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초청에 합당한 예복을 입어야

유테레사 2023. 10. 15. 20:14

1012일 연중28주일

출애 32:1-14, 23, 필립4:1-9, 마태 22:1-14

 

중동, 세계의 화약고가 터졌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간의 공격으로 수많은 사상자 소식이 실시간으로 들려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첨단 무기가 등장하고 한꺼번에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아무렇지 않게 죽어가는 참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전쟁이 속히 멈추기를 우리를 포함해서 전세계 모든 인류는 간절히 바랍니다. 하느님의 섭리가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본문 마태복음 22장은 앞에 21장의 두 비유와 연결됩니다.

포도원 주인과 두 아들,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입니다.

 

1. 임금 아들의 혼인잔치에 초청하다

1예수께서 또 비유를 들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세 번째 비유를 똑같은 사람들에게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1절에 비유를 듣는 대상인 그들에게’,는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원로들, 바리사이파사람들입니다.

앞에 장인 2145-46절에 보면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이 비유가 자기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을 알고 예수를 잡으려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워서 손을 대지 못하였다. 군중이 예수를 예언자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21장과 22장에 이 본문을 말씀하시던 그 자리의 분위기가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에 처했다면

더 성질 돋구지 말고 이쯤에서 자리를 피하고 그 상황을 마무리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마치지 않고 이어서 덧붙이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니까 아주 작정을 하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하늘 나라는 어떤 왕이 자기 아들을 위해 혼인자치를 베푼 것과 같다고 하십니다.

임금의 아들은 임금과 아들, 같은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임금의 아들은 나라의 상속자이고 왕의 모든 것입니다.

아들의 혼인을 시키는 이 때는 그에게 나라를 맡길 수 있게 되는 모든 상황이 잘 준비된 때입니다.

그래서 혼인을 왕이 직접 주관하는 것입니다.

왕이 보낸 종들이 혼인잔치의 초청장을 들고 나갑니다.

이 종들이 누구입니까?

예언자들 또는 선지자라고 하는 분들입니다.

공동번역에는 예언자, 개역성경에는 선지자입니다.

이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이 말을 하라고 하셨다. 하면서 하느님의 말을 대신하는, 대언을 하는 것입니다.

대언의 내용은 대개는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라. 회개를 전했습니다.

예언자들이 나오게 된 이 시대는 구약시대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은 이방신을 믿고,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고, 아들을 불살라 제물로 드리는 몰렉신을 섬기고 나라가 오래동안 혼란하고 혼탁했습니다.

이런 때에 사람들의 심성은 완악하고 교만하고 목에 힘주고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느님을 무시합니다.

그런데 선지자인 사람들, 예언자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냐면

농사짓던 농부, 뽕나무치던 사람, 별로 두각을 드러내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평범한 사람들을 하느님께서 부르셔서

가서 내 말을 전해라, 거기에 순종하고 가서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전해도 무시하고 들으려하지 않습니다.

그중에 예언자 예레미야는 고통을 겪고,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눈물을 흘리던 눈물의 예언자였는데

대언을 하면 너는 왜 그런 말만하냐? 좋은 말 좀 해라,

고생고생하다가 결국에는 이스라엘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2. 왕의 초청장을 전달하는 종들

그렇게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다가 북이스라엘이 bc722년에 앗시리아에 멸망합니다.

남유다는 bc586년에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갑니다.

그후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 말씀하시지 않던 침묵기간이 약 400년간입니다.

신구약중간시대라는 이 침묵기를 지나서 등장한 예언자가 세례요한입니다.

하느님은 침묵을 깨시고 마지막 예언자 세례요한을 통해 무엇을 선포하게 하셨습니까?

회개하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세례요한의 처음 메시지가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

예수님도 40일 광야에서 금식기도하신 후

세례요한이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들으신 후 갈릴래야 지방을 다니시며

같은 메시지를 선포하셨습니다.

