 등을 통해서 양육합니다.
오늘날 교회의 전통적인 방법이 예수님께서 하신 두 가지 사역입니다.
공생애 후반에 이르러서 우선하셔야 하는 일이 제자들 양육인데 일반 사람들 사역하시느라 그 시간을 뺏기게 되는 것을 조금 신경쓰신 것 같습니다. 알리지 말라고 하신 이유가 제자들 양육에 더 집중하셔야 하기위해서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2. 제자 양육에 집중하시다
12 제자 양육,
이 일은 아무에게도 맡길 수 없는 예수님이 직접하셔야만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에게 제자들은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전파하는 소임을 맡아서 해야할 사람들로 보시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얼마 지나서 예수님이 가시고 난 후에는 오로지 제자들이 예수님 하시던 일을 담당해야 할 터인데 요한복음 17장에는 제자들을 위해서 하느님께 절절하게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심정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양육 커리귤럼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구원자로서 자신을 먼저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야만 했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잡혀 사람들에게 넘어가 죽었다가 사흘 만에 살아날 것이다.”
- 잡혀서 죽었다가 사흘 만에 살아난다. -
이 말을 듣고 알아들을 사람이 있었을까요?
세상 천지에 알아들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근데 이 똑같은 말씀을 두 번째 하시는 것이 본문입니다.
제자들은 ‘지난 번에 하신 것 같은데 또 말씀하시네.’ 속으로 그랬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듣고 아무 말도 안합니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잡혀서 죽는다는 말만 귀에 들렸을 터이니 무섭기만 했을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질문하기도 두려운, 죽음이란 말에 아예 입을 닫고 질문을 꺼내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자들이 이렇게 못 알아 들을 수 밖에 없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이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로마의 식민지 상태에서 해방시킬 지도자로 막연하게 기대하고 따라다니고 있는 상황입니다. 억압하는 로마에 대항해서 멋지게 한판 붙는 날이 언제쯤 일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제자들입니다.
하느님을 생각하고 하느님의 뜻을 알려고 하는 차원하고는 거리가 한참 먼 제자들입니다.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다.’ 이사야서(55:8)에서 말씀합니다.
3.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통과 해야 할 관문이 있는데
내 삶 가운데 일어난 시련이나 문제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과 내 뜻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쉽지 않은 과정을 겪을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생각지 못했던 것에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하느님의 섭리를 알면서,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느님을 경험 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에 대해서 우리는 이미 잘 정리된 교리공부와 가르침 등을 통해서 익히 배워서 잘 아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본질적으로 십자가 수난과 죽음은 하느님의 지혜와
인간의 지식과 경험 사이의 한계를 잘 나타내주는 하느님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기독교의 모든 것입니다.
하느님의 차원에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인간의 경험 안에서는 알 수 없고 이해되지 않는 신비인 것입니다.
제자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전하며 전도할 때 예수님 십자가 죽으신 것을 듣는 사람들이 십자가 죽음에 대해서 선뜻 이해를 못할 수 밖에 없는 신묘막측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생활은 신앙의 연륜이 쌓여갈수록 내 관점에서 점점 하느님의 관점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입니다. 점점 삶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수난과 죽음은 순종과 헌신입니다. 그리고 겸손입니다.
이런 변화가 우리 내면 가운데 지속적으로 일어나시기를 축복합니다.
4. 어린 아이를 환대하는 것이 나를 환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 길과 너희 길이 다르고 내 생각과 너희 생각이 다른
그 일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번번이 나타납니다.
예수님과 일행이 가파르나움 집에 도착하면서 제자들에게 질문하십니다.
‘너희들 왜 길에서 다퉜느냐?’
제자들이 대답을 안합니다. 아뭇 소리를 못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양육은 십자가 죽음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두 번째 양육을 시작하십니다.
35 예수께서는 자리에 앉아 열두 제자를 곁으로 부르셨다.
그리고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로마에 대항하는 정치적인 지도자 쯤으로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또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엇 때문에 다투었는지 다 아시지만
힘으로 제압하는 지도자를 그리고 있는 제자들에게,
누가 높으냐 하는 것에 관심이 초집중되어서 서열로 인해 옥신각신 울그락불그락 하는 제자들 앞에서 어린 아이를 불러다가 팔로 안으십니다.
제자들이 눈이 둥그래해서 예수님을 쳐다봤을 것입니다.
전혀 생각하지 않았고 이들의 생활과 상관없는 아이, 성가시게만 생각했던 아이가 지금 그 가운데 들어온 것입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면 곧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또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만을 받아 들이는 것이 아니라 곧 나를 보내신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에서 어린 아이와 나, 곧 예수님과 나를 보내신 이, 곧 하느님이라는 등식이 성립되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와 예수님과 하느님이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어린 아이를 받아들이는 것, 영어로 welcome- 환대하는 것입니다.
친절하고 따뜻하게 마음을 다해서 영접하는 그 대상이 힘없고 약한 어린이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고 하느님을 영접하는 것이 되는
굉장히 큰 일이고 그보다 중요한 일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우선하고 먼저 해야할 일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어린아이를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소유물처럼 마구 학대하고 장난감처럼 버려버리는 그런 일들이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환대하는 것은 예수님을 환대하는 것이다.
어린아이를 환대하는 것은 하느님을 환대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린 아이를 볼 때마다 마음을 열고 가까이 다가가서 눈을 마주치시는 습관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5. 섬기는 리더쉽
요즘 하루종일 매스컴에서 정치가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대선을 앞두고 각 당에서 경선하느라 연일 바쁜 일정을 진행 중입니다.
어떤 지도자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느냐? 매일 통계수치가 발표됩니다.
일반 정치에서도 어떤 지도자가 바람직한 지도자냐?에 대해서
섬기는 리더쉽을 말합니다. Servant leadership
예전에는 군림하는 지도자였다면 서반트 리더쉽은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봉사하고 섬기는 것을 우선하고 아래 사람들을 존중하는 지도자입니다.
어린아이를 존중하고 섬기며 환대하는 지도자라면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아이를 섬기는 것은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고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힘없는 사람, 가진 것이 없는 사람, 볼품없는 사람, 남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아무 것도 기대할 것이 없고 이해타산이 없는 아이와 같은 사람들을 섬기는 것은 겸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우리 이웃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섬기는 것은 순종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약한 자를 섬기는 사람은 예수님을 섬기고 하느님을 섬기는 것
이며 그에 합당한 권위가 주어집니다. 자신을 낮춰 섬김으로 권위가 주어집니다.
하느님 나라에 참여하는 것이고 하느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 넓혀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일에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요한 공동체 여러분
오늘 2독서인 야고보서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13 ¶ 여러분 가운데 지혜롭고 지식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답게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착한 생활을 함으로써 그 증거를 보여주도록 하십시오. 14 여러분은 마음속에 고약한 시기심과 이기적인 야심을 품고 있으니 공연히 잘난 체하지 마십시오.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15 이런 지혜는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이며 동물적이며 악마적인 것입니다. 16 시기심과 이기적인 야심이 있는 곳에는 분란과 온갖 더러운 행실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17 그러나 위에서 내려오는 지혜는 첫째 순결하고 다음은 평화롭고 점잖고 고분고분하고 자비와 착한 행실로 가득 차 있으며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18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은 평화를 심어서 정의의 열매를 거두어들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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