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성령(코이노니아)의 공동체로 세워주소서

유테레사 2023. 6. 25. 21:05

625일 연중12(가해)

창세 21:8-21, 시편 86:1-10, 16-17, 로마 6:1-11, 마태 10:24-39

 

<성령(코이노니아)의 공동체로 세워주소서>

오늘은 우리교회가 선교 21주년, 축성17주년을 맞는 주일입니다.

축성기념주일에는 주교님 방문하셔서 견진성사를 베푸시고 함께 기념하고 축하하는 행사이지만 여건이 그리안되어서 6월이 가기전에 교회 축성을 기념하는 의미를 갖는 것이 좋겠다 해서 축성기념주일 감사성찬례를 봉헌합니다.

 

1. 전쟁 피난민과 거제

또한 오늘은 동족상잔의 비극 6.25전쟁이 발발한지 73주년 되는 날입니다.

아시다시피 6. 25전쟁은 거제도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북한에서 공산당을 피해서 배를 타고 내려온 피난민들이 장승포항을 통해서 거제에 10만이 피난을 왔습니다. 지금 고현지역은 전쟁포로 수용소를 설치해서 17만명을 수용했습니다. 거제시민은 10만명이었다고 하지요.

동부면에도 피난민들이 오천명정도 배정받아 왔다고 하는데

주민보다 피난민들이 더 많았을 것 같습니다.

생판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우리 동족이라고 해서 집으로 받아들여서 의식주를 함께 나누며 장기간 생활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전에 대신부님께서 북한에서 피난내려온 사람들을 동족으로 받아주고 호적도 해주고 집도 내주면서 아무 문제없이 살게 해 줬다는 것은 세계에 유래가 없는 일이라고 하시면서

하느님께서 우리나라를 축복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거제는 전 주민이 피난민을 받아들여서 혈연도 아닌 사람들과 가족처럼 먹는 것, 입는 것 다 나누며 살았기에 이 곳을 하느님께서 특별히 축복하십니다.

피난민들 가운데 북한에서 예수님을 믿던 기독교인들이 많았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대거 거제도에 유입해 들어와서 교회를 상당수 세웠던 것 같습니다.

이 동네에 있는 동부교회도 그런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나눔과 섬김의 땅 거제, 이런 슬로건이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나눔과 섬김의 주역들인 이 지역 출신 주민에 대해서, 이들의 선행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마태복음 25장 말씀에서

내가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 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었으며,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었다.

이 말씀을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당시 거제시민 대다수는 기독교인이 아니었을 것이고, 예수님 말씀을 들은 적도 없었고, 교회도 다니지 않았을 겁니다.

오히려 섬지방의 특유의 미신과 우상숭배를 더 가까이 하는 풍습에 익숙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런 일들이 교회축성기념일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지금과 달리 먹을 것, 입을 것, 모든 것이 넉넉하지 않았던 당시에 이웃 사랑과 섬김의 절절한 경험이 있는 지역인 거제, 이곳에서

교회는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이 사랑을 실천하는 것에 힘을 쏟아야 할 과제를 떠맡고 있다는 생각에서 말씀드립니다.

지난 주일 복음은 예수님께서 12제자를 선택하신 데

이어서 오늘 연중12주일 본문은 제자로 부름 받은 삶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2. 코이노니아!

예수님은 약한 사람, 소외된 이웃을 보고 그냥 지나치신 적이 없습니다. 병든 사람, 장애인, 가난한 사람, 남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가셔서 들어주시고 대화하면서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제자들을 양육하시면서도 연약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개별적인 만남을 꾸준히 하셨습니다.

저는 이것이 연약한 사람들과 만나는 예수님의 삶의 현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 연약한 이웃에게 다가가서 시간을 내어 얘기를 들어주고 가끔씩은 먹을 것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지요.

