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6일 그리스도 왕주일
에제 34:11-16, 20-24, 시편 100,에페 1:15-23, 마태25:31-46
< 나와 함께 계신 주님, 이웃과 함께 계시는 주님 >
오늘 그리스도 왕 주일에 복음 본문은 마태복음 25장 최후의 심판입니다.
왕은 막강한 권력이 있습니다.
그 힘은 심판이란 형태로 나타납니다.
권력이 있는 사람은 어떤 말을 해도 영향이 있고 누구를 만났는지 모든 일거수 일투족이 사람들의 관심을 끕니다.
왕은 물질과 명예와 권력을 전부 향유하는 자리이고 존재입니다.
물질과 권력은 늘 함께 붙어다니면서 상부상조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속담에 정치하는 사람은 교도소 담 위를 걷는 사람이다.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왕으로서 오시는 그리스도는 물질과 명예, 권력이라는 세상의 가치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권력을 행사하십니다.
이 세상의 민족을 다 불러놓고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양은 오른쪽으로 염소는 왼쪽으로 구분하여 놓습니다.
민족들을 다 불러놓은 다음에 양은 오른쪽으로 염소는 왼쪽으로 갈라서 놓는데 무얼 보고 하는지 그런 것이 전혀 없습니다.
마치 왕이 오시기 전에 이미 양과 염소로 구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기록이라도 되듯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곳, 천국이든지 어디든, 남겨지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구분하게 되는 이유가 예수님 자신이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고, 목 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고,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고, 나그네되었을 때 따뜻하게 맞이하였고,
병들었을 때 돌보아주고, 감옥에 갇혔을 때 찾아주었다.고 합니다.
오른쪽에 있는 이 사람들은 그게 무슨 소리인가 하는데
보잘 것 없는 사람, 상대적으로나 절대적으로 힘없고 약한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나에게 해준 것, 예수님에게 행한 것이라는 겁니다.
물론 성경에서는 가난한 사람, 과부와 고아에 대한 관심과 연민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가난한 사람에 대해서 특별한 마음이 있으십니다.
예수님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 대한 마음이 있으시겠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왜 이런 말씀을 하실까요?
예수님께서 공생애 하시는 동안 그의 마음 속에 한 가지 염원은 앞으로 겪으셔야 할 수난입니다.
제자들을 선택하시고 얼마 지난 후 세 번의 수난에 대한 예고를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 수난의 모든 과정을 아셨습니다.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 성찬을 준비하시면서
빵을 드시고, 이것은 나의 몸이다. 너희를 위해서 주는 나의 몸이니 이것을 먹을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라.
빵을 나누어 주십니다.
포도주를 드시고 이것은 나의 피다. 너희의 죄를 위해서 흘리는 나의 피다. 이 것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라.
축복한 포도주를 나누어 주십니다.
성찬 후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겟세마네로 가셔서 기도하신 후
그리고 유다가 앞장서서 한 무리를 끌고 와서 예수님을 체포합니다.
대사제 집으로 끌고 가서 주거니 받거니 질문하고 답하면서
예수님은 일방적으로 몰립니다.
자기들끼리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소리를 지르면서
폭행이 시작됩니다.
두 눈을 가리고 손은 묶인 채, 얼굴에 침을 뱉습니다.
주먹으로 앞에서 뒤에서 옆에서 치면서 뺨도 때립니다.
이렇게 밤새 시달립니다.
낮이 새자 빌라도의 법정으로 끌려가서 십자가 형을 받습니다.
채찍으로 39대를 맞고, 머리엔 가시관을 쓰고
골고다 길을 십자가를 지고 가십니다.
예수님이 25장 오늘 본문에서 자신에게 닥칠 수난이 어떠한지 그 상황에 대해서 그 고통과 외로움과 수치와 두려움과 불안, 그것을 어떻게 견뎌낼지
그것을 25장에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그냥 죄인으로서, 죄인인 인간들 앞에서
겪어야 할 수모와 수치와 두려움과 불안과 끔찍한 고통들이 점점 다가 오면서
수난을 겪는 이 시간동안 온전한 인간이면서
세상에서 가장 연약하고 나약한 한 인간으로서 감당해야 할 이 시간들에 대해서 주님은 굶주리고 목마르고 낯선 곳에 홀로 있는 나그네로써, 헐벗고, 병들었고, 감옥에 갇힌 사람이 되어야 함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늘 마음에 담고 있었습니다.
대사제 집에서부터 빌라도 법정에서 골고다 길에서 십자가 까지
이보다 더 깊은 외로움이나
이보다 더 큰 두려움이나
이보다 더 큰 수치와 고통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온전히 홀로 겪어야 하는 이 시간들에 대해서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의 거친 손길과 험악한 말, 수많은 사람들 한 가운데 죄인으로 모든 옷이 벗겨져 부끄러움과 창피함에 둘러덮혀서
목이 타는 갈증은 점점 더 타들어가는데,
그보다 더 할 수 없이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가장 연약하고 나약한 사람,
그는 예수입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스스로 가장 낮고 천한 사람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권한을 내려놓으시고 욕심과 이기적인 야욕에 찬 사람들의 손찌검과 폭력에 그대로 내던져진 시간에
예수님이 느끼셨던 것은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가장 밑바닥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인간이 겪어야 하는 내면의 좌절, 이런 상황에 처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들과 자신을 동일하게 보셨습니다.
