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진리를 위해 사는 사람

유테레사 2022. 10. 30. 20:55

1030일 모든 성인들의 날, 연중31주일

이사25:6-9, 24, 묵시21:1-6, 요한11:32-44

<진리를 위해 사는 사람>

 

 1. 모든 성인들의 날

모든 주일은 특별한 날입니다. 그 가운데 오늘은 특별한 주일입니다.

전례력으로는 모든 성인의 날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원래는 이틀 후 111일인데 당겨서 오늘 주일에 축일로 기념하라고 하는 지침에 따라 그 뜻을 기리고자 합니다.

31일인 내일은 할로윈 데이입니다. 아이들이 귀신을 무서워하지 않도록 기괴한 복장을 하고 다니면서 사탕을 받는 새로운 문화가 되고 있습니다.

이 할로윈 데이는 영국에 토착민인 켈트족들이 추수가 끝난 1031일에는 태양의 기운이 다해서 이승과 저승을 구분하는 벽이 얇아지기 때문에 악령들이 이 세상에 와서 사람들을 괴롭힌다고 믿고 악령들을 달래기 위해서 이상한 옷을 입고 재미있는 행사를 해오던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거기에 기독교가 전래되면서 성인들의 삶을 기념하는 모든 성인의 날로 정해서 악령과 죽은 자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날로 의미를 부여하고, 하던 놀이는 그대로 전해오던 것이라고 합니다. 좀 복잡합니다.

Hallow는 앵글로 색슨어로 Saint 성도 란 말입니다. All Hallows' day, 모든 성도의 날에 전날eve 행사를 All Hallow E'en 거룩한 저녁, 이란 뜻으로 영국의 풍습인 악령을 달래는 날, 할로윈으로 되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영국의 풍습이 기독교 나라로 전파되며 생긴 기독교문화라고 하겠습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 집은 할로윈데이에 할로윈 복장을 하고 유치원에 가는 특별한 행사의 날로 자리잡았고 이태원에 이상한 복장을 한 사람들로 발디딜 틈없이 채워진 것을 볼 때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합니다.(10.29 10시경)

(하느님 목숨을 잃은 영혼들을 긍휼히 여겨주시고, 유족들을 위로하여주소서)

31일은 마틴 루터가 1517년 비텐베르크성당 정문에 95개조항을 써붙인 날입니다. 종교개혁의 불을 당긴 마틴 루터를 기념하여 개신교는 종교개혁주일로 지킵니다.

 

성인의 날 이 축일은 7세기 시작해서 9세기에 오늘 날짜로 되어졌습니다.

축일은 성인이 태어난 날이 아니라 죽은 날을 기념합니다. 죽어서, 순교한 날을 천국에 들어간 날이란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성인의 축일은 이미 각각의 날짜가 있는데 오늘 성인의 날 축일은 축일이 정해져있지 않은 수많은 성인들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축일이 정해진 성인보다 정해지지 않은 성인의 수가 훨씬 많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이름없이 빛도 없이 복음을 전하다가, 믿음을 지키다가 목숨을 바치고 순교한 분들이야말로 거룩한 삶을 사신 성인입니다.

 

2. 자캐오

연중31주일의 본문으로 이어서 말씀드립니다.

31주일 본문은 자캐오의 일화입니다.

본문을 보면 누구나 그렇듯이 자캐오란 사람도 진로에 대해서 엄청나게 고민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집안이나 가정형편이 그다지 넉넉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캐오가 키가 작았고 외모가 볼품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내세울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겁니다.

그래서 자신의 열등감과 어려웠던 가정환경에서 그는 물질, 돈을 최고의 가치이자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시절이었지요.

자신의 여건을 보고 선택한 것이 세관입니다.

자캐오는 세관이 되었습니다.

세관이 하는 일은 세금을 거둬서 로마에 바치는 일입니다. 거기서 얼마를 착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세관에서 세관장, 세금거둬들이는 일의 책임자가 되었으니까, 지역 유지가 된 셈입니다.

부자가 되었고 사람들이 무시하지 못하는 지위를 가진 것입니다.

바라던 대로 이뤘습니다.

성공했고 출세한 것입니다.

그의 삶에서 분명, 가장 최고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자캐오의 삶이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동족들,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를 싫어했습니다.