성령이 오시면 성령의 역할 가운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코이노니아입니다.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2:42)교제라고 번역된 헬라어 코이노니아’ (κοινωνα)동업자, 제휴자, 동료, 친구, 배우자, 분배자라는 뜻을 가진 코이노노스’(κοινωνς)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동료의식, 교제, 사귐, 공동체, 공유, 참여, 사귐, 상호교류, 우정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동사형은 코이노네오’ (κοινωνω)인데 남과 나누다, 공유하거나 교제를 나누다, 동업자가 되다, 제휴하다, 동참자가 되다라는 의미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성도들이 감사하며 받는 잔, 우리의 성체성사입니다.

보혈은 바로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κοινωνα)입니다.

성도들이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κοινωνα)입니.(고전10:16)

성도들은 이미 그리스도와 사귀어 하나된(κοινωνα) 상태로 더 이상 뗄래야 뗄 수 없는 결합의 관계가 된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코이노니아’ (κοινωνα)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교제의 의미는 국어사전이 정의하고 있는 서로 사귀어 가까이 지냄, 이라는 커피마시면서 한주간 잘 지내셨슈? 인사하는 차원의 단순한 의미를 넘어, 마치 범죄조직에 들어가면 죽기 전에는 나올 수 없는 그 정도의 결속을 말하는 것입니다

코이노니아가 사도행전2장과 4장에서 신도들의 공동생활에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44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내어놓고 45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 주었다. 46그리고 한 마음이 되어 날마다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같이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함께 먹으며 47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들을 우러러 보게 되었다. 주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을 날마다 늘려 주셔서 신도의 모임이 커 갔다.

 

6.25때 거제사람들이 피난민을 집집마다 받아들여서 함께 섬기며 나누면서 생활한 것이 코이노니아와 같습니다, 믿지 않은 사람들이었지만 그렇게 했습니다.

여러분

성령이 오시면 공동체를 이루게 합니다.

성령 안에서 공동체를 이루게 하는 것은 코이노니아입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에서 코이노니아 대신 차지한 것은 성장과 부흥이었습니다.

개인의 축복에 그치는 기복신앙으로 개인주의가 득세했습니다.

기독교의 이타주의 대신 교회간에 경쟁하는 물질주의가 팽배해졌습니다.

그 결과 사회가 교회를 염려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공동체를 이루게 하는 코이노니아의 반대개념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입니다.

코이노니아는 이웃과 짐을 함께 지는 철저하게 실천하는 이타적인 사랑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회복은 코이노니아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뜻있는 분들이 말씀합니다.

그것은 우리 교회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우선 교회 안에서 코이노니아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코이노니아는 성령이 오신 후 나타나는 공동체적인 열매입니다.

성령과 함께 하는 교회로 우리의 기도가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3. 하느님 우선으로 사는 사람이 제자

본문으로 돌아가서 말씀드립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 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과 육신을 아울러 지옥에 던져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육신을 죽이는 세상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과 육신을 지옥에 던져 멸망시킬 수 있는 분,

하느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우리 삶의 근원입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만드신 하느님의 자녀로써 가져야하는 마음가짐입니다. 또한 하느님을 하느님의 자리에 모시고 경외하는 태도입니다.

요즘 교회 안으로 스멀스멀 들어오는 세상의 문화와 가치에 대해서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지혜와 분별력을 갖고 대해야 할 것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가족에 대해서 오해를 할 수 있을만큼 아주 냉혹하게 말씀하시는데 이단들이 집을 가출해도 좋다고 할만한 근거로 삼을 수 있는 성경구절입니다.

집안 식구가 바로 자기 원수다. ”

신앙은 우선순위와 선택이 중요합니다.

부모나 자녀를 하느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가족을 소홀히 하고 하느님만 찾으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가족보다도 더 주님을 가장 중요한 중심에 둔다면 시험에 들지 않고 주님을 따를 수 있고 가족 사랑도 올바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나 시험이 들었을 때 이것을 신앙 안에서 인내하면서

감당할 만한 시험을 주신다는 말씀을 믿으면서

이것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느님과 관계 안에서 믿음으로 바라면서 시련의 시간을 잘 견뎌내면

하느님께서 깨달음을 주시면서 해결되게 하십니다.