이때 주님께 다가온 사람들
베로니카는 수건을 가져와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줬습니다.
예수님께 다가온 어머니 마리아는 바라보기도 마음 아팠겠지만 예수님에게 위로가 되었고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 지시는 십자가를 함께지고 갔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마음으로 너무나 고마워하셨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그 외 수많은 사람들은 로마제국의 강력한 권력과 지배로 인해 두려워서 가까이 하지 않고 멀찍이 떨어져 있으려 했습니다. 3년을 함께 생활한 베드로는 두려움과 공포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베드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인간은 두려움과 연약함에 휩싸이면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우선 살기 위해서 배신인지조차 생각할 수 없는 가운데 부인할 것입니다.
그런 두려움과 공포가 온통 지배하는 분위기 속에서 고통과 폭행으로 온 몸이 상하신 주님에게 다가와서 피흘리고 멍투성이, 침자욱에 얼룩진 수치로 뒤덮인 주님의 얼굴을 같은 마음으로 닦아주고 바라보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가는 이들의 자발적인 섬김이 죄악에 찬 세상에 소망임을 다시 한번 깨달아 아셨습니다.
세상 가운데 혼자 버려진 것 같은 주님 마음이 위로받으신 것은 섬김이요 사랑입니다.
오른쪽의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너희는 내 아버지의 복을 받은 사람들이니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
이들은 영원한 그 나라에 들어가기로 약속된 사람들입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36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주었다.’
오늘 성경 본문은 모든 것을 종합하는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구약과 시편 에페소서 마태복음
각 시대를 따른 상황이 있고 각 각 다른 상황이지만
최후의 심판이란 엄중한 경고와 같은 예수님의 말씀은
믿음도 아니요, 신학지식도 아니요, 교회와 하느님께 충성한 것도 아니요.
이웃과의 관계, 이웃 사랑입니다.
에제키엘 말씀도 심판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참된 목자를 기다리는 양들에게 직접 목자를 세워주는 것이 구약말씀입니다.
2독서 에페소서에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다시 살아나게 한 그 능력이 하느님의 오른 편에 앉게 하셨고 그리스도는 권세와 세력과 능력과 주권의 천사를 지배할 뿐더러 현세와 내세의 모든 권력자들을 지배한다, 다시 말해 왕권을 가진 왕이심을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 고치시고 귀신들린 자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시는 예수 이름의 능력과 권세가 있습니다.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여인처럼
사람이 과거의 상처에 묶여 살다가
예수님을 통해서 치유를 받으면 과거의 묶임에서 풀려납니다,
예수님은 현실에서도 우리의 왕이 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문이 닫혀 있는 공간에 문 열어 달라고 하지 않으시고 그냥 들어오셨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가 메시아에 대한 성경을 가르쳐주시고 저녁을 먹으려고 떡을 떼신 후에 제자들의 눈이 열려지자 갑자기 사라지셨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십니다.
미래의 모든 것까지도 왕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만물을 복종시킨 왕이십니다.
그래서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고 지배하시고 통치하십니다.
하느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계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든 만물을 굴복시키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천하 인간에게는 구원을 얻을만한 이름을 주신 적이 없으십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만물의 통치자이십니다.
그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로 삼으셔서 모든 것을 지배하게 하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하느님의 계획이 교회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집니다.
그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교회를 통해서 세상을 다스리시고 지배하시고 통치하십니다.
세상을 이기시고 왕되신 그리스도는
가장 연약하고 힘없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가장 연약하고 가장 힘없는 존재를 겪으셨습니다.
너무나 이기적인 세상, 너무나 이기적인 사회가 되어가는 이때에
예수님은 이기적 관계가 되어가는 것에 대해서, 황폐화되어가는 시대가 될 것에 대해서 강경하게 말씀하십니다.
특히 기독교인들이 이웃에 대해서 무관심과 태만으로 살아가가는 것을 죄로 여기시고 경고하십니다.
내 곁에 있는 가족에서부터 이웃들에 대해 우리는 끊임없이 살피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겐 다가가서 말 한마디부터 건네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요, 가장 필요한 섬김입니다.
그리스도 왕이신 예수님이 깊은 외로움 가운데서 누군가의 말 한 마디 위로를 기다리셨고 그 한 마디에 위로받으셨습니다.
여러분
사람에 대해서, 이웃에 대해서 살펴보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랑입니다.
오늘날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웃에 대한 관심과 배려와 친절과 섬김은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면 우리 중에 누군가와 함께 나누면서 함께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93년에 태백 문곡교회 전도사로 있던 때 성공회 신문에 실었던 시입니다.
읽어드리므로 마치겠습니다.
예수
세상을 품고 계시면서 빈 가슴으로 계시는 이
부족함이 없으시면서 아무 것도 없으신 이
샘이시면서 목말라 하시는 이
사랑이시나 사랑에 굶주리시는 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세례자요한 (1) | 2023.12.17 |
---|---|
깨어있으라 (1) | 2023.12.03 |
감사로 제사드리는 사람 (1) | 2023.11.12 |
이웃사랑,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 (1) | 2023.10.30 |
초청에 합당한 예복을 입어야 (1) | 2023.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