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1일 연중6주일
열왕하 2:1-12, 시30, 고전 4:3-6, 마르코 9:2-9
<우리의 신분은 하느님 자녀입니다.>
오늘 본문이 두 가지인데 병자고치는 본문 하나와 다른 하나가 이 본문입니다. 오늘은 주님의 변모축일로 지킵니다.
본문을 ‘예수님 얼굴이 변했다’고 해서 ‘변화산 사건’이라고 합니다.
모습이 변했다. 모습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첫 구절에 예수님께서 엿새 후에 제자들을 데리고 산으로 가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엿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찾아 봅니다.
마르코복음 6장에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도 오천명을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물위를 걸어오시면서 풍랑을 잠재우셨습니다.
7장에서는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8장에서는 빵 일곱 개와 작은 물고기 몇 마리로 사천명을 먹이셨습니다.
이런 여러 기적을 행하실 때 12제자들이 곁에서 지켜보면서 함께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질문하십니다.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베드로가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렇게 대답 합니다.
‘그리스도’라는 고백을 들으시고 수난과 죽음을 처음으로 말씀하십니다.
아마 예수님은 그리스도라는 고백을 들으시기를 기다리셨던 것 같습니다.
그 고백 위에 제자도를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릴 것이다.”
여러 기적이 있었고, 그리스도라는 베드로의 고백이 있었고,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말씀 하신 뒤로 엿새가 지났다는 것입니다.
엿새동안 제자들과 예수님이 서로 별 말씀이 없으셨던 것 같습니다. 마르코 복음에는 수난에 대해서 한 번 언급한 걸로 되어있는데 다른 복음에는 세 번에 걸쳐서 말씀하십니다.
1. 산에 오르시다.
제자들이 수난에 대한 말씀을 듣고서 그 수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지만 몇 일간이라는 시간은 그 말이 주는 충격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은 여러 생각이 들었겠지요.
그리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무거운 시간, 침묵의 시간을 엿새쯤 보낸 것입니다.
엿새 후에 예수님은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산으로 올라 가셨습니다. 마르코복음에는 산에 올라가셔서 바로 모습이 변하신 것처럼 되어있는데 루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에 모습이 변했다고.
되어있습니다.
3절을 다른 성경으로 보겠습니다.
가톨릭성경에는 ‘얼굴모습이 달라지고 의복도 하얗게 번쩍였다.’
우리말성경에는 ‘하얗게 빛났습니다.’
새번역에는 ‘옷이 눈부시게 희어지고 빛이 났다.’
헬라어 원문에는 엑사스트립톤 - 광채가 나더라.
엑사 :밖으로, 스트립톤: 빛이 번쩍나다. 입니다.
예수님의 얼굴도 달라지고 옷도 하얗게 번쩍였고, 몸에서 빛이 발산되어 나오는 광채를 묘사합니다.
마태복음 17장 2절에서는 ‘예수의 얼굴이 해같이 빛났다’. 고 표현합니다.
따라서 변화산 사건은 마태복음, 마르코복음, 루가복음, 세 가지 공관복음에 전부 나옵니다.
모두 얼굴모습이 달라졌고 광채가 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 복음서에 전부 기록된 일은 복음서에서 중요한 일로 봅니다.
2. 얼굴의 변화는 관계의 변화
성경에서 얼굴이 변화되는 경우는 하느님과 관계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구약 출애굽기에서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느님과 얼굴을 맞대고 사십주야를 지냅니다. 모세가 하느님과 대화하는 동안에 얼굴이 빛나게 된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산에서 내려온 모세를 보니 얼굴이 환하게 빛나고 있어서 모두들 두려워서 가까이 가지 못합니다.(출34:29-30)
하느님과 관계가 더 가까워지고, 인간적인 것에서 다른 차원이 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7장)에서 얼굴이 변화된 사람으로는 스테판이 있습니다.
성령의 지혜와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는 스테반을 당해내지 못하자 유대인들이 체포하고 거짓증인을 세워서 모함할 때 사람들이 그를 보니 그의 얼굴이 천사와 같이 보였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얼굴이 변화되는 것은 하느님과 관계로 인한 변화입니다.
이처럼 1. 예수님 외모의 영광스런 변화는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메시아라는 사실에 대한 확증입니다.
마르코복음 본문에서는 ‘예수님의 옷이 세상의 어떤 마전장이도 그보다 더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고 눈부시게 빛났다.’(마르코 9:3)했습니다.
여기 나오는 ‘마전장이’는 염색하는 기술자, 또는 세탁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염색이나 세탁으로도 이렇듯이 하얗게 할 수 없는, 이 세상 차원에서는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2.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습니다.
모세는 구약 율법의 대표자입니다.
엘리야는 구약 예언자의 대표자입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하늘로 올라가서 죽지 않은 사람으로 성경에서 말합니다.
모세도 그 시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 사람들은 일반 사람들과 다른 존재들입니다.
7절에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소리가 들렸습니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받고 물에서 나오실 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소리가 들렸던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다’, 이 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옴으로 확인해줍니다.