회개하라.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마태4:17)

구약의 예언자들은 하늘 나라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신약과 다른 차이입니다.

이렇듯이 왕의 아들의 혼인잔치에 초청장은 예언자들을 통해서 전달하셨습니다.

회개하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이방신을 믿고 섬기는 역겨운 우상숭배에서 돌이키고 나에게 와라.

이것이 왕의 아들의 혼인잔치에 초대하는 초청장입니다.

 

이 초청장에 초대를 받고 권력이 많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일수록

회개하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이런 말을 들으면 무슨 마른 하늘에 벼락치는 소리야~’

하면서 이제 이스라엘의 정통적인 왕권을 회복하는 메시아가 올 것인데

하면서 귀담이 듣지 않았습니다.

유대 지도층, 그러니까 권력의 중심부에 있는 사람들이 세례요한을 믿지 않았습니다.

헤롯왕이 동생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데 어느 누구도 잘못된 것이라고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그런데 세례요한이 헤롯왕한테 잘못된 일이라고 한번 말하고, 가더니 또 와서 말하고, 또 와서 말하고

그 말만 안하면 아무 일 없을텐데, 사람들이 예언자로 알고 있으니까 눈치가 보이니 그냥 두다가 자꾸 와서 말하니까 감옥에 가둡니다.

그랬다가 생일날 두 모녀가 음모를 꾸며서 세례요한은 참수를 당하지요.

세례요한의 회개하라, 이 말을 듣고 실천한 사람들은 세리와 창녀들입니다.

그래서 와서 회개합니다. 이렇게 죄의 고백을 하면 세례를 주었습니다.

세례요한이 세리와 창녀들에게 세례를 주고 그 사람들과 가까운 것을 보고

유대 지도자들은 자기들의 전통과 너무나 안맞는 행위로 보는 것입니다.

마음에 안들어 했습니다. 도저히 그의 말은 들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왕은 또 다시 종들을 보냅니다.

먼저 번에 보낸 종들은 초청받았던 사람들이 때리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도 왕은 또 다시 종을 보내는 겁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권력과 위치에 있는 왕이라면 자기가 보낸 종을 때리고 죽였다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요?

조선시대 왕이라면 당장 잡아와라~ 하옥시켜라~ 불호령이 떨어지고

군대를 보내서 붙잡아다 매우 쳐라, 그리고 죽일겁니다.

 

다시 종을 보내는 왕, 다시 초대하려는 것입니다.

이 왕의 처사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오래 참으시는 하느님

하느님께서 오래 참으시는 것은 회개를 위해서 기다리십니다.

오래 참으시는 하느님을 마냥 언제까지 기다리실거라고 믿고

마냥 하고 싶은대로, 마음대로 해선 안되겠지요.

 

왕은 다시 종을 보냅니다.

신약시대에 이르러 하느님은 다시 종을 보내십니다.

세례요한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12사도를 보내시고 70인 전도대를 보내시고

회개하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십니다.

이 종들은 교회 2000년 동안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

오늘 날에도 여전히 종들은 회개를 선포하고 하늘 나라를 선포합니다.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은 성찬례를 통해서 설교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마시며 초대를 받고 계십니다.

우리는 성찬례 가운데 회개하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초대받는 거룩하고 엄숙한 시간을 맞는 것입니다.

 

3. 왕의 초청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

225절 가운데 한 단어를 보겠습니다.

희랍어로 아멜레 산테스는 여러 성경에서,

돌아보지도 않고/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아랑곳하지 않고 / 돌아보지 않고/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도외시하다, 개의치않다, 전혀 관심이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공동번역에는 그런데 초청받은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왕이 초대했는데 초대받은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이것은 상당히 무례한 태도입니다.

무례함은 교만이고 무지한 것입니다.