 

가족은 세상에 내가 있을 수 있는 존재의 기반입니다.

가장 가깝고 힘이 되는 관계입니다.

싫어도 좋아도 어떤 상황에도 끊을 수 없는 것이 혈연관계입니다.

그런데 혈연관계이고 책임져야하는 가족이어서 가족의 일이면 만사를 제쳐놓고 그것이 첫째가 되고 우선 순위가 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의 요지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가까운 가족보다도 더 가까운 분이 하느님이십니다.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시고 내 생명의 주관자이신 분이십니다.

하느님보다 다른 사람이나 다른 어떤 것이 우선이거나 첫째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첫째이며 우선순위는 주님이어야 합니다.

나의 삶의 첫째이며 우선순위이신 하느님께서 인내하며 바라는 가운데

내 힘으로 할 수 없던 갈등과 문제가 잘 해결되게 하십니다.

따라서 하루의 첫시간을 주님께 드리는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루를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생활 속에서 구분해서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우리 각자에게 하느님은 첫째이고 우선순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제자의 삶에서 중요한 가치이고 신념입니다.

그러므로 제자인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받아서 내가 주장하는 말은 죽고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서로 교제(κοινωνα)하는 사람입니다.

공동체를 이루는 코이노니아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는 것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2:20)’

 

4. 생명으로 세워지는 건강한 공동체

공동체를 이루는 것은 사랑과 축복의 길입니다.

그러나 공동체가 듣기 좋은 말만하고 이상적인 꿈만 꾸는 모임이 아닙니다.

한 교회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며 한 분이신 하느님, 예수님, 성령님을 고백하면서 성찬례를 드리지만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은 우리가 각각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모두 연약함이 있고 불완전합니다.

또 사랑받지 못해서, 사랑으로 채워지지 않은 비어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다른 사람(지체)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서 기다려줘야 합니다.

우리 안에 미숙하고 연약한 어떤 사람이 새로 오셨다고 한다면

그의 말이나 행동을 듣고 보고 있노라면 거슬리기도 하고 신경이 쓰이기도 할 것입니다.

사랑의 결핍은 사랑으로 채워집니다.

그런데 한 사람만의 사랑으로는 안됩니다.

여러 사람의 다양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여러 사람의 다양한 관심과 사랑은 연약하고 미숙한 사람의 비어있는 부분에 사랑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일입니다.

특히나 모든 것이 풍요한 것 같지만 그 가운데서 빈곤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려움 없이 모두 잘 사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 가운데서 소외되고 지친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따뜻한 말 한마디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따뜻한 말 한 마디를 하는 교회로 준비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사회 속에서 상처받고 소외되고 위로받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상처받고 소외된 사람을 위로하는 교회로 준비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서로 사랑으로 따뜻한 말 한 마디를 하고, 따뜻한 사랑의 손길로 먹을 것을 나누고, 아픔을 나누고 서로 기도하는 가족과 같은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축복합니다.

이런 준비가 되어있는 교회 공동체에 하느님은 잃어버린 영혼을 보내실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도 끊임없이 나의 안일이나 평안을 포기하고

자발적 헌신으로 공동체를 섬겨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요한공동체 여러분,

선교 23주년, 축성 17주년을 기념하는 오늘,

자발적 헌신, 시간과 물질과 재능으로 주님의 몸 되신 공동체를 섬기는

우리 거제 요한공동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리하면 세상을 이기는 공동체로 세워질 것을 믿음으로 바라며

함께 손을 잡고 기도하며 머리이신 주님께 순종함으로 한 몸되는 건강하게 살아있는 생명의 공동체로 세워주실 것을 주님께 간구드리며

성령과 함께 하는 공동체, 성령의 코이노니아를 이루는 공동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교회축성기념주일에 감사와 영광을 하느님께 올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