예수님의 변화는 이 세상 일이 아닙니다.
즉 이 세상을 초월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전 영광의 보좌에 계시던
그 모습입니다.
왜 그 모습을 보여주셨을까요?
우리의 삶이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을 전부로 여겨서 그 이상에 대해서는 생각도 안하고
기도와 성경, 묵상 등 이것보다는 텔레비전 연속극보는 것이 재미있고
재미있는 것을 찾아서 시간을 보내기에는 우리에게 허락하신 시간이 정말 귀하고 소중한 것이기에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변화되신 모습은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 세상 너머에 있는 영원한 세상, 하늘의 것, 하늘 나라에 대해서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는지
예수님의 영광스런 변모를 통해서 원래 있던 그 자리의 영광은 어떠할까?
이렇게 하늘에 대한 관심과 질문을 품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니케아신경, 사도신경 등 우리의 신앙고백에서 고백하듯이
예수님이 다시 오심을 우리는 믿고 고백합니다.
하늘에 대한 관심과 질문은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것에 대해서 준비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주님께서 오시면 어둠 속에 감추어진 것을 밝혀내시고 사람의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2독서인 고린도전서 4장 5절에서 말씀합니다.
예수님 오시면 어둠 속에 감추어진 것을 밝혀내시고 사람의 마음 속 생각을 드러내십니다.
빛이시면서 심판자이십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 속에 생각이 드러나고 비밀이 폭로되고, 거짓이 드러나며, 세상에 모든 것이 전부 빛 가운데 밝혀지는 일이 일어나는데 그것이 심판입니다. 예수님의 변모는 이 세상의 심판에 대한 예표입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3.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뽑으시고 함께 생활하면서 훈련하신 목적 중 하나가
오늘 본문에서 그리스도라는 고백을 하게 하는 거였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라는 고백을 제자들로부터 듣는 거 였습니다.
그리스도, 메시아, 구원자이신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입니다.
그냥 일반사람 가운데 누군가가 좀 훌륭한 사람이라고 그리스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이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대답은 제자들이 제자에서 사도가 되는 하나의 관문입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다시 사셔야만 합니다.
그리스도라는 이 고백을 하느님께서 알게 하셨으니 너는 복이 있다.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하는 것이 거저 된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교회만 다니면 예수님 믿는 것이고, 매주일 시간내서 교회오면 신자이고, 헌금을 하니까 믿음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세례받을 때 마귀 세속 정욕을 끊겠습니까? 질문을 합니다.
왜 질문을 하느냐면 마귀와 세속과 정욕이라는 이전의 생활 습관을 끊고자하는 마음의 결단을 확인하는 의미에서 질문합니다.
‘네 끊겠습니다.’ 대답하고 여전히 이전과 똑같이 점쟁이집 찾아가고
이자놀이 하고, 잘못된 만남 등을 한다면 세례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입술로만 형식적으로 대답한 것 뿐입니다.
하느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알고 두려워한다면 이전에 했던 습관, 행동, 말을 삼가해야겠다. 고 마음 속으로 결단을 하고 실천할 것입니다.
이제부터 이전에 했던 하느님께 죄되는 것은 안해야겠다.
그래서 사람과의 관계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더 가까이 하는 노력도 하고 시간도 들이면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으려고 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에서 이 결단은 해야만 하고 꼭 필요합니다.
4. 우리의 신분
여러분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변화산에 함께 갔던 베드로가 베드로 후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그분이 얼마나 위대한 분이신지를 우리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17 그분은 분명히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영예와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그것은 최고의 영광을 지니신 하느님께서 그 분을 가리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마태 17:5” 하고 말씀하시는 음성이 들려왔을 때의 일입니다. 18 우리는 그 거룩한 산에서 그분과 함께 있었으므로 하늘에서 들려오는 그 음성을 직접 들었습니다.”
베드로가 잠자다 깨어서 보고 들었을 그때는 뭐가 뭔지 잘 모르고
모세와 엘리야를 보고서 초막 셋을 지어 드리겠다고 엉뚱한 말을 했습니다.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고 한 소리입니다.
그후에 성령을 받고 정신을 차리고 정리해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으로부터 영예와 영광을 받으신 하느님의 아들이시다.
그 분을 만나 함께 생활하고 영광의 순간을 직접 보니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변화하신 예수님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가셔서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변화가 아니라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지금도 하느님 보좌 우편에서 그 모습으로 계시면서 이 땅에 오실 시간을 카운트 다운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이 세상의 차원에 그치는 삶에서
더 높은 차원의 영원한 생명의 나라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봅시다.
우리의 신분은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 가지 소원은 큰 기쁨(은퇴식 설교) (1) | 2024.02.18 |
---|---|
예수님의 권위 안에 (1) | 2024.01.29 |
주님의 부르심 (1) | 2024.01.14 |
거룩한 이름 예수 (0) | 2024.01.01 |
이 종은 평안히 눈감게 되었습니다. (0) | 2023.12.31 |