유대지도층은 예수와 세례요한의 천국선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기다리면서 로마식민지에서 자신들의 나라의 정치적인 회복과 현세적 이득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자신들의 이해를 따라서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자렛에서 은혜의 해, 희년을 선포하셨습니다.

 

초청에 대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긴 이 사람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밭에 가야합니다. 장사하러 가야합니다.

저마다 각자 할 일이 많아서 못 간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것보다 자기들의 일이 중요하고, 할 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로 바빠서 시간을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일들이 우선되고 중요해서, 하느님의 초대를 아주 무시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유대지도층들이 선지자들을 죽이고, 예수님에게 적대감을 갖고 살의를 갖는 것을 복음서에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루가복음 4장에서 예수님께서 메시아 사역을 선언하는 그 자리에서

은혜의 해를 선포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죽이려고 하는 것을 보고 빠져나옵니다.

낭떠러지로 밀어 떨어뜨리려 하는데 그들 한 가운데를 지나 나옵니다.‘

제자들도 감옥에 갖히고, 맞아 죽고, 12제자 가운데 한 사람 제외하고는 모두 순교합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시간은 언제나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지금은 하느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은혜의 때입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인내가 끝나는 시점이 언젠가 이 세상 가운데 우리에게 다다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서기 70년 로마 장군 티투스에 의해서 화려함을 자랑하던 예루살렘성은 정복되어 완전히 무너져내렸고 성전 벽의 금박은 불에 녹아내려서 성전 둘레 깔려있는 돌 틈 사이로 전부 스며들면서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대로 되었습니다.

그후 나라를 잃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 세계로 흩어졌습니다.

유대인들은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유럽은 대부분 기독교국가들인데 유대인들은 갈곳이 없이 떠돌았습니다.

1800년대 말부터 다시 나라를 세우자하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합니다. 1차 대전이 일어나고 2차 대전이 일어나면서 독일 히틀러에게 유대인들 600만이 학살되었습니다. 이런 희생을 겪는 것이 이스라엘이 나라를 세우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1948년에 지금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을 쫓아내고 이스라엘 나라를 세웠습니다. 팔레스타인은 성경에 나오는 블레셋입니다.

그래서 계속 충돌이 생기고 지금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4. 부르심을 받고 뽑히기까지   

본문으로 가서

왕은 화가 나서 종들에게 이제 아무나 데려와라, 그래서 할 일없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장애인 등 데려와서 가득찼습니다.

왕이 잔치상이 차려져있는 곳에 와서 자리를 메운 사람들을 보다가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결혼식에 가는데 집에서 입던 김치국물 떨어진 자욱에 쭈글쭈글 주름지고 한 옷을 입고 가지는 않지요. 결혼식에 갈 때는 있는 옷 가운데 가장 좋은 옷, 결혼식에 입고 갈만한 옷을 입고 가는 것이 예의입니다.

예복을 안 입은 채 들어와서 음식을 먹고 있습니다.

 

구약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 하느님께서는 종들을 통해서 무엇을 선포하라고 하셨습니까? 회개입니다.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하면서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아는 것,

그래서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셨고

하느님은 나의 죄를 대신해서 예수님을 나대신 죽는 제물로 보내주신 것에

감사드리고 믿는 것이 회개입니다.

마음으로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깨닫고 믿는 은혜입니다.

회개와 믿음이 우리 기독교인의 기본토대입니다.

회개하면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이 달라 보인다. 매일 보던 세상인데 나무도 다르고, 하늘도 다르고, 날라다니는 새도 다르고, 사람들도 달라 보인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느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옵니다.

눈 빛이 달라집니다. 사물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으니 다르게 보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뽑힌 사람은 적다.”

우리의 믿음이 아직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미완성입니다.

부름심받은 사람과 뽑히는 사람은 차이가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끝까지 부르심을 붙잡으시고 뽑히는 은혜를 얻도록 서로 격려해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이제 믿음의 행보를 계속 나아가셔야 되겠습니다.

끝까지 달려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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