로마제국의 힘을 빌어서 부를 취하고 살고 있으니까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유대인 공동체에 들어가지 못하는 소외된 이방인으로 살고 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로마의 앞잡이 세리는 죄인인 것입니다.

앞에서는 예, 예하면서 뒤돌아서면 욕을 했을 것입니다.

자캐오는 사는게 사는게 아니었어요. 괴로웠습니다.

그에게 들려오는 소문에 예수란 분에 대해서 많이 들려옵니다.

그 마음 속에 예수님을 한번 봤으면, 하는 소원이 있었던 차에

예수님이 오신다고 하니까 갔는데 키가 작으니까 안 보이지요.

그래서 먼저 앞서 달려가서 보니까 길옆에 돌무화과나무가 있어서 나무에 올라갑니다.

거기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데 예수님이 자캐오 그 앞에서 멈춰서시더니,

자캐오야 내려오너라, 내가 오늘 너희 집에 머물러야겠다.”

 

3. 자캐오의 삶, 인생의 고뇌

그간 자캐오는 자신의 열등감과 가난에 처한 환경에서 물질을 최고의 가치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물질과 사회적인 지위가 주어졌지만 열등감도 그대로 있고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이런 자캐오의 삶은 오늘날 현대인의 삶과 닮아 있습니다.

현대인은 배 고프지 않아요. 집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걱정이 많고, 불안하고, 고독해요. 외로운 것입니다.

현대인에게는 삶의 의미를 모르거나 못찾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대인의 고뇌는 외로움입니다.

정신적으로 공허합니다.

먹방, 쿡방을 보고 대리 만족하면서 잠시동안 행복감을 느낍니다.

맛집을 찾아서 싫컷 먹고서 다이어트하면서 복근에 열광을 합니다.

예전에 가난한 시절에 보리고개란 것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차원은 오래전에 벗어났지만

다시 다른 차원에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살아가는 의미같아 보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공중의 새들을 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거나 곳간에 모아 들이지 않아도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 먹여주신다.

너희는 새보다 훨씬 귀하지 않느냐. 너희가 걱정한다고 목숨을 한 시간인들 더 늘일 수 있겠느냐? 들꽃이 수고도 않고 길쌈도 안하는데 솔로몬보다 더 화려하게 입지 않았느냐?

오늘 피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꽃도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에게 얼마나 잘 입히시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해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내일 일은 내일에 맡겨라. 마태복음 6”]

그러니까 사람은 의 식 주, 입고, 먹고, 마시는 것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강조하시고 싶은 포인트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는 것이 가장 우선하며 중요한 것입니다.

올해 부산교구 표어가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로마서14:17입니다. 같은 맥락의 구절입니다.

 

4. 주님을 만남, 삶의 전환, 변화와 실천

자캐오는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자신이 세관장이지만 유대인들과 가까워질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괴로워하면서

외로움과 공허감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에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대망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으면서 만나기를 고대하던 차에 그곳에 오신 것입니다.

내가 그 분을 꼭 만나야겠다. 일생 일대 이 기회를 놓치지 말자,

이런 간절함과 진실함을 볼 수 있어요.

예수님을 보러갔더니 사람들이 구름떼같이 모여있으니까

사람들보다 앞서 달려가서 길 옆에 나무에 기어 올라갑니다.

세관장의 신분인데 사람들의 시선이나 체면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오로지 주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의 순수한 열망,

이것이 우리를 예배로 이끕니다.

우리를 교회로 향하게 하고 기도하도록 이끕니다.

이것은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의무적이지 않은 스스로 마음에서 원해서 하는 자발적인 것입니다.

하느님을 향해 자발적인 동기가 우리 공동체 안에 생수처럼 늘 흐르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만나보려고 나갔는데 사람들이 키가 머리 하나씩 크니까 가려서 볼 수가 없어요. 나무에 올라가서 아래를 쳐다보는데 예수님하고 눈이 딱 마주치면서

예수님이 자캐오를 부르시고 내가 오늘 네 집에 머무른다.’

보기만 해도 원이 없겠다 했는데 이름까지 불러주시고

예수님을 집으로 모시고 음식을 대접하면서

자캐오는 마음에 큰 감동과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자캐오의 마음에 들어오신 것입니다.

자캐오는 세 가지를 마음 깊은 곳에서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감사했어요.

 

하나는 하느님께서 살아계시다.

, 하느님이 나를 아신다.

, 예수님을 만났다.

 

누구나 예수님을 만나면 그때의 감동을 평생 기억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납니까?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깨달아집니다.

전에 생각지 못했던 나의 모습, 내 생각, 내가 알고 있는 이해

이것을 뛰어넘어서 나를 확연히 알게 되고 보게되고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모든 세포가 살아나듯이 생생하고 보드라운 영혼의 상태와 같이 되어버립니다. 그때 예수님이 내 곁에 계신 것을 보기도 하고 느끼기도 하고 목소리를 듣기도 하면서 돌같이 굳어져있던 마음이 살같이 부드러워 지면서

모든 마음의 빗장이 풀리고 예수님 발 앞에 납작 엎드립니다.

 

주님 제가 저의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겠습니다.’

제가 남을 속인 것이 있으면 네 배로 갚아주겠습니다.’

물질만을 위해서 살아온 사람이 물질을 거의 다 나눠준다는 것은 굉장한 변화고 기적입니다. 완전히 바뀌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혜이고 하느님의 능력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동안 돈을 주인으로 섬겨서 물질에 꼼짝없이 붙잡혀살았던 사람이 하느님을 주인으로 섬기겠다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면 삶의 방향전환이 일어나는데 이것을 회개라고 하지요.

회개가 입으로 고백하고 그 다음에는 실천하는 겁니다.

자캐오는 주님을 만나면서 비로소 모든 묶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부정이익한 것은 네 배로 갚아준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5. 전도는 대가를 치러야

오늘 이 집은 구원을 얻었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약속의 사람, 이스라엘 백성이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은 그간 늘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스러웠던 자캐오가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일원이라는 공식적인 선언을 다른 사람도 아닌 예수님을 통해서 선포되었고 들었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자캐오는 얼마나 기뻤을까요?

비로소 살아있다는 생각을 처음 했을 것 입니다.

예수님은 자캐오가 돈에 집착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벗어나야 했던 자신의 처지를 늘 고통스러워했는데 해결방법을 알지 못한 채, 어찌할 수 없이 끌려다니면서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나는 잃은 사람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지금도 이같은 상황을 해결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영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길 잃고 방황하면서 더 나은 삶이 있을 줄로 알고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면서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 약점 중 하나가 전도라고 했습니다. 인정해야 할 일입니다.

성인의 날에 성인들의 삶이 어떠했을까, 안락하고 편안한 삶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기까지 누군가의 헌신과 고통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만 할 것입니다. 저 멀리 중동지방에서 서쪽으로 서쪽으로 복음이 전파되서 오다가 천년이상 지나서 우리나라에 복음을 들고 온 분들이 있었습니다.

천주교는 이백년이 넘었고 성공회는 130년이 되었습니다.

복음 전하다 목숨을 잃는 순교자가 초대교회에 많았다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기독교 순교자는 20세기에 들어와서 가장 많습니다.

지금도 예수님 믿기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일들이 거의 알려지지 않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픈도어 선교회는 세계기독교 박해지수를 매년 발표하고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북한 등이 그 순위에 오르고 있습니다.

여러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한다는 것입니다.

수고와 헌신이 따라야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후에 자캐오는 베드로하고 전도여행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이사리아 지방 주교(감독)까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하느님께 자신의 삶을 드리고 가장 귀한 가치를 깨닫고 진리를 따라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거제교회 공동체 여러분

예수님은 세상의 방식과 가치가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가는 수많은 잃어버린 영혼들,

고독과 공허함 속에서 삶의 무의미로 정신적인 방황을 하며 헤매는 영혼들을 찾아 오셨고 지금도 찾아 오십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생명에서 생명을 얻어 풍성한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로마서에 예수님의 사랑에 이런 은혜를 말씀합니다.

환난도, 역경도, 박해도, 굶주림도. 헐벗음도, 위험이나 칼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로마서 835)

 

예수님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당면하는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구원자이십니다. 살아있는 동안 구원을 얻고 구원을 얻게 하시고, 죽은 후에는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우리가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이자 목적입니다.

이제 내가 만난 예수님을 이웃에 전할 나의 복음을 준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 복음을 들은 이웃이 예수님을 만나 감격하는 소망을 품으시기를 바랍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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